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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에나 언론'을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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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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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팔린 것도 아니고 15년 동안 800만개가 팔리는 동안 가만 놔뒀으면 그건 정부 책임이다. 구하기 힘든 물건도 아니고 동네마트만 가면 다 널려 있었다. 정부의 책임이 없다는 식의 정부 태도가 가장 큰 재앙이고 문제의 본질이다."

19대 국회 내내 매년 국정감사에서 환경부를 상대로 가습기 살균제 피해대책을 묻고 매번 보도자료를 냈던 장하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말이다. 있으나 마나 한 정부, 아니 차라리 없는 게 더 낫겠다는 말이 터져 나올 정도로 정부는 국민적 공분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간 국회는 무얼 했던 걸까? 5월 말이면 국회를 떠나야 하는 장 의원은 이런 말을 남겼다. "국회의원 의정활동도 언론에 얼마나 주목받느냐로 평가받는다. 그래서 반짝하다 마는 경우가 많다. 이슈 되면 이 의원 저 의원이 다루다가 잠잠해지면 다른 이슈로 옮겨간다. 4년 내내 하는 의원은 없다."

장 의원의 외로운 투쟁은 정부는 물론 국회와 언론의 처참한 실패를 웅변해준다. 그렇다면 언론은 그간 왜 침묵했던 걸까? 이 문제와 관련해 '나는 왜 '가습기 살인'을 놓쳤나'라는 제목의 사과 칼럼을 쓴 <중앙일보> 권석천 논설위원은 "지난 5년간 피해자들을 투명인간으로 만든 건 언론이었다. 아무리 절규하고 발버둥쳐도 언론의 눈엔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보인 건 수사가 본격화되고 시민들의 분노가 불붙은 뒤였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금 나 자신을 포함해 한국 기자들은 '악마의 관성'에 갇혀 있다. 위험을 감수하며 스스로의 힘으로 '탐사'하기보다는 발표 내용, 발설 내용을 그럴듯하게 포장해 '퍼 나르기' 하는 데 급급하다. 나태하게 방관하다 사냥의 방아쇠가 당겨지면 그제야 달려들어 과잉 취재를 한다. 사자가 먹다 남긴 고기에 코를 처박는 하이에나와 다른 게 무엇인가." 아닌 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우리 언론을 가리켜 '하이에나 언론'이라고 한다. 언론은 그런 비판을 받아 마땅하겠지만, 언론이 나쁘거나 사악해서 그런 건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겠다. 지금 우리는 '전통 저널리즘의 죽음', 그 전야를 목격하고 있다. 저널리즘의 보루였던 신문의 정기구독률은 14%대로 떨어졌고, 이제 뉴스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에서 가볍고 재미있고 자극적인 온갖 오락 콘텐츠와 경쟁해야 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으로까지 내몰렸다.

솔직하게 이야기하자. 그런 상황에서 탐사 저널리즘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비용 부담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아주 좋은 탐사 보도를 한다 해도 상호 경쟁적인 콘텐츠의 폭발 속에서 수용자의 인정조차 받기 어려워 동기 부여도 안 된다. 큰 사건이 터져 수용자의 주목도도 높고 취재비용도 저렴해진 상황에서나 하이에나형 탐사의 자세를 취할 수 있을 뿐이다.

이에 어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우리 언론은 '단독'이라는 말을 참 좋아하는데, 이제 '단독의 시대'는 지나갔다는 걸 인정하는 게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다. 몇 개 언론사들이 공동으로 탐사보도 팀을 꾸려 상설화하는 '협업 저널리즘'의 가능성을 모색해보자. 그런 협업 시스템은 비용 절감 효과를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취재 내용을 공동으로 보도함으로써 큰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도 높아진다.

취재 원가의 문제 때문에 기존 출입처 시스템을 바꾸기 어렵다는 게 충분히 입증된 이상 탐사보도를 하기 위해 남은 방법은 언론사들 간 협업 이외엔 없다. 사회환경 감시를 위주로 하는 탐사보도 팀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앞으로 계속될 정부와 국회의 실패를 보완해준다면 언론의 신뢰도도 높아질 것이고, 그런 재인식을 통해 저널리즘의 활로도 뚫릴 것이다.

협업 저널리즘은 꼭 같은 색깔의 언론사들끼리 할 필요는 없다. 수년째 <한겨레>와 <중앙일보>가 시행하고 있는 '사설분석 공동기사 게재'의 경우처럼 색깔이 다른 언론사들끼리 협업을 시도하는 것이 기사의 영향력 증대는 물론 우리 사회의 소통과 화합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정치권을 향해서만 소통과 협치를 외쳐댈 게 아니라 언론부터 한번 멋지게 해보자.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