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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희 Headshot

스크린 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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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발을 동동 구르며 연락이 왔다. 너 당장 종북 아니라고 사람들에게 말해. 너 종북 아니잖니. 하면서.
이런 사람도 있었다. 당신, 정치하려는 건가? 그렇다면 종북이 아니라고 해명해 보게. (그는 교수고, 더민주당에서 활동하는 사람인 것 같았다. 얼굴도 본 적 없는 사람이다.)
얼마 전에는 좋아하던 사람이 발을 동동 구르며 연락이 왔다. 메갈 옹호하는 거니? 어서 아니라고 말해. 안 그러면 고립될 거야.

내가 왜 해명해야 하는가? 절대로 안 할 거다.
왜 내가 미디어에서 멋대로 붙이는 스티커를 떼어내야 하는가?
어차피 스크린 속의 스티커일 뿐인 걸?
자기 눈에 낀 눈곱부터 떼길 바란다.

일베, 페이스북 고소자료를 정리하며 보는 댓글들이 참 재밌다.
크게 세가지 타입. 1. 알고보니 종북. 2. 알고보니 메갈. 3. 종북도 꼴페미도 아니고 그냥 관심종자다.
관심병환자 메갈 종북!! 으아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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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인도 다람살라의 산맥이 보이는 카페에 앉아 땅콩 타르트와 커피를 마시면서 글을 쓰고 있다.
지금 내 손톱에 낀 때나, 얼굴에 난 뾰루지 같은 것은 이 스크린 속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다행이면서도 슬픈 일이다. 움직이고 있는 오늘 내 삶은 스크린 속에 나타나기 힘들다. 대신 그 전에 이름 붙여졌던 유령들이 나를 대신한다. 스크린 속 유령이. 나는 사람인데.

그래서 삶을 쓴다. 삶을 쓰려고 노력하지만, 아무리 써도 자꾸 무엇으로 환원된다. 때로는 종북으로, 메갈로, 이성적이지 못한, 상처가 많아서 감정적인 무엇으로 진단된다. 그런 식의 사고회로 자체가 우리의 적이기 때문에, 메갈에 열폭하고 종북에 열폭하는 당신의 말에 동의할 수가 없다.
세계는 끊임없이 더럽고 위험한 대상을 만들어낸다. 그 대상은 이름만 바꿔서 사회를 `유령`처럼 떠돌아다닌다. 있지도 않은 김치녀를 혐오하듯.

그러니 더는 나와 당신이 그 유령에 놀아나지 않길.
유령을 말하지 말고, 당신의 삶을 말해주길. 진정한 무엇이나 이론, 운동의 전략 따위 말고. 당신의 삶을 말해달라. 당신의 구체적인 오늘을 나눠달라. 나도 내 삶을 말할 테니.

우리는 스크린을 뚫고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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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과 그림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