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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마이너스 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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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를 쫓아 이상한 나라로 들어간 앨리스. 그곳은 모든 게 거꾸로라서 은행에 돈을 맡기고 나중에 찾으러 갔더니 이자를 주는 게 아니라 도리어 이자를 내라고 했다. 이른바 마이너스 금리다. 화가 난 앨리스는 하트 여왕에게 따졌지만 금융위기니 불황이니 경제에 관한 머리 아픈 설교만 듣고 지쳐서 깊은 잠이 들었다.

동화같이 들리지만 현실의 이야기다. 유럽에서 실제로 마이너스 금리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유럽중앙은행은 지난해 6월부터 시중은행들이 중앙은행에 돈을 예치할 때 마이너스 금리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이는 물론 은행의 대출이나 자산시장 투자를 늘려 경기를 자극하기 위한 것이었다. 제로금리로도 경제에 돈이 돌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자국 통화를 사용하는 스위스와 덴마크 등은 유럽중앙은행이 양적완화를 실시하자 자금이 몰려들어 통화 절상 압력으로 고심해왔다. 결국 스위스는 지난해 12월 기준금리를 마이너스로 만들었고 올해 1월에는 고정환율제를 포기하며 기준금리를 -0.75%로 낮추었다. 스웨덴도 올해 2월 이 대열에 합류했다.

양적완화와 함께 유럽 국가들과 일본 단기국채의 금리도 마이너스다. 중앙은행이 국채를 엄청나게 매입하자 국채 가격이 급등하고 금리는 마이너스까지 떨어졌다. 투자자들이 정부에 빌려준 돈을 나중에 더 적게 돌려받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금융기관들은 안전자산인 국채를 보유하려 하고 막대한 돈을 금고에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니 여전히 국채를 사고 있다. 실제로 뱅크오브아메리카에 따르면 마이너스 금리의 유럽 국채 규모는 10월말 현재 2조6천억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또한 보통사람들에게는 아니지만, 유럽의 은행들은 거액의 예금에 마이너스 금리를 물리기 시작했고 몇몇 우량기업의 회사채도 마이너스 금리로 거래되었다.

이제 0이라는 명목금리의 바닥을 깬 마이너스 금리에 대한 관심이 미국과 영국에서도 높아지고 있다. 영국중앙은행(BOE)의 수석경제학자는 지난 9월 영국중앙은행이 다음번 불황에 대응하기 위해 마이너스 금리를 실행해야 하며, 특히 현금 사용이 사라지고 전자화폐가 도입된다면 마이너스 금리가 더욱 효과적일 것이라 강조했다. 금리인상을 준비하고 있는 미국 연준의 관리들조차 다음 불황 때는 마이너스 금리를 채택할 여지가 있다는 발언을 흘리고 있다. 그러나 마이너스 금리는 버블과 부채만 부추기고 금융시장의 왜곡을 심화시켜 실물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회의론도 적지 않다.

한편 선진국들에서는 장기금리도 30년 동안 하락해 왔는데, 최근에는 역사적인 저금리의 원인과 효과를 둘러싸고 경제학계의 논쟁이 발전하고 있다. 여러 학자들은 저금리가 성장률 하락과 투자 부족 그리고 저축의 과잉을 반영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국제결제은행은 과도한 저금리는 중앙은행의 탓이 크며, 낮은 금리가 금융의 버블과 붕괴를 가져왔지만 이에 대한 대응으로 금리를 더욱 낮추는 악순환이 나타났다며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결국 현재의 이상한 금리는 깊은 경제 불황과 이에 대응하여 중앙은행이 안간힘을 쓰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토록 낮은 금리에 돈이 넘쳐나고 있지만 선진국의 투자가 회복되고 경제가 살아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직접 대규모 투자를 수행하거나, 정부부채 문제는 무시하고 화폐를 찍어서 재정지출을 충당해야 한다는 이단적인 목소리가 높아질 만도 하다. 이는 역시 자본주의 경제가 점점 쇠약해져 그 맥박이 약해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일까. 앨리스는 꿈에서 깨어 현실로 돌아오지만, 우리는 그 이상한 나라에서 살게 될지도 모른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