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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한 미국의 비즈니스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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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tyimage/이매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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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드라이한 미국의 비즈니스문화에 대해서 적어보려고 한다. 회사에서 감정을 배제하고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미국의 비즈니스문화를 개인적으로는 편하게 느꼈다.

거래처 접대

업종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일했던 미국의 IT업계에서는 거래처 접대라는 것이 별로 없었다.

라이코스의 경우 대부분의 비즈니스파트너들은 다른 도시에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실제로 만날 기회가 별로 없었다. 어떤 새로운 회사를 접촉해서 새로 거래를 시작하게 되도 대부분 전화나 이메일로 일을 진행했다. 아주 중요한 계약이 아니고서는 일부러 상대방 회사까지 출장가서 만나는 일은 드물다. 대신 일년에 한두 번 있는 업계컨퍼런스에서 직접 얼굴을 대하고 미팅을 하는 정도다. 직접 만난다고 해서 꼭 점심이나 저녁식사를 같이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가볍게 미팅만 하는 경우가 많다. 꼭 한 번 밥을 같이 먹어야 제대로 만났다고 생각하는 우리 문화와는 좀 다르다. 대신 컨퍼런스에 가면 큰 회사들은 별도로 저녁에 칵테일 파티를 마련하고 비즈니스관계자들을 초대해 음료를 제공하고 자유롭게 네트워킹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정도였다. (이것도 업계마다 좀 다른 것 같은데 게임관련 컨퍼런스에 가면 특히 각 업체가 주최하는 파티가 많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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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가을 라이코스를 인수한 Ybrant와 함께 Ad tech New York컨퍼런스에 나갔다. 당시 우리 부스.

오랜 비즈니스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경우 정기적으로 상대방 회사를 방문하기도 한다. 라이코스는 구글과는 애드센스광고계약을 맺고 있었고, 야후와는 검색관련 광고 및 신디케이션 계약을 맺고 있었다. 두 회사 모두 라이코스로서는 가장 중요한 비즈니스파트너라고 할 수 있었다. 이 두 회사의 세일즈담당자는 일 년에 한두 번씩 우리 회사를 방문하고 식사를 같이 하는 정도였다. 구글보다는 야후가 우리를 더 신경 써준 것 같다. 보스턴 시내에 초청해줘서 스테이크디너를 같이 한 일이 있고, 서니베일 본사의 파트너 컨퍼런스에 초청해줘서 가본 일이 있다. (하지만 출장 여행여비는 우리가 부담했다.)

이렇다 보니 거래처 임원들과 함께 골프를 치는 경우도 물론 없었다. 우선 골프를 즐기는 사람이 많지 않다.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할 주말에 골프를 같이 하자고 할 수도 없는 분위기다. 다음본사에서 출장 온 분들과 골프 나간 것 외에 따로 골프를 쳐본 기억이 없다.

한번은 우리 회사의 회계감사를 위해 KPMG 회계사들이 와서 열심히 일을 하는 것이 보였다. 사장으로 고생하는데 밥이라도 사야겠다는 한국적인 생각으로 콘트롤러 티파니에게 "점심식사시간을 좀 잡아보라"고 말한 일이 있다. 티파니는 뜨악한 표정으로 "알아보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바빠서 시간을 잡기가 힘들다"는 답이 돌아왔다. 티파니는 "당연히 할 일을 하는 것인데 밥 먹을 필요 없다"고 했고 그냥 그렇게 지나갔다.

돌이켜보니 라이코스는 거래처 접대를 너무 안했던 것 같기도 하다. 라이코스가 잘 나갈 때는 미식축구팀인 뉴잉글랜드패트리오츠 스타디움에 귀빈석을 사놓고 비즈니스파트너들을 간간히 초청했다고 한다. 그런데 회사의 규모가 줄면서 그런 것도 모두 없애버렸다.

신용도 조사

새롭게 비즈니스거래관계를 시작할 때는 상대방회사의 신용도 조사를 한다. 보통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D&B라는 회사의 신용도 조사를 이용한다. 이것은 상대 회사가 건전한 재정상태를 가지고 있는지, 거래대금 지급을 늦게 한 일이 없는지 등등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 서비스에 연간 일정액을 내고 가입해서 쓰는데 미국 회사들은 비즈니스를 하는데 있어 이처럼 상대 회사의 신용도 체크를 하는 것은 필수라는 인식이 확고하다. 만약 거래할 회사가 일정등급 이하의 신용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판명되면 재무부서에서 거래를 못하게 한다.

미국에서는 개인의 크레딧지수가 낮으면 은행대출도 안되고 자동차 할부구입 등도 안된다. 사회생활에 큰 지장을 초래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회사의 신용도도 아주 중요하다. 라이코스의 재무를 책임졌던 콘트롤러 티파니는 거래회사에 대금 지급이 늦어지거나 심지어는 사무실 렌트비, 전기료 등의 납부가 늦어질까봐 항상 신경을 곤두세웠다. 깜빡하고 지불이 늦어지면 회사의 신용등급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거래회사와 비즈니스계약을 할때 Net 30, Net 45 같은 식으로 대금지급조건을 표시한다. 이것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한뒤 청구서(Invoice)를 받고 30일 이내, 45일 이내에 그 대금을 지급한다는 뜻이다. 어음거래는 없다. 라이코스의 거래처의 경우 대부분 이 계약조건을 잘 지켜서 상대회사가 파산했던 경우를 제외하고 특별히 대금회수에 힘들었던 경우는 없었다. 우리도 물론 항상 제때에 대금을 지급했다.

비즈니스 선물 문화

거래처 간에 선물을 주고 받는 일도 거의 없다. 세일즈를 담당하는 에드가 크리스마스 때 주요거래처 몇명에게 와인선물을 보내야겠다고 허락해 달라고 했던 것을 빼고는 특별히 어디에 선물을 보낸 기억이 없다. 그저 값싼 회사기념품을 만들어두었다가 방문객이 오면 주는 정도였다. (이런 회사 기념품을 영어로 스웨그(Swag)라고 한다.) 그나마 내가 부임하고 구조조정에 들어간 라이코스는 회사기념품을 한번도 더 만든 일이 없었다. (미국의 IT업계는 특히 회사티셔츠를 기념품으로 많이 주는 편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선물을 받은 일도 거의 없다. 주요 파트너인 야후에게 연말에 컵, 펜 같은 회사기념품세트를 우송 받았던 정도가 유일하게 기억나는 선물이다.

가족, 친지 간에는 반드시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고 받으면서 비즈니스 거래처 사이에는 거의 선물을 주고 받지 않는다는 것이 신선했다.

마찬가지로 거래처의 지인이 승진했다고 꽃이나 난을 보내거나 선물을 보내는 경우도 없다. (요즘엔 우연히 링크드인에서 지인의 승진소식을 접하면 축하한다고 댓글을 다는 정도다.) 거래처 지인의 경조사도 거의 챙기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어도 서로 알리지 않으니 챙길 방법도 없다.

정부나 관공서와의 관계

정부나 관공서의 존재감도 미국회사에서는 상당히 낮다. 라이코스 CEO로 3년간 일하는 동안 단 한번도 시나 주정부의 관리와 접촉한 일도, 정부주최의 관련 행사에 참석을 요청받은 일도, 참석한 일도 없다. 기본적으로 특별한 일이 없으면 그쪽에서 전혀 연락이 없고 회사직원들도 정부에게서 뭔가 도움을 받을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외국인이고 그쪽에 인맥이 없어서 그런 탓도 있었을 것이다. 또 라이코스가 작은 회사가 되서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국에서 민간회사는 특별한 일이 아니면 정부를 신경 쓰지 않고 대체로 제각기 자기 할 일만 하는 문화라고 해도 될 것 같다.

법대로, 원리원칙대로

그리고 미국의 직장인들은 법을 지켜야 한다는 의식이 투철하다. 대충 넘어가도 될 것 같은 일을 "이렇게 하면 법규정에 맞지 않아 탈법의 소지가 있다"며 몸을 사린다. 어떤 비즈니스관련한 의사결정을 할 때 법적으로 문제의 소지가 있을 것 같으면 항상 사내변호사인 마크에게 자문을 구했다. 그러면 마크는 그 사안이 법적으로 위험성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제공했다.

회계처리나 HR관련된 문제에서 이런 일이 많았다. 융통성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한국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 사안을 변호사와 회계사에게 물어보고 늦장을 부리는 모습을 보면 본사에서는 답답해 했다.

그런데 가만 보니 이것은 미국인들이 준법정신이 투철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나중에 문제가 되면 개인적으로 처벌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많이 작용하는 것 같았다. 감사를 통해서라든지 내부고발자에 의해 편법이 드러날 경우 법에 따라 일벌백계되고 해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 때문이다. 특히 회계 관련해서는 예전 엔론사건 이후 관련 규정이 대폭 강화된 영향이 아주 커 보였다. 민감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농담 비슷하게 "I don't want to go jail"이라고 말하는 것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

이처럼 미국의 비즈니스문화를 '정'이 없고 건조하게만 느낀 것은 내가 전혀 지인이 없는 보스턴의 미국회사에 홀로 가서 일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한국회사와 비교해서 보면 상대적으로 일 중심이고 메말라 있는 편인 것도 사실이다. (일단 영어에는 존댓말이 없고, 선배-후배라는 말 자체가 없는 영향도 크다. 같은 대학 출신들끼리도 챙겨주기는커녕 소 닭 보듯 하는 경우도 봤다.)

하지만 거래처 간의 접대라든지 경조사, 관공서 대응 등에 시간을 빼앗기지 않으니 비즈니스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의사결정을 하는데 있어서도 비즈니스 외적인 것을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

이처럼 건조한 미국의 비즈니스문화지만 그만큼 일에만 집중할 수 있고 남는 시간을 가족에게 쏟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CEO였던 나는 이런 문화가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외국인 CEO입장에서는 참 감사한 일이었다.

*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 '에스티마의 인터넷 이야기 (estima.wordpress.com)'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