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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꺼진 방에서 촛불을 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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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it Vashisht via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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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서 나무가 자라는 꿈을 꿨다. 2년 전 세월호 추모집회에서 연행되어 유치장에서 잠들었을 때 꾼 꿈이다. 손목보다 가늘고 딱딱한 황금색 나무줄기 위로 반쯤 굳은 노란 액체가 감싸고, 맨 위에 초록색 풀이 두 가닥 자라난 나무가 정수리에 박혀 있었다. 나무가 신기해서 손으로 줄기를 만지는데 좁쌀만한 검은 벌레가 이마로 떨어졌다. 하나, 둘을 잡아내자 수십마리가 떨어졌다. 뿌리에서 나오는 벌레들이었다. 나무를 뽑으면 머리에서 피가 날 것 같아서 조처가 필요했다. 미용실에 찾아가 나무를 뽑아 달라고 했다. 미용사가 머리를 보더니 기겁했다. '어머, 뿌리에 노란 고름이 쫙 찼어요!' 그녀의 말을 듣고 수치스러운 느낌에 놀라 잠에서 깼다. 꿈이 너무 생생해서 손바닥으로 정수리를 더듬었다. 다행히 나무는 없었다.

유치장에서 나온 다음날 집단 꿈 분석 그룹에서 내 꿈을 나눴다. 꿈 분석가 고혜경 선생님은 꿈속의 나무가 우리 사회 같다고 말했다. 겉모습은 황금처럼 견고하고 단단해 보이지만 속은 썩어 문드러지고 있는 사회. 노란 고름은 곪아 터진 흔적이고, 그 위에서 자라는 초록색 풀은 싸우는 지금 우리의 모습 같다고 말이다. 나는 나무가 남근, 뿔, 왕관 같았다. 생명을 위협하는 걸 알면서도 머리에 아름다운 뿔을 자라게 한 나의 허위의식이 드러난 것이다. 나무는 썩어문드러진 사회의 집단 무의식이자 모순투성이의 내 모습이기도 했다.

이후로 매일 꿈일기를 쓴다. 꿈에서 나온 장면을 그려보기도 한다. 꿈은 내 안의 소우주가 내게 보내는 은밀한 메시지다. 악몽은 특히 중요한 편지다. 꿈이 무슨 의미인지 더 알고 싶을 때는 타로 카드를 뽑아본다. 타로는 가부장제 이전 세계의 상징을 표현한 마더피스 타로 카드를 사용한다. 비합리적인 꿈을 사색하고 쓰고 그리는 일은 나의 영적 활동이자 정치적 작업이다.

최순실 국정 '농단'에 상처받은 사람들은 "합리성의 위기다", "다음 대통령은 합리적인 사람이 되어야 해"라고 말한다. 하지만 박근혜보다 합리적인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끝나는 문제인가. 정말 '비합리'가 우리의 적일까. 합리적인 성차별주의자, 합리적인 제국주의자, 합리적인 개발주의자(자연파괴자)면 괜찮은 건가.

이미 합리 남용 사회다. 약자 혐오와 편견도 합리의 이름으로 작동된다. '비합리'적인 여성, 성소수자, 동물에 대한 합리적인 '그'들의 우월의식이 폭력을 정당화해왔다. 현대인은 자신의 감정, 어젯밤 꾸었던 꿈이나 느낌에 권위를 주지 않는다. 기존 질서가 인정하는 합리의 언어에만 권위를 주기 때문이다. 나는 합리의 감각이 사라지는 것보다 어젯밤에 만난 꿈의 장면, 불규칙한 거미줄과 달팽이 집 모양을 보고 무엇을 발견하는 감각이 사라지는 게 더 두렵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합리성 이전에 합리를 상상하는 힘이다. 이 힘이 부족해서 손쉬운 편견과 통념을 따라간다.

두 개의 지하드가 있다.(이슬람교에서는 수행 공간을 지하드라고 표현한다.) 작은 지하드가 이 세계와의 투쟁이라면, 큰 지하드는 자신과의 투쟁이다. 큰 지하드에서 눈을 부릅뜨고 있는 사람은 작은 지하드에서 이미 이긴 싸움을 한다. 살아있는 동안 꿈도, 악몽도 계속된다. 고통은 끝나지 않고 투쟁도 피할 수 없다. 우리는 오늘이라는 공간을 변화시킬 수 있을 뿐이다. 불 꺼진 방에서 촛불을 켠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