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허핑턴포스트 블로거의 분석과 의견이 담긴 생생한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임정욱 Headshot

고등학생 자녀의 말도 귀담아 들어라 | 스냅챗 투자의 교훈

게시됨: 업데이트됨:
SNAPCHAT
Lucy Nicholson / Reuters
인쇄

2017-03-06-1488769561-9388621-screenshot20170304at11349pm.png

배리 에이거 (사진출처 Lightspeed 홈페이지)

아래는 상장 첫날 약 39조원의 시가총액으로 데뷔한 스냅에 초기투자해 약 1조7천억원의 수익을 거둔 라이트스피드 벤처파트너스 배리 에거스의 블로그 글 일부분이다.

거의 딱 5년 전의 일이다. 집에 와서 부엌에 들어갔더니 고2인 딸 나탈리와 친구들이 전화기를 보면서 웃고 있다. 그게 뭐냐고 물었다.

"아빠, 이 앱 몰라요? 스냅챗이라고 해요."

"몰라. 그게 뭔데."

"사진을 찍어서 친구들에게 보내요. 그리고 친구들이 열어본 뒤 10초 뒤에 사라져요."

"그래? 어떤 사진을 보내는데?"

"친구들 사이에 공유할 만한 웃기고 황당한 사진들요. 요즘 앵그리버드와 인스타그램과 함께 학교에서 가장 인기가 있어요."

앵그리버드와 인스타그램은 알겠는데 스냅챗은 처음 들어봤다.

"얼마나 자주 쓰는데?"

"하루에 5~6번 보내곤 했는데 지금은 30번쯤요!"

딸의 친구들도 고개를 끄덕인다.

"남자애들도 쓰니?"

그러자 마침 아들 앤드류가 들어오면서 말했다. "네. 우리도 많이 써요."

오호.. 이거 흥미로운데. 내 VC파트너인 제레미 리우에게 이야기해봐야겠다.

2017-03-06-1488769652-9262067-screenshot20170304at11753pm.png

그리고 배리와 제레미는 스탠포드대학으로 찾아가 이 앱을 만든 2명의 학생 에반과 바비를 찾아냈다. 열흘 뒤 라이트스피드는 스냅에 48만5천불(약 5~6억원)을 초기투자했다. 그리고 라이트스피드 사무실 한켠을 이들을 위한 업무공간으로 내줬다. 이후 후속투자까지 라이트스피드는 약 8백만불을 투자했으며 그 수익은 이번 상장으로 15억불(약 1조7천억원)까지 불어났다.

스냅에 대한 라이트스피드의 첫 투자가 딱 떨어지는 50만불이 아니고 48만5천불이었던 이유는 배리의 자녀들이 다니는 마운틴뷰의 사립고교가 1만5천불을 투자할 수 있도록 해줬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그 고교는 2천4백만불의 평가수익을 얻게 됐다고 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의 큰 수익을 낸 역대 VC투자 분석에 따르면, 라이트스피드는 스냅 투자에서 166배의 수익을 올렸다.


여기서 느낀 교훈 2가지.

1. 좋은 투자를 하려면 고등학생 자녀의 이야기도 흘려들어서는 안된다.

일상생활 속에서 남다른 관찰력과 또 실행력이 필요하다. 배리 에거스가 처음 스냅챗에 대해 들었을 때는 스냅챗의 일일 사용자가 10만명밖에 안됐다고 한다. 그때 대수롭지 않게 그냥 넘겼더라면 이런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없었을 것이다.

2. 창업자 입장에서 좋은 투자를 받으려면 VC가 먼저 찾아오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만든 좋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퍼뜨려서 촉이 발달한 좋은 VC가 먼저 알고 찾아오도록 하면 좋다. 얼마 전 테헤란로펀딩클럽에서 소프트뱅크벤처스코리아 문규학 대표는 "VC에게 어떻게 접근하면 좋은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역설적으로 말씀드리자면 VC에게 먼저 안 다가가는 것이 제일 좋다. 정말 좋은 기업에겐 VC가 먼저 찾아간다. 못 믿겠지만 사실이다. 투자 안 받겠다고 버티는 좋은 기업이 생각보다 정말 많다. 무림의 고수끼리는 실력자 회사가 어떤 회사인지 모두 알고 있고 실제로 먼저 가서 만남을 청한다."


라이트스피드의 스냅챗 투자 이면의 이야기

고교생 자녀에게 들은 이야기를 팁으로 스냅챗에 투자한 라이트스피드의 이야기에는 또 다른 비화가 숨어있다. 뉴욕타임스 기사에 따르면 첫 투자자임에도 불구하고 스냅의 창업자 에반 스피겔과 라이트스피드는 서로 아예 안보는 사이라고 한다.

라이트스피드가 대학생인 스냅챗의 창업자 2명을 찾아내서 48만5천불을 투자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투자계약서가 VC쪽에 너무 유리하게 되어 있었던 것. 예를 들어 후속투자에 들어오는 VC에 대해 라이트스피드가 거부권을 가지고 있고 또 후속 투자의 50%까지 라이트스피드가 우선권을 가지고 있었다. 라이트스피드 때문에 원하는 VC로부터 투자를 받지 못하자 에반 스피겔이 짜증을 냈고 결국 라이트스피드에게 할인된 가격에 추가투자를 할 수 있는 조건을 주는 대신 그런 독소조항을 없애는 것으로 타협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라이트스피드를 이사회 등에서 다 배제해버렸다고.

에반은 처음 투자계약서에 사인할 때 이런 내용을 잘 설명해주지 않고 "표준계약서니까 걱정하지 마"라고 했다는 데서 특히 분개했다고 한다. 에반은 나중에 이런 말을 했다. "표준계약서라고 하면 설명해주는 사람이 사실은 잘 이해를 못했거나 아니면 속여 먹으려고 하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까 누가 뭐가 어떤 딜이 '표준'이라고 하면 완벽하게 이해할 때까지 끝까지 "왜, 왜, 왜"하고 물어봐야 한다."

에반이 의결권이 10배인 우선주로 회사를 강력하게 통제하려고 하는 것도 이 일을 통해 VC를 불신하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다. (그렇다고 이후 투자를 안 받았다는 것은 아니고 약 3조원 가까이 투자를 더 받음.)

실리콘밸리 VC라고 다 창업자친화적이지는 않다는 교훈을 또 얻다. 그리고 에반의 부모가 모두 변호사였는데도 이런 일을 당하다니...


*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 '에스티마의 인터넷 이야기 (estima.wordpress.com)'페이스북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