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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폭력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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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사석에서 만난 한 남자가 내게 이렇게 물어온 적이 있었다. "저는 그냥 하루에 두세 번만 연락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여자 친구는 제 일거수일투족을 전부 알고 싶어 해요. 이를테면 점심을 어디서 누구와 먹었는지, 친구들과의 술자리에 혹시 그들의 여자 친구가 나왔는지 안 나왔는지, 함께 있을 때 걸려온 전화가 있다면 그 사람이 정확히 누구인지 하는 것들이요. 어느 정도까지 서로에게 말해주어야 적당한 걸까요?"

맞다. 사랑하면 상대방의 모든 것이 궁금해지는 것. 늘 같이 붙어 있고 싶고 그 사람의 모든 걸 알고 싶어지는 마음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둘 중 한 사람이라도 불편함과 억압을 느끼거나 상처를 느낀다면 그건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은 무엇이 된다. 사랑하는 사이라 해도 지켜야 할 선이 있는 것이다. 또 다른 간섭의 예시가 여기에 있다.

아주 오래전 내 친구가 만났던 어떤 사람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는 심지어 여자 친구의 옷차림에 대해서도 사사건건 간섭을 하곤 했다. 그저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다른 남자가 여자 친구를 흘깃 쳐다보는 것만 감지해도 "내일부턴 그 옷 입지 마. 다른 남자가 쳐다보잖아"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옷이 특별히 노출이 좀 있거나 몸매가 두드러지는 옷이든 아니든 상관없었을 것이다. 그는 단지 자기 여자를 누군가가 쳐다보는 것 그 자체가 싫었던 거니까. 여자의 몸, 여자 친구란 존재가 자기 소유라고 생각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반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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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에게 나의 특별한 옆자리를 내주고 만나는 것, 사랑하는 것, 그건 정말 행복하지만 또 그 자체로 불안함을 수반하는 일이라는 걸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사람이 혹시 떠나버렸을 때 자신이 입을 상처와 충격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주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 대한 열등감, 즉 '나의 이런 부족한 면 때문에 이 사람이 떠나가지 않을까?'라는 생각 그리고 상대방을 완벽히 소유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상대의 일거수일투족을 간섭하는 쪽을 택한다. 말이 좋아 '사랑하니까 하는 간섭'이지, 상대방의 자유의지를 억압하려 하는 순간 그것은 그 자체로 억압이고 폭력이다.

사회문제로까지 대두되고 있는 데이트폭력 문제 역시, 처음엔 그렇게 '사랑하니까 하는 간섭'이라는 형태로 시작한다. 상냥한 얼굴로 '너에겐 그런 옷보단 이런 옷이 어울려'라고 말하며 선물을 하는 것, 기다리지 말라고 하는데도 끈질기게 기다리는 것, 수시로 연락을 하고 잠시라도 연락이 되지 않으면 화를 내는 것 등. 처음엔 자칫 '나에게 푹 빠져 돌진하는 사람'의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지고지순한 로맨티스트'의 모습으로 오해할 수도 있는 모습들이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이런 행동이 용인되었을 때 더 강압적이고 물리적인 폭력들이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불쾌감, 모욕감, 공포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행동과 말이 모두 데이트폭력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 20대 남성이 이혼소송 중이던 아내를 찾아가 미리 준비한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했다는 뉴스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기사에 나온 통계 자료를 보고 또 한 번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지난해 한 해 동안 언론에 보도된 살인사건만 분석한 결과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에 있던 남성에 의해 살해된 여성은 최소 82명, 살인미수로 살아남은 여성은 105명이었다고 한다. 이 187건의 살인 그리고 살인미수 사건의 범행 동기로 알려진 것은 '여성이 이혼 혹은 결별을 요구하거나 가해자의 재결합과 만남 요구를 거부한 경우'가 가장 많았다. 이른바 '이별 범죄', 한때 데이트폭력의 동의어로 쓰였던 말이기도 하다. 자기 여자 친구나 아내가 자신의 소유나 마찬가지라 생각하고, 자신을 거부할 자유의지 따위는 애초에 인정할 수 없던 남자들은 '갖지 못하느니 죽여버리는' 쪽을 택하는 것이다. 데이트폭력 가해자의 77.6%는 남성(2016년 경찰청 현황), 그렇게 나흘에 한 명꼴로, 한국 여자는 살해당하고 있다.

2년 전쯤 한 학교에 강연을 하러 갔을 때, 강연이 끝나고 나서 질의응답 시간에 유난히 손을 번쩍 들었던 한 여학생을 기억한다. 헤어지자고 했더니 '헤어질 바엔 자살하겠다'며 주변 사람과 부모님에게까지 지속적인 협박을 해오는 남자 친구 때문에 고민이라던 그 근심 어린 얼굴을 기억한다. 스토킹 범죄를 여전히 고작 7만원짜리 경범죄로밖에 처벌할 수 없는 나라에서, 그 학생은 별일 없이 잘 지내고 있을까? 협박하던 그 남자는 그 협박을 멈추긴 했을까? 내가 뭔가 더 실질적인 도움을 줬어야 하는 건 아니었을까? 남자아이들이 여자아이들의 치마를 들추며 놀리는 일명 '아이스케키'를 당하고 울 때, '걔가 너를 좋아해서 그러는 거야'라고 폭력에 순응하도록 길러진 우리가 이 부당한 폭력들에 저항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제 이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 폭력을 폭력이라 부르지 못하는 사회엔 더 이상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 이 글은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