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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는 위장된 축복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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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12월3일은 한국 정부가 국제통화기금의 구제금융 양해각서에 사인을 한 날이다. 그날 이후 한국 경제는 이전의 한국 경제가 아니었다. 구조조정과 함께 상전벽해의 변화를 겪었기 때문이다. 당시 국제통화기금 총재인 캉드쉬가 외환위기가 한국인들에게 위장된 축복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잠시 외환위기의 아픈 추억을 되돌아보자. 성급한 금융개방 그리고 대기업들의 과다한 부채와 부실한 경영으로 1997년 말 한국 경제는 외환위기에 직면했고 국제기구에 손을 벌렸다. 국제통화기금이 한국에 내민 쓴 약은 먼저 긴축재정과 고금리 정책이었다. 그러나 1998년 초 30%에 이르는 단기금리 상승과 신용경색은 멀쩡한 기업들조차 쓰러지게 만들었다. 이 정책은 환자를 죽이고 있다는 신랄한 비판을 받았고 훗날 국제통화기금도 이에 대해 반성할 정도였다.

더욱 심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한국 경제에 칼을 댄 구조조정이었다. 대기업의 부채비율을 축소하고 금융기관들을 통폐합했으며 금융시장을 완전히 개방했고, 정리해고와 파견근로제가 도입되었다. 이러한 구조조정은 관치경제와 재벌주도의 문제를 지닌 동아시아식 발전모델을 집어던지고 개방되고 자유화된 미국식 모델을 지향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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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환자는 건강해졌을까. 여러 대기업이 무너졌지만, 기업과 금융부문은 엄청난 부실을 털어내었고 수익성이 높아졌으며 외환준비금은 급등하여 대외적인 안정성도 높아졌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의 구조개혁에는 아쉬움도 크다. 재벌의 소유지배구조는 별로 개선되지 못한 반면, 경영은 단기 수익성을 추구하여 보수적이 되었으며 은행은 기업대출 대신 손쉬운 가계대출로 눈을 돌렸다.

실제로 제조업 부채비율은 1997년 396%에서 2004년 104%, 2016년 80%까지 하락했고, 기업들의 이윤에 대비하여 투자는 둔화되었다. 반면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997년 약 90%에서 2017년 초 179%까지 높아졌다. 긴밀한 정부-은행-기업 관계에 기초하여 위험을 부담하고 장기적 투자를 촉진하던 과거의 경제구조가 크게 약화되었던 것이다.

한편 노동시장은 갈라져 불평등과 격차가 심화되었고 이는 수요를 더욱 정체시켜 저성장과 불평등의 악순환을 가져다주었다. 구조조정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향했지만 경제민주화에는 실패했고 시장의 역동성을 살리는 데는 한계가 컸다. 결국 한국 경제는 겉보기에 회복했지만 수술 이후 튼튼해졌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특히 공적자금으로 겨우 위기를 막은 정부는 재정건전성이라는 신화에 사로잡혔다.

10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로부터의 교훈은 매우 다르다. 미국 정부는 위기에 대응하여 신속하게 확장적인 거시경제정책을 시행했고, 국제통화기금도 긴축과 불평등의 문제를 깨닫고 이제 확장적 재정정책과 포용적 성장을 촉구하고 있다. 이를 고려하면 케인스주의를 표방하고 소득주도성장을 추진하는 문재인 정부의 변화는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재정 확장 그리고 증세와 소득 재분배에 소극적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재벌개혁의 전망이나 위험을 감수하며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노력들도 명확하지 않다. 무엇보다도 정부는 현재의 경제구조가 이전의 민주정부 시기에 확립되었다는 것을 반성해야 할 일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위기의 해법은 사물이 움직이는 방식을 오랫동안 규정하는 법이다. 외환위기 20년, 위기와 이후의 해법이 누군가에게는 분명 축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모두에게도 축복이었는지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져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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