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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병제 폐지를 위한 시민모임(JPD) Headshot

군대에서 '빼앗긴 세월'은 누가 보상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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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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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안악희 (징병제 폐지를 위한 시민모임 JPD 서울지부 지부장)

필자는 글을 단도직입적으로 시작하려 한다. 국가는 영원하지 않다. 민족도 영원하지 않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사회적 합의에 의해 국가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세금을 내고 공공 서비스를 받고 있다. 우리가 세금을 낸 만큼 정부가 기능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속은 바싹바싹 타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는 이상하게 세금 낭비에 관대한 분야가 있다. 심지어 정말 많은 사람이 일상에서 접하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곱고 관대한 눈빛으로 이 분야의 비리에 관해서는 눈을 감는다. 아니, 비리 혐의자들이 솜방망이 처벌을 받아도 그러려니 한다. 이 분야는 바로 국방이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징병제를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고, 병사는 원래 돈을 주고 쓰는 존재가 아니며 한국군이 너무도 가난해서 그들의 사정을 이해해 줘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흔히들 군필자들은 군복무 중 물자부족을 예사로 겪어서 그런지 한국 정부가 돈이 없다는 착각에 빠져있다. 그러나 그들은 틀렸다. 이는 엄청난 착시 현상이다. 한국 정부는 그렇게 가난하지도 않다. 한국군은 40조에 달하는 국방비를 쓰고 있으며, 이는 독일에 근접하고 프랑스와 비슷한 수준이다.

많은 군필자들은 자신들의 빼앗긴 세월을 두고 어딘가에서 보상 받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들은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 자신들 주변의 수많은 여성들과 소수의 면제자들을 보면서 박탈감에 시달리게 된다. 여기에 정치권과 남성주의의 솔깃한 이간질이 가세한다. "이봐, 군대는 너희들처럼 힘 있는 남자들만 갈 수밖에 없어. 그러니 너희들은 여자들과 면제자들에게 뜯어낼 수 있을 만큼 뜯어내야 해."

하지만 남자들이 빼앗긴 것을 여성과 면제자들이 가져간 것이 절대 아니다. 남자들은 오히려 이중으로 세금을 부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세금은 남성들이나 여성들이나 동등하게 내고 있다. 면제자들 중에는 경제활동이 불가능한 사람들이나 사회적 차별을 받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다시 말해, 남성들은 세금도 내면서 징병을 당하고 있다. 한국의 징병제가 세계 유례 없는 수준으로 가혹하다는 것을 따져보면, 군 복무 중에 부모에게 손을 벌려서 돈을 써야 하는 입장인 것을 생각해 보면 오히려 가족 차원에서는 삼중, 사중의 부담을 안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국방 예산의 범위 내에서 국방 정책을 펴기는커녕, 공짜로 사람들을 데려다가 강제 노동을 시키고 있는 정부 당국이 문제의 근원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는 한국 사회 전반에 인명 경시 풍조와 노동 경시 풍조로 이어지기도 한다. 한국의 징병제는 사실상 현대판 노예제다. 이는 전근대적인 체제의 산물이자 철폐되어야 할 악습에 지나지 않는다.

사족으로 최근 게이트 정국으로 인해 정말 고마운 것이 있다면,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에게 고마운 것이 있다면, 더이상 돈이 없어서 징병제를 유지 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는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자신의 주머니에 챙긴 돈과, 그들로 인해 공중으로 날아간 돈을 생각해 보면 모병제가 충분히 가능하다. 비효율적인 군 체계와 안보 구조에 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겠다. 그것은 40조나 되는 예산을 받아서 쓰는 국방부와 국방 전문가들이 할 일이니까.

여러분들이 이유도 모른 채 징병제로 끌려가는 동안에 자신들의 주머니를 채우는 자들, 성별간 이간질을 부추기는 자들, 병사들에게서 인권을 빼앗아 가는 자들은 웃으며 두 다리를 뻗고 잠을 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