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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은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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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선진국 경제는 회복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미국 경제는 2분기와 3분기 모두 연율 약 3%의 성장을 기록했고 다른 국가들도 회복세가 뚜렷하다. 따라서 미국의 연준은 지난 9월 양적완화를 되돌리겠다는 결정을 했고 금리도 점진적으로 인상하고 있다. 양적완화까지 동원하며 대불황에 맞서 싸우던 중앙은행들도 위기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앙은행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경기는 회복되고 있지만 물가상승이 정체되고 있기 때문이다. 2010년 약 10%이던 미국의 실업률은 지난 9월 4.2%로 하락하여 완전고용 상태지만 개인 소비지출 물가상승률은 연초보다 하락하여 전년 대비 1.6%였다. 일본은 양적완화를 계속하고 있지만 물가상승률이 1%도 되지 않는다. 이러한 인플레이션의 실종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거시경제의 수수께끼라 부를 만하다.

물가가 오르지 않으면 보통 사람들에게는 좋은 일 아닐까? 그러나 급속한 인플레이션도 문제지만 물가상승이 정체되어 마이너스가 되어도 문제다. 사람들이 물가가 하락할 것이라 예상하면 소비와 투자 지출을 미뤄서 경기가 침체되는 디플레와 불황의 악순환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물가가 하락하면 부채 부담이 커져서 경제를 짓누를 수 있다. 또한 명목국민총생산이 높아져야 정부부채 비율을 낮출 수 있으니 선진국 정부들에는 적절한 물가상승이 필요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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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대부분의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물가상승률 목표를 연간 2%로 설정하고 있지만 목표 달성에 실패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물가상승률과 경제성장률 사이의 역관계를 보여주는 필립스 곡선이 고장났다는 우려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최근에는 필립스 곡선이 평평하게 누워버려서 경제학자들은 이를 설명하기 위해 애를 쓰는 중이다.

하나의 설명은 중앙은행의 인플레 관리로 사람들의 인플레이션 기대가 고정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최근 임금상승의 정체가 인플레의 발목을 잡고 있는데, 이는 대불황의 충격으로 노동자들이 임금상승을 요구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 지적되기도 한다. 한편 불안정한 일자리들이 많이 만들어지는 노동시장 변화나 고령화와 같은 경제의 구조적 변화를 강조하는 주장도 있다. 또한 글로벌 가치사슬의 확대나 세계 경제의 통합으로 인한 노동자들의 임금협상력 약화 등 세계화의 효과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낮은 인플레는 만성적인 총수요 부족 때문일지도 모른다. 미국 경제의 산출은 위기 이전 장기추세에 비해 훨씬 낮으며 고용률도 회복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통화정책의 정상화는 너무 이를 수도 있다. 실제로 서머스를 비롯한 여러 경제학자는 인플레이션이 돌아오지 않는데 금리를 올리려 하는 연준을 비판하며,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높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문제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다면 경기가 어떤 상태인지 그리고 통화정책을 어떻게 시행할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연준은 필립스 곡선을 믿으며 결국에는 물가가 상승할 것이라 전망한다. 그러나 퇴임한 옐런도 연준의 인플레이션 분석이 여러 요인을 고려하지 못해서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고 보면, 경기가 회복되고 통화정책도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다지만 선진국의 거시경제 앞에는 불확실성이 가득하다. 돌아오지 않는 인플레이션은 계급 간의 협상력과 기나긴 경제정체를 반영하는 것일까. 오르지 않는 물가 앞에서 경제학자들과 정책결정자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 이 글은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