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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뱀이라 부를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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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사건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피해자가 금품을 노리고 접근한 꽃뱀이 아닐까 의심한다. 그런데 왜 하필 여성과 뱀이라는 생물이 연결되었을까? 뱀을 여성의 상징으로 생각한 역사는 꽤나 오래됐다. 미국의 비교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신의 가면' 4부작에서 원시사회에서는 뱀신이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 숭배의 대상이었다고 지적한다. 원시사회 사람들은 뱀이 허물을 벗는 과정을 재생과 새 생명의 탄생으로 여겼다. 이것은 뱃속에서 아이가 나오는 여성의 신비로운 능력과 닮았다. 그렇게 뱀신은 여신이 되었고,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는 존재로 추앙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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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이 남성 신에 의해 짓밟히는 이야기가 바로 그리스 신화와 성경이다. 헤라는 남편 제우스를 질투하고 의심하는 악녀로 그려진다. 심지어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던진 사과를 차지하기 위해 아프로디테, 아테나, 헤라 세 여신이 누가 더 예쁜지를 두고 싸움을 벌이는데, 이것이 계기가 된 전쟁이 그 유명한 트로이 전쟁이다. 질투와 외모 때문에 전쟁까지 벌어지는 이야기는 여신의 타락을 보여준다. 성경은 뱀신과 여성의 추락을 좀 더 노골적으로 연출한다. 뱀은 이브를, 이브는 아담을 유혹하여 죄를 짓게 한다. 야훼는 죄의 대가로 여성에게 출산의 고통을 주었다지만, 평생 기어 다녀야 할 뱀의 운명이야말로 남신의 승리를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뱀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기어 다니게 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인간의 승리다. 유혹하는 여성과 뱀은 남성이 권력을 차지한 사회에서 탄생한 신화일 뿐이다.

그래서 꽃뱀을 입에 올릴 수 있는 것은 권력이다. 꽃뱀은 가해자의 무고를 나타내는 방어적이고 수동적인 항변이 아니라, 피해자가 남성을 유혹하고 타락시킨 범죄자임을 입증하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행위다. 이렇게 가해자는 피해자로, 피해자는 가해자로 허물을 벗고 다시 태어난다. 꽃뱀이 신화라면 간단히 무시하면 그만일까? 포털 검색창에 꽃뱀을 치면, 한샘 꽃뱀, 현대카드 꽃뱀, 호식이 꽃뱀이 연관검색어로 뜬다. 유명 연예인의 성범죄 사건 피해자는 기사가 나가는 순간 꽃뱀으로 취급받는다. 교도소 안에서 성범죄자들은 자신의 범죄를 '물총'이라고 희화화하며, 여성에게 속았다고 항변하고, 동료들은 큰일 하려면 여자를 조심하라 조언한다.

유혹하는 여성에 대한 혐오는 오래된 역사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에게 영향을 미치며 쉽게 극복되지 않는다. 그래서 여성 역시 피해를 말하기 힘들다. 이후 벌어질 비난도 두렵지만, 자신의 생각과 주장이 맞는지 확신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자신의 미소, 옷차림, 따뜻한 말 모든 것이 꽃뱀의 증거가 된다. 합의금이라도 요구하면 의심은 확신으로 변한다. 심지어 판사조차도 피해자가 떡볶이라도 얻어먹거나, 모텔비를 내거나, 구속된 가해자에게 편지를 쓰면 그 순간 여성의 피해 증언은 믿을 수 없는 뱀의 유혹으로 여긴다. 맥락은 삭제된다. 우리가 객관적이라고 믿는 생각과 신념들이 사실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으며, 특정한 사회와 신화의 영향 아래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내가 발 딛고 있는 세상이 기울어 있지는 않은지 잘 살펴보고 성찰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선악과를 먹고 눈을 뜬 이유이지 않을까. 만약 당신이 서 있는 곳이 에덴동산처럼 편안하게 느껴진다면 아직 선악과를 먹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 이 글은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