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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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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만에 7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탄원서를 함께해줬다.

문자가 왔다. "청각장애인 2급 ㅇㅇㅇ입니다. 말을 못하고 수화를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탄원서를 제출했습니다." 그는 나를 시혜적으로 도와준 게 아니고, 동등한 시민으로 어깨를 걸어줬다.

중증 장애인 이동권 예산 삭감에 분노해 2008년 처음 촛불을 들었다.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깨를 걸기 위해. 중증 장애인에게 이동권은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장치다. 아주 최소한의. 그건 복지도 시혜도 혜택도 아니고, 그냥 상식이고 권리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모든 인간이 인간일 수 있기 위한.

장애인 이동권 예산을 신경 써 준 성남시는 칭찬 받을 일을 했던 게 분명하다. 국가 전체가 장애인 복지는커녕 이동권 예산에도 등 돌리는 마당에 성남시의 정책은 "감사할 따름"인 게 맞다.

그러나 그 전에 기억해야 할 것은 장애인 이동권은 당연한 상식이고 권리라는 사실이다. 이런 허접한 정부와 싸우고 있다고 해서, 우리의 기준이 하향평준화되면 안 된다. 인권의식이 후퇴되는 걸 용납해서는 안된다. 그것이 누구이든. 상식을 행해온 '영웅'도 예외가 아니다.

아침에 문자를 받고, 타임라인에서 이재명 시장님의 동영상을 봤다. 전후 사정도 봤다. 이재명 시장님의 태도, 거기에 달린 댓글들을 보고 놀랐다. 그들이 설사 행정절차를 무시했다 할지라도, 중증 장애인의 오늘을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이런 댓글이 달릴 수가 없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마음까지 장애인이네." "최순실한테 따져라."

이명박 정부만 아니면, 새누리당만 아니면 되는 줄 알았었다. 그러나 정책만 늘리고 복지예산만 확대된다고 장애인이 인간으로 이 사회에서 존재할 수 있는가? 정책 수행자가 시혜적인 태도로, 사회구성원들이 이동권조차 특혜라고 생각한다면.

나라 전체가 상식 이하다. 그래서 상식을 행하는 사람이 영웅으로 칭송받는다. 영웅은 없다. 상식을 행하는 사람을 특별히 칭송할 이유도 없다. 영웅이 뭔가를 하길 바라는 게 아니라, 그냥 내가 그 만큼의 상식을 살면 되는 거다. "위대한 사람"을 영웅으로 칭송하거나, "불쌍한 사람"을 시혜적으로 도와주는 게 아니라, 오늘을 함께 사는 인간으로 연대하면 되는 거다.

상식 이하와 싸울 때일수록 내 상식을 점검해야 한다. 장애인 이동권은 시혜가 아니라 그냥 상식이고 권리다. 우리의 적이 고작 저런 박근혜인가.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인간으로 취급받지 못해온 사람들을 떨구고, 그냥 가버릴 것인가. 그게 내가, 우리가 원하는 세상인가.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