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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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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RK LIGHT
MATJAZ SLANIC via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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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전, 평소처럼 사람들과 만나고 있었다. 이유 없이 숨이 가빠졌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팔이 떨리고 목구멍에 멍울이 걸린 것 같았다. 밖으로 나가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어야 했다. 다음날, 새벽 내내 게걸스럽게 울었다. 배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눈물이다. 왜 눈물이 멈추지 않는 건지 모른다. 허무와 분노, 열망과 무기력 어딘가에서 길을 잃은 느낌이다.

증상은 계속됐다. 아침 식사를 하려고 밥상 앞에 앉았을 때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오랜만에 찾아간 정신과 의사는 안경을 올리며 말했다. "불안이 많은가 봐요. 오랜 우울증에 공황증상도 온 거예요." 이어서 우울증 약을 먹고 있는지 물었다. 약을 처방받았지만, 힘겨울 땐 그림을 그리고 노래하거나 글을 쓰면서 견뎠다. 그래도 나아지지 않을 때만 약을 먹었다.

"적어도 2주 동안 꾸준히 약을 먹어야 효과가 있어요." 의사의 말을 듣고 생각에 잠겼다. 약을 먹으면 극복될 수 있을까. 언제까지 이래야 할까. 나는 구제 불능인가, 극단적인 생각도 올라온다. 나는 왜 불안할까. 아니, 나는 왜 불안한 것을 불안해할까. 나약해 보일까 봐 두려운 걸까. 나약한 게 뭐 어때서. 울퉁불퉁한 세상에서 흔들리는 건 정직한 게 아닌가. 나를 숨 가쁘게 한 건 나약해지면 안 된다는 강박감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나는 2주 동안 약을 꾸준히 먹기로 했다. 하루에 두 번 식사 후 흰색 약 두 개를 삼킨다. 나약함을 극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약함과 차분하게 숨쉬기 위해서다.

우울증은 어떤 병일까. 누군가는 만들어진 질병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지나가는 감기나 극복해야 할 병이라고 말한다. 여성학자 모린 머독은 우울증을 자발적으로 소외되는 시간이라고 했다. 빛나는 위쪽, 목표로 향하는 남성 중심의 경기장에서 이탈해 나무와 진흙을 만나는 시간. 내게도 그런 시간이었다. 우울증은 손가락에 물감을 묻혀 그림을 그리게 해주고, 타인의 슬픔 속에 머무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광장을 맨발로 걸어 다니게 하고, 꿈에서 진흙을 밟게 도와주었다. 길을 잃으려고 땅속으로 하강했던 것이다. 길을 찾으려고.

나는 내가 특별히 연약하거나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미세먼지가 건물 사이사이를 빼곡히 채운 오늘이다. 흰색 페인트로 덧칠한 높은 건물에서 나와 딱딱한 아스팔트 위를 발바닥에 붙은 고무창에 의지해 바쁘게 지나는 걸음을 보면서 나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강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아니면 아픈 속살을 가리려고 색색의 겉옷을 입는 것인지도. 왜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을까. 아파야 정상일 법한 세상에서, 나는 사람들의 나약함을 건드리고 싶다. 고래의 뱃속, 자궁, 건물의 뿌리로 추락해 다 같이 길을 잃고 싶다.

추락은 소란을 일으키고 땅에 균열을 낸다. 밑바닥에서 뚫고 나오는 에너지다. 나는 더 크게 울면서 팅팅 부운 눈으로 능청스럽게 말 걸기로 한다. <강한 여성들을 위하여>의 마지 피어시의 말이 내내 뿌리를 잡아준다. "강한 여성은 강렬하게 사랑하고 강렬하게 울고 강렬하게 두려워하고 강렬하게 욕구한다. 돌처럼 강한 것이 아니고 새끼를 핥는 늑대처럼 강하다. 강인함이 그녀 안에 있는 것은 아니다. 바람이 돛을 채울 때 그녀는 강인해진다. 우리가 함께 만드는 것이 강하다. 우리가 모두 함께 강해질 때까지 강한 여성은 강렬하게 두려워하는 여인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