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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희 Headshot

내가 가담한 세계가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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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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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나무에 묶여 입을 벌리고 눈을 뜬 채로 숨진 사진을 봤다.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한걸까. 부릅뜬 고양이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다. 인간은 지구의 다른 존재들에게 용서받을 수 있는걸까.

'최순실 모녀 스토리'가 언론과 SNS 타임라인, 술자리 안주거리로 도배되고 있다. 역술인에 대한 편견, 여성에 대한 혐오가 득실거리는 이 나라에서 '무당년'으로 욕 먹기 좋은 구도다.

우려스럽다. 구조적 문제가 아니라, 내가 가담한 세계가 아니라, "저 나쁜 모녀와 멍청한 박근혜"만의 문제가 될까봐. 세월호 참사를 "썩은 유병언 일가"의 문제로 퉁치려는 것처럼. 박근혜 시스템을 지탱해온 우리 안의 "성공종교, 개발주의, 식민지근성"은 보지 못할까봐. 불평등한 자본 시스템이나 새누리당의 썩은 뿌리나 소외된 일상과 생활정치의 부재라는 맥락은 고려되지 못할까봐.

하나의 분노 배출구 덕분에 애도와 성찰이 증발될까 두렵다. 최순실이나 유병언 같은 흥미진진한 스릴러 판타지 호러 섹시코미디 뉴스 영화를 보면서, 정치가 그들만의 무대라는 인식이 공고해질까봐 무섭다.

상식적인 일을 하는 손석희 사장이 영웅으로 '추앙'되는 동안, 평범한 우리는 정치 관람객으로 굳어질까봐 두렵다.

아니면, (멍청하고 '미신'적인) 박근혜와 다르게, 국제적으로 "성공"한 믿음직한 반기문 사무총장이 영웅으로 추대받게 될까.

지금 이 시간에도 길고양이의 사료에 독을 타서 죽이는 폭력이 자행되고, 3일에 한 명의 여성이 남편과 애인으로부터 맞아 죽고 있고, 이 폭력에 모두가 가담하고 있다. 억울한 죽음이 너무 많다. 대통령의 순수한 장난에 농락당한 죽음은 다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대통령을, 이런 세상을 존재하게 한 우리는 대체 얼마나 허술하고 허접한 걸까.

부끄럽다. 내가 가담하고 있는 세계가 부끄러워서 고양이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다. 부끄러워서 쌍욕을 할 수가 없다.

정말 취급해야 하는 건 뭘까. 무너뜨려야 하는 건 뭘까. 그들에게 너도 나도 침을 뱉고 고약한 욕을 퍼붓는 것이 문제의 원인에 불을 끄는 일일까. 폭력에 가담해온 공범의 자세일까.

'ㅇㅇ내 성폭력'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마이크 든 그들만 바라보는 게 아니라, 그녀들이 직접 마이크를 들고 있다. 한사람 한사람이 스스로의 삶을 세우고 폭력을 폭로하는 지금. 여기서 한줄기 희망을 느낀다.

삶을 빼앗으려는 그들에 맞서 삶을 지키기 위해, 나도 계속 눈물을 누수시킬 것이다.

오늘 본 죽은 고양이를 생각한다. 부끄럽다. 분노한다. 그리고 다시 부끄럽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