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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리콥터 머니' 논쟁이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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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약이 다 떨어졌나?' 양적완화와 같은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다룬 <이코노미스트>의 기사 제목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불황과 싸우고 있는 중앙은행의 능력에 대한 회의론이 커지고 있다. 양적완화는 단기금리가 제로인 상황에서 중앙은행이 장기국채 등을 매입하여 경제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경기를 회복시키고자 했던 노력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형편이 좀 낫지만 일본과 유럽은 여전히 디플레이션 탈출과 경기회복의 전망이 어둡다. 이제 유럽과 일본은 시중은행의 중앙은행 예치금에 마이너스 금리까지 매기며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은행 대출은 별로 늘지 않았으며 은행의 수익성 악화 등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양적완화에 마이너스 금리까지 동원해도 경기가 회복되지 않자 이제 비장의 무기인 '헬리콥터 머니'에 관한 논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이는 중앙은행이 찍어낸 돈을 시민들에게 나누어주거나, 좀더 현실적으로 정부가 재정지출이나 감세를 할 때 그 재원을 중앙은행이 찍어낸 돈으로 충당하는 정책이다. 현재와 같은 불황기에는 재정정책이 효과적이지만 선진국 정부들은 국가부채를 우려하여 재정지출을 늘릴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어서, 정부가 갚을 필요가 없는 헬리콥터 머니가 더욱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중앙은행이 뿌린 돈이 먼저 은행권에 흘러들어가는 양적완화에 비해 효과가 더욱 클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헬리콥터 머니는 정부가 정치적인 고려로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남용할 수 있고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금기시되어온 정책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이 정책이 위험하고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 영국 금융감독청장 터너 등의 지지자들은 남용을 방지하고 정부를 규율하는 효과적인 정책 설계가 가능하다고 반박한다. 예를 들어, 전 미국 연준 의장 버냉키는 비상시에 중앙은행이 헬리콥터 머니의 규모를 결정하고 정부와 정치권이 그에 기초하여 정책을 설계하도록 하는 안을 제시하며, 옥스퍼드대의 렌루이스 교수는 정부와 중앙은행이 협조하며 정부가 재정지출을 결정하는 민주적 헬리콥터 머니를 이야기한다.

한편, 영국 노동당의 대표 코빈 등은 기존의 양적완화에 대한 대안으로 소위 '민중의 양적완화'를 제시한다. 이들은 양적완화에도 불구하고 돈이 은행권에만 머물러 실물부문의 투자와 소비가 진작되지 못했고 시민들의 삶이 나아지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따라서 중앙은행이 찍어낸 돈을 정부가 공적인 인프라스트럭처 투자나 시민을 위한 공공주택 건설 등에 직접 지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야흐로 선진국에서는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중앙은행이 정부와 함께 불황과 싸우는 더 나은 무기를 찾고 있는 중이다.

최근 한국에서는 한국형 양적완화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불황에 맞서는 중앙은행의 역할은 중요하지만, 정부가 부실의 책임추궁과 재정부담을 피하려 한 것이라면 비판받아 마땅할 것이다. 국책은행의 자금확충은 정부의 몫이며, 국제통화기금이 강조하듯 한국에서는 좀더 적극적인 재정정책이 요구되고 있다. 물론 경제침체가 지속된다면 금리인하와 선진국과 같은 양적완화를 생각해볼 수 있으며, 돈이 잘 돌지 않는 현실에서는 특정 부문에 집중하는 선별적 양적완화가 더욱 효과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헬리콥터 머니 논쟁이 시사하듯, 이 경우 발권력을 어디에 얼마나 쓸 것인가에 관한 공개적 논의와 민주적 합의, 그리고 정부에 대한 규율과 정부와 중앙은행의 협조가 필수적일 것이다. 또한 무엇보다도 누구를 위한 양적완화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이러한 노력들이 없으니 한국형 양적완화가 관치금융이라 비판받는 것 아닌가.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