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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근육'의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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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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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의 이유가 실패의 이유로 급전환하는 것을 납득하지 못하는 것이 많은 정치 지도자들이 실패하는 최대 이유이기도 하다. 시종일관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거나 "내가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라는 식으로 나가면 그게 바로 독약이 되고 만다. 정치권의 세대교체나 물갈이는 후안무치에 덜 중독된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요청의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정신감정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지난 9일치 <한겨레>에 실린 기사 제목이다. 극단적인 막말과 기행을 일삼는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트럼프의 정신감정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빗발치는 가운데 미국정신의학회가 성명을 내 '개인에 대한 정신감정은 비윤리적'이라며 자제할 것을 촉구했다는 내용의 기사다.

트럼프는 유별난 경우이긴 하지만, 보통사람의 상식 기준에서 보자면 정신감정을 의뢰하고 싶은 정치인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섹스 중독증'에 걸려 백악관을 포르노의 무대로 만들었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물론 그의 아내이자 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역시 보통사람 상식 기준에 비추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언행을 많이 한 인물이다.

'보통사람의 상식 기준'은 아름다운 말이지만, 정치인을 평가할 땐 위험한 기준일 수 있다. 필요 이상의 정치 냉소와 혐오를 낳는 주범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보통사람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동물로 보는 게 옳다. 정치인을 비하하는 게 아니다. 정치가 아무리 더럽고 고약해도 누군가는 정치를 해야 하는데, 정치라는 직업의 속성은 '보통사람의 상식 기준'으론 결코 감당할 수 없는 것임을 이해하는 동시에 평가의 근거로 삼을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몇 년 전 조국 서울대 교수가 자신은 '정치 근육'이 없어 정치판에 뛰어들 수 없다고 말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산 적이 있다. 정치 근육이란 무엇인가? 그걸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들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한 가지만 들라고 하면 나는 '후안무치'(厚顔無恥)를 꼽으련다. 얼굴이 두껍고 부끄러움이 없다는 뜻이다. 보통사람은 가져선 안 될 악덕이지만, 정치인에겐 필요악이다.

정치의 본질은 갈등이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는 이상 욕을 먹는 건 피해갈 수 없다. 정치를 하려면 그 어떤 비판과 비난에도 의연하게 대처하면서 자신의 소신을 지켜 나가야 한다. 이게 바로 '정치 근육'의 핵심이다. 그렇긴 하지만 '의연'과 '무시', '소신'과 '아집'의 차이를 구분하긴 쉽지 않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엔 징그러울 정도로 미련한 독선·오만·아집에 사로잡힌 정치 지도자일지라도 그 사람은 자신이 숭고한 대의를 위한 의로운 소신을 지켜나간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자신을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도 적잖은 만큼 그런 착각이나 환상에서 빠져나오긴 쉽지 않다.

수많은 실험 결과, 권력을 갖게 되면 다른 사람들이 세상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느끼는지를 이해하는 데에 둔감해진다는 것이 밝혀졌다. 정치인의 경우엔 당연한 일이다. 사실 우리는 정치인에게 상충되는 두 가지 덕목을 동시에 요구하고 있는 셈이니 말이다.

우리는 정치인에게 민심을 따르라고 말하는 동시에 포퓰리즘에 휘둘리지 말라고 말한다. 소통과 경청을 강조하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뚝심을 예찬한다. 권력의지와 맷집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권력욕은 버리라고 말한다. 낮은 곳에 임하라고 말하면서도 높은 곳에 있기를 바란다. 그런 원초적 모순 상황에서 정치인이 직업적 행동양식으로 택한 것이 바로 후안무치다. 이는 의도적인 선택이라기보다는 세월이 흐르면서 형성된 직업적 습속 또는 방어기제라고 보는 게 옳겠다.

지금 미국 대선은 후안무치 경쟁이다. 그간 힐러리 클린턴을 따라다닌 부정적 꼬리표는 '극단, 독선, 분열, 탐욕'이었는데, 트럼프와 맞붙으면서 그 꼬리표가 트럼프에게 고스란히 넘겨졌으니 말이다. 힐러리의 입장에선 대진운이 좋은 셈이지만, 트럼프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최근 자신의 막말을 후회한다고 했지만, 주변의 압박에 따른 것일 뿐 진심 같진 않다. "나의 기질 덕분에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믿어 온 그가 그 기질을 바꿀 수 있을까?

성공의 이유가 실패의 이유로 급전환하는 것을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이야긴데, 사실 바로 이게 많은 정치 지도자들이 실패하는 최대 이유이기도 하다. 상황이 달라지면 게임의 법칙도 달라지는 법인데, 시종일관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거나 "내가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라는 식으로 나가면 그게 바로 독약이 되고 만다. 정치권의 세대교체나 물갈이는 늘 '밥그릇 싸움'의 일환으로 이루어지긴 하지만, 후안무치에 덜 중독된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요청의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후안무치해지더라도 적정 수준을 지키는 게 좋겠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