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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눠먹지 않는 통합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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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통합을 외치는 목소리가 높지만, 갈등의 필연성과 다원주의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들어 그런 외침을 마땅치 않게 보는 사람들도 있다. 박정희가 독재를 '한국적 민주주의'로 포장하는 몹쓸 짓을 저지르는 바람에 한국적 특수성을 경멸하면서 서구적 보편주의에 경도된 사람들이 많아진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통합을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으로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사실 문제는 통합 그 자체라기보다는 통합의 내용과 방식이다. 그간 통합은 주로 기만적인 정치적 선전 구호로 동원되는 개념에 불과했다. 지난 대선에서 '100% 대한민국'이니 '국민대통합'이니 하는 아름다운 말을 외쳤던 후보가 대통령이 된 후에 어떤 일을 했던가를 상기해보라.

하지만 언론과 유권자들도 나눠 져야 할 책임이 있다. 통합을 지도자나 정치인의 의지에만 맡긴 채 통합의 구체적 내용과 방법을 따져 묻지 않은 책임이다. 지금 우리 사회엔 정부의 고위직 인사와 예산 배분에서 특정 연고에 치우치지 않고 여러 이해관계를 균형되게 반영하면 통합이요, 그렇지 않으면 통합이 아니라고 보는 그릇된 시각이 팽배해 있다. 최근 상대편의 '선의'를 인정하자는 통합론을 제시한 대통령 후보가 나온 건 반가운 일이지만, 이런 철학적 접근법 역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문제의 핵심은 승자 독식주의에 있다. 승자가 모든 걸 독식하는 체제에선 통합이 원초적으로 불가능하다. 패배하면 모든 걸 잃는 상황에선 수단과 방법의 정당성을 살펴보거나 나라와 국민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목숨 걸고 죽을 때까지 싸워야만 한다.

어떤 이들은 미국의 승자 독식주의가 더 심하다며, 우리의 승자 독식주의를 과장하지 말자는 주장을 편다. 동의하기 어렵다. 미국은 연방 국가다. 아니 그걸 따질 필요도 없이, 우리에겐 권력의 위세에 '스스로 알아서 기는' 독특한 쏠림 문화가 있다는 걸 지적하는 것으로 족할 것 같다. 스스로 알아서 기는 데엔 그만한 합리적 이유가 있다. 권력의 부당한 행사에 저항하면 권력의 잔인한 보복이 이루어진다. 언론은 이런 보복에 별 관심이 없다. 나중에 모든 실상이 밝혀진 후에도 저항을 택한 '의인'들에 대해선 그 어떤 보상도 없다. 이는 법과 제도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각자도생하기에 바쁜 한국 사회의 독특한 습속의 문제다.

그런 습속엔 '조폭 의리'도 포함돼 있다. 윗사람이 무슨 짓을 하건 아랫사람은 윗사람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고 믿는다. 생각하는 게 크게 달라 복종하지 않고 이탈하면 '배신자'라고 낙인을 찍는다. 설사 못된 윗사람이야 그렇게 생각한다 하더라도, 언론은 왜 그런 엉터리 주장의 확성기 노릇을 하면서 그 사람을 배신자로 몰아가는 공범이 되는가? 언론도, 그리고 많은 국민도 그런 '조폭 의리'에 오염돼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승자 독식주의는 그런 사회문화적인 이유들로 인해 증폭될 수밖에 없다. 그런 이유를 들어 기존 대통령제의 폐기를 주장하는 개헌파들도 있지만, 꼭 개헌이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대통령에서부터 각급 지방자치단체장에 이르기까지 행정권력이 침범할 수 없는 중립 영역을 법으로 제도화해 넓혀 나가면 된다. 이걸 공약으로 내걸게 만들어야 한다. 즉, 집권 후 논공행상의 전리품으로 간주돼 온 인사권의 상당 부분을 중립적인 시민사회에 넘김으로써 승자 독식 전쟁의 수단이 된 정치와 선거의 공공성을 다소나마 회복해보자는 것이다. 시위마저 조작하기 위해 특정 관변단체에 돈을 집중적으로 몰아주는 일이 상식으로 통용되는 한 그 어떤 명분을 내걸건 정치와 선거는 '밥그릇 쟁취'를 위한 사생결단의 전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어떤 정치세력도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한다. 반대편 정치세력이 집권했던 기간 동안 쌓인 문제들을 청산해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뜻일망정, 그로 인해 승자 독식은 강화되고, 반대편은 이를 갈면서 정치를 '밥그릇 수복'과 재청산의 기회를 얻는 투쟁으로 환원시킨다. '밥그릇'은 결코 천박한 용어가 아니다. 먹고사는 문제다. 그 어떤 명분을 내걸건 모든 정치투쟁의 심연에 자리잡은 근본 동기다. 그걸 천박하게 보지 않아야 공공적이고 생산적인 갈등을 전제로 한 통합의 길도 열린다. 나눠먹지 않는 통합은 불가능하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