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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나베 씨의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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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PAN ECONOMY
ASSOCIATED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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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인 와타나베 씨는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금리가 마이너스가 된다고요?" "아 네, 일반인의 예금이 아니고, 은행들이 중앙은행에 맡겨놓는 자금이 너무 많을 때 거기에만 벌금처럼 마이너스 금리를 매기는 거예요. 대출을 늘려서 경제활동을 촉진하고 엔화 약세도 유도하려는 거죠. 그래도 돈을 빌릴 수요 자체가 적으니 큰 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일본 중앙은행이 마이너스 금리라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선택했다. 지난해 4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연율 마이너스 1.4%를 기록하는 등 불황의 우려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나온 고육책이다. 이에 따라 대형은행들은 보통예금 1년 금리를 0.02%에서 0.001%로 인하했다. 100만엔을 1년 저금하면 이자가 고작 10엔. 방송에서는 그나마 높은 금리를 주는 곳을 소개하고 있다.

며칠 뒤 불안한 얼굴의 와타나베 씨. "마이너스 금리를 한다는데 왜 주가가 폭락하죠?" "부작용이 생각보다는 큰 것 같네요. 더 지켜봐야죠." 일본 정부의 기대와 반대로 마이너스 금리 발표 이후 3주 동안 주가는 약 6% 하락하고 엔화는 약 5% 절상되었다. 수익성 악화가 우려되어 은행주가 폭락했고 10년물 장기국채 금리도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해외경제가 불안하고 중앙은행이 계속 국채를 사주고 있으니, 투기자본이 일본 국채시장에 밀려들어 엔화 강세와 주가 하락이 나타났던 것이다.

"음, 아베노믹스로 경제를 살릴 수 있을까요? 뭔가 새로운 방법이 없을까요?" "그래도 일할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걸 생각하면 많이 나쁜 건 아니에요. 구조개혁이나 이민 촉진은 시간이 걸릴 테고, 어떻게든 수요를 늘려야 하는데, 해외에서는 일본 정부가 돈을 찍어서 국민들에게 직접 나누어주라는 주장마저 나오고 있습니다." "에, 그러면 좋겠지만, 가능할까요? 인플레이션은 어떡하죠?" "바로 그 인플레이션이 필요한 때니까요. 그리고 마이너스 금리도 현실이 되었잖아요."

금융위기의 급한 불을 끈 공신이었지만, 이제 마이너스 금리까지 꺼내드는 중앙은행의 한계에 관한 논란이 세계적으로 커지고 있다. 재정지출 확대가 효과적이지만 엄청난 국가부채로 인해 쉽지 않은 일이니, 일본과 같은 경우 더욱 급진적인 방안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중앙은행이 보유한 국채 일부를 소각하거나, 감세를 하고 재정적자를 통화를 발행해 메꾸는 방식도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이는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결합하는 소위 '헬리콥터 머니'인데, 전 미국 연준 의장 버냉키도 일본에 제안한 적이 있다. 물론 재정이 방만해질 수 있는 등 여러 문제점도 있겠지만, 기존의 거시경제정책이 먹혀들지 않으니 이런 주장들도 이해할 만하다.

그의 목소리도 조금 높아졌다. "맨날 소비가 부진해서 문제라지만 쓸 돈이 있나요." "네, 임금이 늘어야 소비가 늘 테니, 노동자들도 임금인상을 주장하는 목소리를 좀 더 크게 냈으면 좋겠네요." 가장 큰 문제는 아베노믹스가 기대하는 선순환의 핵심고리인 임금인상이 지지부진하다는 것이다. 기업의 이윤은 늘었지만 일본의 실질임금은 4년 연속 하락하여 작년에도 0.9% 줄어들었다. 정부도 기업들에 임금인상을 촉구하고, 최저임금 인상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해외의 경제학자들은 국가부채 부담을 줄이는 데 필수적인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기 위해 정부와 고용주 그리고 노동자 대표가 임금을 5~10% 올리는 데 합의하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자본과 노동 사이의 불균형이 경제의 회복조차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이야기에 여전히 불안한 표정의 와타나베 씨, 천천히 발걸음을 돌리는 그의 모습이 더욱 늙어 보였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