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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와 그 새로운 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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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tyimage/이매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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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와 그 불만'. 2001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스티글리츠 교수가 2002년 펴낸 책의 제목이다. 그는 이 책에서 국제무역과 자본이동으로 대표되는 세계화가 개도국의 성장을 촉진하지 못했고 불안정을 심화시켜 많은 사람들의 불만을 낳았다고 비판했다. 이제 개도국이 아니라 선진국에서 세계화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선진국 노동자들이 반이민 정서를 자극하고 신고립주의를 외치는 극우파 정치인들을 지지하며 세계화에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영국 국민들은 브렉시트를 선택하여 세계를 놀라게 했고, 미국에서도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후보가 되었으며 유럽 각국에서는 극우파 정당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세계화가 크게 진전된 최근 삼십 년간 선진국에서 불평등이 심화된 현실과 관련이 크다. 물론 영국인들의 브렉시트 결정은 난민유입에 대한 우려와 비민주적인 유럽연합에 대해 주권을 회복하고자 하는 희망이 중요한 요인이었다. 또한 시장에 대한 규제는 상대적으로 진보적이지만, 구조적 불균형 문제를 안고 있고 그리스에 긴축을 강제하여 불황을 심화시켰던 유럽연합 자체의 한계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브렉시트의 배후에는 근본적으로는 세계화와 개방과 함께 살림이 더욱 어려워지고 일자리가 위태로워진 가난한 노동자들의 불안과 분노가 자리잡고 있었다. 소위 전문가들은 세계화가 성장을 촉진하고 브렉시트는 그 반대라고 설교했지만, 노동자들은 세계화의 이득을 피부로 느낄 수 없었던 것이다. 실제로 영국에서는 금융이 주도하는 런던과 제조업이 몰락한 지방 사이의 격차와 함께 빈부격차가 계속 확대되어 왔다. 대처 정권 이후 불평등이 심화되어 지난 20년 동안 여러 선진국 들 중에서 상위 5%가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가장 많이 늘어났고 중산층의 비중은 가장 많이 축소된 나라 중 하나였다. 이와 같은 불평등의 심화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지난 4월 '전 세계의 불평등'이라는 책을 펴낸 뉴욕시립대의 밀라노비치 교수에 따르면, 1988년 이후 20년 동안 선진국의 중간층 이하 노동자들의 소득은 정체되었던 반면 세계인구에서 최상위 1%와 중국 등 아시아 개도국의 중산층 소득은 크게 증가했다. 따라서 전 세계의 인구를 대상으로 소득계층과 소득 증가 사이에는 마치 코끼리와 같은 모양의 그래프가 나타난다. 그는 이러한 비대칭적인 세계화의 이득이 선진국 노동자들의 분노의 배경이며, 불평등의 심화가 금권정치 아니면 포퓰리즘으로 이어져 민주적 자본주의의 기반을 해치고 있다고 우려를 표명한다.

그림 1. 세계인구의 소득계층에 따른 1인당 소득의 상대적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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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Milanovic, B. 2016. Global Inequality: A New Approach for the Age of Globalization. Harvard University Press.

그렇다면 왜 최근 들어 선진국에서 세계화에 반대하는 정치적 목소리가 갑자기 커진 것일까. 반세계화의 주장은 1999년 시애틀 시위에서부터 확산되었지만 사실 선진국에서는 커다란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는 아마도 선진국에서 세계화가 불평등과 불안정을 심화시키는 악영향에 비해 경제성장과 생활수준을 높이는 이득이 더 컸기 때문일 것이다. 설사 세계화가 소득분배를 악화시켜 승자와 패자를 낳았다 해도, 선진국 정부는 사회복지 등을 통해 세계화의 패자에게 보상을 해주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이는 국제무역의 비중이 높은 나라가 정부지출의 규모가 크다는 연구 결과들에서 잘 알 수 있다. 게다가 대부분의 주류경제학 연구들은 불평등이 심화된 중요한 이유를 세계화가 아니라 다른 데서 찾았다. 흔히 선진국에서 불평등이 악화된 요인들로 흔히 기술의 변화, 세계화 그리고 정치와 정책의 변화 등을 들 수 있는데, 보수적인 경제학자들은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이유로 기술 변화를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정부의 재분배 역할이 약화되고 있으며 세계화의 부작용에 대해 많은 이들이 더욱 주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취리히 연방공대의 에거 교수 등의 연구에 따르면, 이전 시기와는 달리 90년대 후반 이후 선진국들에서 세계화와 함께 소득상위층의 세금부담은 줄어들고 중산층의 부담이 더 커졌다. 또한 보다 최근의 경제학의 실증연구들은 중국과의 무역이나 역외생산의 확대가 선진국 제조업 노동자들의 임금불평등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한다. 나아가 세계화가 기술혁신을 자극하는, 소위 내생적인 기술변화를 고려하면 세계화의 영향은 더욱 클 것이며, 세계화는 정치와 정책의 변화에서도 노동자 등 약자들의 힘을 더욱 약화시키는 중요한 배경이었다. 그러고 보면 세계화가 현재 직면한 역풍은 자본에 최대한의 자유를 부여하여 힘을 강화시킨 세계화 과정이 자초한 것인지도 모른다.

한편, 글로벌 금융위기는 세계화의 진전에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다. 먼저 금융위기 자체가 국제무역과 투자를 위축시켜 세계화의 행진을 가로막았다. 실제로 맥킨지에 따르면 국제적인 상품과 서비스 그리고 자본의 흐름이 전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90년대 이후 계속 증가하여 2007년 53%였으나, 금융위기 이후 급락하여 2014년에도 39% 수준이다. 국제무역도 세계의 GDP와 비교하면 아직 2007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고 특히 자본흐름은 크게 위축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림 2. 상품, 서비스 그리고 금융자본의 흐름, 1980-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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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Mckinsey Global Institute, 2016. Digital Globalization: The New Era of Global Flows.

무엇보다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심각한 불황 그리고 긴축정책으로 노동자들의 삶이 힘들어지고 불평등 문제가 부각되자, 성장률이 높았던 시기에는 감춰져 있던 세계화에 대한 불만이 각국에서 더욱 크게 터져 나오고 있다. 이를 배경으로 각국에서 민족주의와 보호주의 정서를 자극하는 정치인들이 가난한 노동자들의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이제 미국의 민주당도 이전에 비해서는 보호무역을 강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세계화에 대한 새로운 불만은 이제 가뜩이나 지속되는 불황으로 취약한 세계경제의 앞날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먼저 선진국에서 고립주의의 확산은 2000년대 이후 선진국을 따라잡기 시작한 개도국들에게도 나쁜 소식이다. 스티글리츠도 비판했듯이 2000년 이전까지는 중국의 급속한 성장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개도국들이 선진국들을 따라잡는데 실패하여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의 격차는 전반적으로 더욱 확대되었다. 게다가 경제발전에 성공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대부분 완전한 개방이 아니라 자본통제와 유치산업 보호 등으로 정부가 적극적이고 전략적으로 세계경제와의 통합을 관리해온 국가들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논란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2000년대 이후에는 아프리카를 포함하여 많은 개도국들의 경제성장의 성과가 나아졌고 이와 함께 전 세계의 절대적 빈곤인구도 감소해 왔다. 세계화의 정체는 이러한 발전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신고립주의는 또한 그것을 선택하는 선진국의 노동자들과 소득분배의 개선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브렉시트로 인한 경제불안은 모든 불황이 그렇듯이 가난한 노동자들에게 더욱 큰 타격을 줄 것이며 불평등을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이미 브렉시트 이후 영국은 법인세 인하를 추진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역시 그 이득이 모두에게 돌아가는 포용적인 세계화의 길을 모색하는 일이다. 국내적으로 자본의 과도한 힘을 억제하고 정부의 소득재분배를 강화하며, 대외적으로 무역협정 과정에서 기업보다 시민들의 이해를 반영하고 금융자본의 급속한 이동을 규제해야 한다. 즉 부자들만을 위한 고삐풀린 세계화가 아니라 민주적으로 관리되는 세계화를 추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영국의 브렉시트 과정은 이를 위한 정치적 노력이 결코 쉽지 않음을 잘 보여준다. 특히 가난한 노동자들이 극우파를 지지하고 엘리트와 전문가들의 이야기에 귀를 닫는 현실은 진보세력에게 더욱 큰 과제를 제기하고 있다.

영국의 역사가 에릭 홉스봄은 지난 20세기를 전쟁과 대공황을 겪은 파국의 시대와 고도성장과 복지국가의 황금시대 그리고 그 후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로 대표되는 산사태의 시대로 구분하고, 20세기 전체를 극단의 시대로 이름 붙였다. 포용적 세계화를 위한 노력이 실패하고 세계화 자체가 종언을 고한다면, 21세기 초반 우리는 또 다른 파국의 시대를 맞게 될 지도 모른다. 홉스봄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자.

우리는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과거나 현재에 기초하여 세 번째 천년을 건설하려 한다면 우리는 실패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실패의 대가는, 즉 사회를 변화시키지 않을 경우 그 결과는, 암흑뿐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을 수정·보완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