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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행 교수와 마르크스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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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행 교수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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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가 옳았다.' 여러 금융위기들을 예측하여 유명해진 뉴욕대의 주류경제학자 누리엘 루비니 교수의 말이다. 거대한 위기와 불평등의 시대에 자본주의의 모순이 스스로를 붕괴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 마르크스의 혜안을 떠올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마르크스의 경제사상을 선구적으로 한국에 알린 김수행 교수가 얼마 전 세상을 떠났다. 그는 사상의 자유가 억압되었던 1980년대의 한국에서 자본론을 완역하고 서울대학교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을 가르치며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냈다. 그의 전공 분야는 바로 자본주의의 위기를 분석하는 공황론이었는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이에 관한 연구와 저술활동을 계속해 왔다. 이론뿐 아니라 실천에도 앞장섰던 그는 진보를 꿈꾸는 모든 이들의 스승이었다.

그러나 위기 이후 관심이 높아지긴 했지만 경제학계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은 불온한 비주류의 처지다. 합리적 인간과 시장의 균형을 맹신하는 주류경제학이 학계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7년 <뉴욕 타임스>는 자유무역이나 최저임금 문제에서 시장근본주의적 결론에 비판적인 미국의 주류경제학자들에 관해 보도했다. 이 신문은 편협한 신고전파 주류경제학계가 이들을 배신자로 생각하여 생산적인 논의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꼬집었다. 물론 행동경제학의 발전에서 보이듯 경제학도 많이 변화했고 최근 시장근본주의가 쇠퇴한 것도 사실이지만, 비주류경제학의 입지는 여전히 좁다. 한국은 미국보다 더해서, 서울대는 김수행 교수의 후임을 뽑지 않았고 마르크스 경제학 등의 비주류 전공자들은 극소수이며 그런 입장의 학술지에 대한 평가도 박하다. 이는 외국 유명 학술지에 출판되는 논문으로 교수와 학교를 평가하는 관행과 관련이 클 것이다.

하지만 마르크스 경제학을 포함한 비주류경제학의 통찰이 지니는 의의는 작지 않다. 먼저 주류경제학은 자본주의의 경기변동과 경제위기 분석에 한계를 지니고 있어서 마르크스주의나 포스트케인지언 등의 다양한 시각으로부터 배울 점이 있을 것이다. 또한 최근 거시경제학자들이 고민하고 있는 커다란 난제들도 마르크스의 문제의식과 닿아 있다. 예를 들어, 노동과 자본 사이의 분배 문제나 자본주의의 장기정체 가능성은 계급투쟁이나 자본의 과잉축적이라는 관점에서 진지하게 검토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정보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노동자의 대체나 자본주의 이후 체제와 관련된 논의들에도 마르크스주의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경제학계는 이러한 새로운 관점들을 끌어안기 위해 더욱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경제학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는 것은 사실 위기와 불평등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의 현실 그 자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학의 위기를 말하는 자성의 목소리가 커졌고, 이제 진보적인 주류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에 내재한 불평등과 불안정성에 주목하며 역사적, 제도적 접근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경제학의 다양성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운동이 전세계에 활발하고, 대안적인 경제학 교과서를 쓰기 위한 노력도 발전하고 있다. 한편 실망스런 경제현실을 반영하여 미국과 영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좌파 정치인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민주적 사회주의와 투자의 사회화를 외치는 이들의 경제학은 주류와는 거리가 매우 멀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은 어떤가. 독점자본과 불평등 문제는 심각하고 서민의 삶은 힘겨운데 경제학은 주류경제학 일색이다. 김수행 교수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지는 이유다. 그의 마지막 강연은 오랫동안 거리에서 농성중인 노동자들 앞에서였다고 한다. 언제나처럼 그는 부조리한 체제를 비판하고 새로운 세계를 이야기했을 것이다. 이제 그 노력은 후학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