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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된 디턴과 힘겨운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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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US DEATON
ASSOCIATED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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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한국을 방문한 토마 피케티 교수의 대중강연회 때 일이다. 강연이 끝나고 한 청중이 그에게 불평등이 성장의 동력이라는 프린스턴대의 앵거스 디턴 교수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순간 의아한 표정을 짓던 피케티는 디턴과 자신의 주장이 다르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 질문은 한 경제신문이 디턴의 <위대한 탈출>을 출판하며 그의 연구를 피케티의 주장과 반대되는 것으로 홍보한 결과였다. 이들은 디턴을 내세워 불평등에 대한 비판을 억누르고자 했겠지만, 사실 그의 책 내용은 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 책의 한글판은 부제를 바꾸고 심지어 서론의 상당부분을 빠뜨리는 등 번역의 문제점마저 지적되고 있다. 하긴 이 신문은 지난 3월에도 피케티가 자신의 통계적 오류를 인정했다는 소설 같은 보도를 하지 않았던가.

그 디턴 교수가 소비이론과 개도국의 후생에 관한 연구업적으로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그는 더욱 현실적인 수요체계를 개발했고 집계 데이터로 본 소비가 기존 이론과 맞지 않는 현실을 미시 데이터에 기초해서 이해하여 관련 연구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는 또한 개도국의 빈곤과 건강의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해왔다. 이를 통해 그는 이론과 현실의 간격을 좁혔고 미시경제학과 거시경제학 사이에 다리를 놓았으며 발전경제학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디턴의 수상은 그가 특히 현실에 천착하고 가난에 관해 고민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작지 않다.

그가 노벨상을 수상하자 한국에서는 다시금 피케티와 디턴을 대립시키며 노벨상이 불평등보다 성장에 손을 들어주었다는 식의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여러 사람들이 지적했듯, 이는 디턴의 주장에 대한 무지 아니면 왜곡의 결과였다. <위대한 탈출>의 주된 관심은 인류가 빈곤과 질병에서 탈출해온 역사였다. 그는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불평등은 성장을 자극할 수 있으며 성장과 함께 불평등이 나타날 수 있다고 썼다. 그러나 그의 책은 여러 곳에서 과도한 불평등은 경제에 해롭다고 강조하며, 특히 미국에 관한 장에서는 심각한 불평등이 부자들의 정치적 지배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의 말마따나 "이미 탈출한 이들이 탈출로를 막아버리고 그들의 지위를 보호하는 경우 불평등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론 디턴은 세계의 진보에 관해서는 조심스럽게 낙관적이다. 마침 세계은행도 중국 등의 고도성장에 따라 하루에 1.9달러 이하로 생활하는 극심한 빈곤에 빠져 있는 인구가 2012년 약 9억명으로 이전보다 크게 줄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중국 내의 불평등은 급속히 높아졌고, 선진국과 후진국 간의 격차는 줄어들지 않았다. 사하라 이남 지역 아프리카인들의 약 43%가 극심한 빈곤층이며, 선진국에서는 불평등과 저성장의 악순환이 우려되고 있다. 실제로 2008년 전세계 시민들 사이의 불평등은 지니계수 0.7이 넘을 만큼 높은데, 지난 20년 동안 별로 줄어들지 않았다. 결국 개도국의 많은 사람들이 극심한 빈곤에서 탈출했지만, 여전히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은 가난과 불평등에 갇혀 고통받고 있는 것이다. 이는 디턴의 말대로 '부자들이 규칙을 쓰는' 세상과 관련이 깊다. 그의 주장조차 왜곡되는 한국에서 청년들은 빈곤 탈출은 아예 포기하고 현실을 탈출하는 꿈을 꾸지 않는가.

<위대한 탈출> 원서의 속표지는 15세기에 그려진 '최후의 심판'이라는 그림이다. 이 제단화는 유황불이 타오르는 지옥에 떨어진 인간들과 천국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함께 보여준다. 디턴의 책은 현실에서 구원된 이들을 이야기했지만, 지옥도 그림이 더욱 기억에 남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가난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 때문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