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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구속'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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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INTON FIST
Jim Bourg /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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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일을 할 때 '마음에 드는 것'과 '존경을 받는 것'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 반면 남성들은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 셰릴 샌드버그)

"만약 여성이 지도자로서의 기대에 부응하려면 자연스레 훌륭한 여성의 행동 양식을 위반하게 된다. 반대로 여성과 관련된 기대에 부응하려고 할 때 훌륭한 지도자의 특성에서는 멀어진다." (미국 조지타운대 언어학 교수 데버라 태넌)

"여성들은 딜레마에 처하곤 한다. 한편으론 똑똑하게 자립해야 한다. 반면, 아무도 언짢게 하지 말고 누구의 발도 밟지 말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자기주장이 강하다는 이유로 아무도 안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힐러리 클린턴)

위 세 진술은 모두 여성에게 가해지는 '이중 구속'(double bind)을 지적한 말이다. 해도 안 되고 안 해도 안 되는 상황을 가리키는 '이중 구속'은 원래 문화인류학자 그레고리 베이트슨이 조현증(정신분열증)에 관해 말하면서 제시한 개념이지만, 여성 정치인, 특히 힐러리의 정치적 행태를 이해할 수 있는 최상의 개념이기도 하다.

어릴 때부터 대통령이 되겠다고 마음먹고 평생 그 꿈의 실현을 위해 살아온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건 그 사람이 남자냐 여자냐에 따라 우리의 평가는 크게 달라진다. 우리는 '야망에 불타는 남자'와 '야망에 불타는 여자'를 동등하게 대해주지 않는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여성 지도자들의 공통된 특성은 대부분 '호전성'이었다. 왜 그럴까? 가장 큰 이유는 유권자들이 여성 지도자를 바라보는 시각이다. 군 통수권자로서 전쟁도 불사할 만큼 강한가? 유권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이런 의문을 불식시키기 위해 여성 정치인은 자신의 강함과 전투성을 입증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지도자의 위치에 오를 수 있다.

힐러리가 걸어온 길도 바로 그것이었다. 그녀는 상원의원이 된 뒤 매파들의 본거지인 상원 군사위원회에 들어갔으며, 조지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전쟁을 지지했다. 그런 필사적인 노력 덕분에 힐러리는 2008년 대선을 앞두고 군 통수권자로서의 역량을 묻는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내 경쟁자인 버락 오바마보다 훨씬 더 높은 평가를 받게 된다. 그러나 이라크전 지지는 그녀가 오바마에게 패한 결정적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2016년 대선을 앞두고서도 진보 진영 일각에선 그녀가 대통령이 되면 제3차 대전을 일으킬 거라는 반대의 목소리가 높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부인인 엘리너 루스벨트는 "정치에 몸담게 된 여성들은 모두 코뿔소의 가죽처럼 두꺼운 피부를 가질 필요가 있다"는 명언을 남긴 바 있다. 이 명언을 행동 지침으로 삼아 온 힐러리는 정치를 꿈꾸는 젊은 여성들에게 "코뿔소 같은 피부를 키우라"고 가르쳐 왔다. 이 말의 선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이 또한 '이중 구속'을 유발해 힐러리를 '독선의 여왕'으로 만드는 데에 일조했다.

이런 '이중 구속'은 여성 정치인에게 더 가혹하게 작용하지만, 남성 정치인이라고 해서 완전히 자유로운 건 아니다. 유권자와 언론이 정치인에게 '이중 구속' 상황을 유발하는 요구를 자주 하기 때문이다. 유권자와 언론은 지도자를 꿈꾸는 정치인들에게 권력의지, 집념, 소신, 뚝심, 의연함, 정의감, 포용력 등을 요구하는 동시에 이런 덕목들과의 경계가 애매한 권력욕, 집착, 아집, 불통, 불감, 독선, 정실주의에 대해선 매섭게 비판한다. 그러나 권력의지-권력욕, 집념-집착, 소신-아집, 뚝심-불통, 의연함-불감, 정의감-독선, 포용력-정실주의의 차이는 불명확할뿐더러 결과에 의해 소급 판단된다.

이런 '이중 구속'은 유권자와 언론이 정치를 국리민복의 수단으로 보는 동시에 정치인 개인의 드라마로 보는 이중 관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그래서 '대의를 위한 양보'를 칭찬하는 동시에 그것을 '중도 포기'로 조롱하는 양립하기 어려운 모순이 자연스럽게 저질러진다. 비판에 잘 반응하는 건 칭찬받을 일이지만, 그건 동시에 '오락가락'으로 욕먹게 돼 있다. 이걸 잘 아는 정치인들에겐 유권자와 언론의 요구를 경청하기보다는 무시할 줄 아는 게 슬기로운 지혜로 간주되기 마련이다. '이중 구속'에 관한 논의가 정치 저널리즘의 주요 의제가 되어야 할 이유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