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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온전한 삶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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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잠시 여행을 왔다. 서늘하고 청량한 밤공기, 남색 하늘, 은은한 보름달. 지구 그림자가 걷히고 달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옷 집회. 5개월 전 아팠던 그날처럼, 우리는 나란히 걸었다. 승은언니, 해달오빠, 아라와. 그러나 지금은 우리와 함께 걷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좁은 독방에 있다가 쇠고랑을 풀고자 모였다. 상처받지 않고, 분노하기 위해. 고립감, 수치심은 이제 내 것이 아니다. 내 느낌인지 몰라도, 사람들은 모두 눈이 촉촉히 젖어있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깊고 강하다. 아주 연약하지만, 그래서 강한 눈빛.

집회가 끝나고 삐죽한 건물 사이를 걸었다. 멀지 않은 거리에서 청소년 순결 강연이 열리고 있다. 그들은 성은 더럽다고 할까. 아니면 성은 대단히 아름다우니까, 내 몸은 보물이니까, 잘 "지키라"고 할까. 여자아이들은 여자가 손해니까 혼전순결을 다짐할까. 옆에서 낙태죄 폐지 집회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거봐, 저렇게 되지 않으려면 "도덕적인 섹스를 해야 해" 라고 결심할까. 아니면 거짓말에 화가 나서 당장 자리를 박차고 나올까. 그들이, 우리가 부숴야 할 거짓말들은 얼마나 많은가.

나는 결혼할 생각도, 임신하거나 출산할 생각도 없다. 사랑하는 사람과 섹스하고, 동거하면서 행복하게 살 거다. 원치 않는 임신을 막기 위해 피임을 할 거지만, 그럼에도 임신이 된다면 다시 임신중절수술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은 온전한 삶이 아닌가? 출산율 대책을 거스르고, 한국의 멸망을 앞당기는 일탈행위인가?

그저 온전히 사랑하면서 살기에 참 벅찬 세상이다. 내 몸을 내가 통제하겠다는 게 이렇게 어려운 "토론주제", "논의대상"이 된다. 나도 본적 없는 자궁은 내 허락도 없이 국가 정책의 도마 위에 올랐다. 자기 살점을 인간에게 주어야 하는 젖소에게 임신 선택권이 없는 것처럼.

우리는 젖소인가? 여자는 가축인가? 응. 가축이다. 인류 역사가 그래왔다. 국가는 자궁을 인적자원을 위한 국가관리재산으로, 가부장은 자궁을 핏줄의 계승수단으로. 여자는 가축이다. 그래서 공장에 갇힌 가축과 연대한다. 파헤쳐진 자연과 연대해서 어머니 지구를 지킨다. 절망적이고 우울한 진실을 앞에 두고 눈물로 만난다. 그리고 다같이 웃을 것이다.

여자의 몸은 논의대상이나 토론주제가 아니고, 내 몸이고, 내 삶이고, 내 선택이다. 더 이상 자본이 내 몸을 난도질하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다. 국가가 내 자궁을 도마 위에 올려놓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문화의 공기가 내 자궁과 입을 틀어막는 것에 순응하지 않을 것이다. 우울한 진실, 남색 하늘, 새벽, 보름달을 더이상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합리와 논리가 담을 수 없는 노래로 춤을 추고 그림을 그릴 거다. 죽음과 친구하면서 달팽이와 기어갈 거다. 거짓투성이 현실을 거스르고, 진실된 불편을 살아낼거다. 시와 사랑을 예술과 종교와 모성에 가둬온 인류역사를 등지고 새로운 역사를, 지금 내 삶을 살아낼 거다.

진실은 기어이 드러난다. 우리 삶이 시라는 진실.
감금된 삶의 노래를 해방시킬 차례다. 지구의 그림자에 가려진 보름달이 드러날 차례.
곽푸른하늘의 '그들의 밤'을 들으며 글을 쓴다. 보고 싶은 사람의 얼굴이 보름달에 겹친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살인마'의 변명 | 홍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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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낙태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고 전한 예술가 홍승희 씨는 "여자는 엄마이기 전에, 예비 신부 이기 이전에 한 명의 인간"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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