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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희 Headshot

나를 더 이상 효녀라고 부르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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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 내 삶에 해일이 밀려왔다. 위반부 한일협상 반대 예술행동에서 즉흥적인 퍼포먼스를 한 날부터다. 대한민국 효녀연합이라는 이름으로 나는 언론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오르내렸다.

관종, 종북이라는 비난은 익숙했다. 비난보다 칭찬이 불편했다. 나는 효녀도 아니고 그리 도덕적이지도 않고, 내키는 대로 막산다. 예술가라고 스스로 명명하지만, 예술가라는 존재도 의심한다. 끈기도, 인내심도 없다. 주의 산만하게 하고 싶은 이것저것 할 뿐이다.

외모를 칭찬이랍시고 품평하는 것도 불편했다. 불편했던 것을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종종 내게 말했다. "유명해지면 원래 그래." 그러니 불편해도 넘어가라는 것이다. 불편해도 넘어가라는 말은 내가 상대방과 동등한 관계가 아니라는 걸 뜻한다. 두 가지다. 상대방에게 권력이 있으므로 그냥 넘어가거나, 내가 권력이 있므로 시혜적으로 봐주라는 뜻이다. 인간과 인간의 만남에 그런 태도가 온전한 건가. '유명'해지는 권력을 쥐게 되었으니, 그 정도는 감수하라는 뜻일까. 아니면 원래 세상은 이런 식이니, 네가 감수해야 할 불편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왜 이 역할극에 내가 참여해야 하는 걸까.

끈질기게 인간으로 만나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 싫다고 말한다. 그러나 돌아오는 건 더 큰 낙인과 비난이다. 작은 것에 예민한, 상처가 많아서 피해의식이 있는, 정신이 취약한 '여자'로 환원된다. 그것이 답답해 또 불편을 말하면, 또, 또, 또. 그래도 계속 말하는 수밖에 없다.

이 시대에서 관심은 권력이 되기도 한다. 처음 가보는 식당에서 처음 보는 사람이 나를 응원한다며 모히토를 주었을 때, 뜨끈한 감동과 함께 찌릿한 쾌감도 느꼈다. 관심받는 일, 인정받는 일은 발을 붕 뜨게 하는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스크린에서 내 얼굴이 노출될수록 내 삶은 지워지고, 대신 1월 6일 공간의 어느 시점에 존재는 정지되었다. 지금의 나는 없고, 효녀라는 유령이 나를 대체한다. 그들이 보는 나는 실은 내가 아니다.

나는 사람들을 만날 때 에너지를 느꼈다. 외로움을 헤매다가 같은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을 만날 때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나의 고통이 나만의 고통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을 때 존재의 기쁨을 느꼈다. 그러나 매체를 통해 나를 알게 된 사람들을 마주할 때 나는 액자 속에 갇힌 작품이나, 그 시간에 머물러있는 유적같이 느껴졌다. 점점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움츠러든다.

"효녀", "애국소녀". 인터뷰에서 꼭 당부하듯 말한다. '제발 효녀연합은 넣지 말아 주세요.' 그래도 계속 효녀연합이 붙는다. "작은 것을 보지 말고 계속 큰 뜻을 위해 활동해요." "페미니즘 말고 휴머니즘을 말해줘요." 조개 말고 해일을 보라고 명령하는 사람들도 많다. (내겐 조개가 해일인데) "효녀연합 어떻게 하게 됐어요?" "대단하시다" "팬이에요" "이분이 효녀연합했던 분이에요" 하며 나를 소개하기도 한다. "희생해줘서 고맙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난 희생을 한 적이 없는데. 이런 메시지들도 많다. "승희 씨는 우리나라의 희망이고 대한민국의 효녀입니다. 계속 힘써주세요." "우리의 애국소녀. 내가 지켜줄게요." 나는 국가라는 무대에서 국민이라는 역할극을 하고 싶지 않다. 규격화되고 라벨링 되는 게 싫어서 해온 작업이고 버리고 버려온 삶이다.

얼마 전에는 이런 얘기도 들었다. "재판하는 건 힘들지만, 그래도 사람들에게 관심받아서 좋지 않아요?" 유명해진다는 건 뭘까. 그들이 말하는 효녀연합이 유명해지는 것? 그날의 행위가 유명해지는 것? 아니면 사람들에게 이름 세 글자가 각인되는 것? 스크린 속 내가 관심받는 것? 그것들은 내 삶에서 어떤 실체인가? 사실 그것들은 내 삶과 상관이 없다.

나는 여전히 매일 절망하고, 자괴하고, 다시 웃다가 운다. 뜻밖의 만남에 희열을 느끼고, 따뜻하다가 다시 추위에 떤다. 사람들이 더는 나를 응원하지 말고 자신의 삶에 집중하셨으면 좋겠다. 삶으로만 만나고 싶다.

효녀연합이라고 나를 소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건 내 삶의 3000000000 측면 중 1 측면일 뿐이다. 아니, 요구한다. 더는 나를 효녀라고 부르지 마라. 누구도 정지된 무엇으로 규정되어선 안 된다. 그것은 폭력이다. 나는 그냥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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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비우스의 몸 © 홍승희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