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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우선이냐, 분배 우선이냐'를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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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이 우선되어야 하느냐, 아니면 분배가 우선되어야 하느냐? 우리 사회에서 이것만큼 오랫동안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 되어온 이슈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논쟁에서 어느 한쪽이 확실한 승리를 거두었다고 말하기는 힘든 상황입니다. 그러나 "성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면 나눠 먹을 떡 그 자체가 줄어든다."는 보수진영의 논리가 대체로 우세했다고 봅니다. 사실 그 동안 우리 사회가 소득재분배를 위해 팔 걷고 나선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것은 알게 모르게 성장 우선의 논리가 우리 사회를 지배해 왔다는 것을 말해 주는 좋은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성장이 제대로 이루어져야만 나눠 먹을 떡이 커진다."라는 말 그 자체는 하나도 틀린 데가 없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것은 일종의 동의어반복(tautology)에 지나지 않음을 발견할 수 있고, 따라서 성장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주장의 논리적 근거로서 충분치 못합니다. 성장우선론자가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려면 분배를 우선하는 정책기조가 성장을 저해한다는 확실한 증거를 제시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보수진영은 이와 같은 증거의 제시 없이 단지 성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면 분배도 제대로 될 수 없다는 단순 논리로 일관해 왔습니다.

그렇다면 분배를 우선하는 정책기조가 성장을 저해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 의문의 여지없는 진실일까요? 우리 지식사회에서는 성장과 분배가 본질적으로 양립불가능한 목표라는 것을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매우 강합니다. 성장이 우선되어야 하느냐 아니면 분배가 우선되어야 하는 논쟁은 바로 이와 같은 인식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성장과 분배가 양립가능한 목표라면 어느 쪽을 우선해야 하느냐를 두고 구태여 논쟁을 벌일 필요가 없을 테니까요.

성장과 분배가 양립불가능한 목표라는 명제는 지금까지 한 번도 엄밀하게 입증된 바 없는 단순한 추론에 불과합니다. 그런데도 성장과 분배가 양립불가능하다는 선입견이 널리 확산되어 있는 데는 잘못된 경제학 교육의 탓이 큽니다. 경제학자들이 쓴 글을 보면 분배를 우선하는 정책이 성장을 저해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마치 확립된 사실인 양 서술하고 있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전문가인 경제학자들이 그렇게 말하니 일반 사람들로서는 그것이 맞는 말이라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이런 잘못된 경제학 교육 탓에 우리 사회에서는 성장과 분배가 양립불가능하다는 주장이 아무 의심도 없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재분배를 추구하는 정책이 효율성의 측면에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소위 '복지병'(welfare disease)이라는 것이 효율성의 측면에서 일으킬 수 있는 문제의 한 전형적 예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예에 기초해 곧바로 효율성과 공평성, 혹은 성장과 분배가 본질적으로 양립불가능하다는 성급한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됩니다. 이 예는 성장과 분배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의 단 하나의 측면에 대해서만 말해주고 있을 뿐입니다. 성장과 분배 사이에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다양한 경로가 존재하고 있는데, 재분배를 추구하는 정책이 효율성에 나쁜 영향을 준다는 것은 단기적 시각에서 본 하나의 경로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단기적 시각에서 보면 분배가 성장을 저해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 시각에서 보면 매우 달라진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즉 (공평한) 분배가 성장을 촉진하는 요인이 될 수 있음을 보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경제학자들은 소위 '성장회계'(growth accounting)라는 분석수단을 통해 성장의 원동력이 무엇인지를 분해해 보는 작업을 합니다. 바로 여기에서 질적 성장과 양적 성장의 개념이 나오는 것입니다. 양적 성장은 노동이나 자본 같은 생산요소들이 더 많이 생산과정에 투입됨으로써 이루어지는 성장을 뜻합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기술진보에 의한 생산성의 향상을 통해 이루어진 성장은 질적 성장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이 성장회계에서 고려하지 못하고 있는 아주 중요한 성장의 요인이 하나 있고, 그런 의미에서 성장회계라는 분석수단은 성장의 원동력을 설명하는 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사회 구성원의 사기(morale) 그리고 이들 사이의 팀워크(teamwork)는 어느 경제적 요인 못지않게 중요한 성장의 원동력입니다. 잘 살아보자는 의욕도 없고, 구성원들 사이에 협조정신이 실종되어 서로를 불신하고 자기 몫만 챙기려는 상황에서 성장이 제대로 이루어질 리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요소들을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라고 부른다면, 사회적 자본의 축적은 성장의 중요한 원동력이 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평등한 분배구조하에서 사회적 자본의 축적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윌킨슨(R. Wilkinson)과 피켓(K. Pickett)이 함께 쓴 The Spirit Level 이란 책은 분배상태가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사람들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이 더욱 나쁠 뿐 아니라, 폭력, 범죄, 마약, 미혼모 등 수많은 사회적 병폐로 시달리게 된다는 분석 결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1) 그들의 분석 결과를 보면 불평등한 분배야말로 거의 모든 사회적 병폐의 원천이라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또한 그들은 분배상태가 불평등한 사회에서는 구성원 상호간의 신뢰(trust)가 아주 낮은 수준으로 떨어진다는 분석결과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분석 결과를 종합해 결론을 내린다면 결국 불평등한 분배가 사회적 자본의 감소를 가져온다는 것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공평한 분배가 사회적 자본의 축적을 돕고 그 결과 성장이 촉진되는 결과가 빚어지게 됩니다. 다시 말해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공평한 분배의 추구가 성장을 저해하기는커녕 오히려 성장을 촉진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애당초 성장이 우선되어야 하느냐 아니면 분배가 우선되어야 하느냐의 논쟁을 벌일 필요조차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이와 같은 논쟁은 성장과 분배가 서로 충돌하는 목표라는 전제하에서만 의미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이루어진 분배와 성장 사이의 관계에 대한 실증분석 결과를 보면 불평등한 분배가 성장을 저해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결론을 제시하고 있는 사례를 많이 보게 됩니다. 오스트리 등(J. Ostry et al,, 2014)은 바로 이것이 현재 상태에서 양자 사이의 관계에 대한 경제학계의 잠정적 결론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하면서, 불평등한 분배가 성장을 저해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구체적 경로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2) 즉 불평등한 분배는 국민의 건강과 교육에 나쁜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정치적, 경제적 불안정성의 증대를 가져와 투자를 위축시키며, 어떤 충격이 왔을 때 조정의 역할을 하는 사회적 합의를 손상시킴으로써 성장의 속도와 지속가능성에 나쁜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오스트리 등의 분석결과에 따르면, 재분배를 위한 정부의 개입이 성장을 저해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확실한 증거를 찾을 수 없다고 합니다. 재분배를 위한 개입이 아주 극단적 성격을 갖는 예외적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경우에서 그와 같은 개입이 성장을 촉진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성장에만 관심의 초점을 맞추고 불평등성의 문제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정책기조가 잘못된 것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 근거로서 불평등성은 그 자체로 바람직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성장의 속도를 늦추고 지속가능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점을 들고 있습니다. "성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면 나눠 먹을 떡 그 자체가 줄어든다."는 우리 사회의 지배 담론과 좋은 대조를 이루는 시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최근 우리나라를 방문한 IMF의 립튼(D. Lipton) 수석부총재 역시 이와 비슷한 견해를 표명한 바 있습니다.3) 그는 서울대학교에서 개최된 세미나에서 "수십 년간 각국의 사례를 봤을 때 불평등이 심화되는 나라는 성장이 둔화되고, 평등한 나라는 성장이 빠른 것을 볼 수 있다. 소득재분배 정책은 성장에 적대적이지 않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그의 개인적 견해라는 단서를 달지 않은 것을 보면, 이것은 IMF 안에서 거의 공식화된 견해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 IMF라면 신자유주의적 견해의 보루일 것 같은데, 이제는 바로 그 기관까지 빠르고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선 평등한 분배에 힘써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경제학계의 패러다임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성장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견해가 굳건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정책 담당자나 여론 주도층에서 그런 경향을 분명하게 관찰할 수 있음은 물론, 우리 경제학계 안에서도 그와 같은 패러다임 변화를 흔쾌히 받아들이고 있는 경제학자의 숫자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섣불리 분배를 외치다가는 그릇을 깨버리는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재분배를 위한 노력이 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투자의 의미를 갖는다는 생각을 선뜻 받아들이기가 무척 어려운 것 같아 보입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하에서 박근혜 후보가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대폭 확대라는 공약을 내걸고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를 거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입니다.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박근혜 후보가 단지 득표를 위한 의제 선점의 목적에서 그와 같은 공약을 내걸었다고 봅니다. 대통령이 된 후 그의 행적을 보면 아직도 1970년대 경제개발시대를 풍미하던 신념을 그대로 갖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 삶의 질 향상이 아니라 성장률 그 자체의 극대화에 집착하는 모습에서 그런 느낌을 받게 됩니다. 더군다나 평등한 분배가 이루어져야만 빠르고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확대를 부르짖었을 가능성은 더욱 더 희박해 보입니다.

그 동기가 무엇이었든 간에 이제 보수 정치인까지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확대를 외치게 되었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복지에 관한 국민의 의식수준이 바로 그 정도에까지 이르렀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증거라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보수 정치인이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확대를 외치는 광경은 무척 낯설었을 텐데, 이제는 표를 얻기 위해 그런 공약을 내걸어야 하는 상황으로 사회 분위기의 대전환이 이루어졌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지난 몇 십 년 동안 오직 '경제성장'만을 외치며 달려 왔던 우리 사회가 이 정도의 성숙성을 보이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사실에 가슴이 뿌듯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확대를 약속하면서 "증세를 하지 않는다."라는 전제를 달아 놓음으로써 스스로의 손발을 묶는 결과를 빚었습니다. 불황이 계속되어 온 데다가 부질없는 MB정부의 감세정책 탓으로 과세기반이 무척 취약해진 상황에서 증세 없이 복지 공약을 충실하게 이행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집권 후 증세 없이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이 지켜질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박근혜 정부는 증세를 감행하는 대신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확대폭을 축소하는 대안을 선택했습니다. 이는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확대하겠다는 약속보다 증세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만약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확대를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반드시 이루어야 할 목표로 삼고 있었다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의 머릿속에 '감세는 미덕, 증세는 악덕'이라는 신자유주의적 신념이 아직도 굳게 자리를 잡고 있다는 좋은 증거가 아닐까요?

정부는 조세수입의 범위 안에서만 각종 사업에 쓸 수 있는 재원을 마련할 수 있을 뿐입니다. 만약 증세를 하지 많고 사회복지 지출을 늘린다면 다른 사업에 쓸 돈을 줄여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현재 정부가 운영하고 있는 지출 프로그램 중 어떤 것을 대폭 삭감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겠습니까? 박근혜 후보는 세금도 더 걷지 않고 다른 지출예산을 대폭 삭감하지도 않고 단지 지하경제의 양성화 하나만을 통해 자신의 복지관련 공약을 지킬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추가로 확보할 수 있는 재원이 불과 얼마 되지 않음이 명백하게 드러난 이 순간에도 박근혜 정부는 증세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고집스레 끌어안고 있습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 일각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과잉복지론'이 바로 이와 같은 딜레마에 빠진 박근혜 정부를 구해주기 위한 교묘한 이념전쟁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복지 관련 정부지출에 대한 그 어떤 국제비교 결과를 봐도 현재 우리 사회가 복지 과잉의 단계에 진입해 있다는 결론을 낼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OECD가 정리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정부의 복지관련 지출의 대 GDP 비중에서 우리나라는 2014년 현재 10.4%를 기록해 통계수치가 나와 있는 26개국 중 꼴찌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4) 또한 최근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이 발표한 "포용적 성장과 발전 보고서 2015"를 보면, 우리나라는 복지정책의 불평등 감소효과라는 측면에서 조사대상 30개국 중 26위로 최하위권에 속하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현재 보건복지부가 중심이 되어 '복지재정 효율화'라는 명분을 내걸고 각종 복지사업을 정리하는 작업을 수행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고 봅니다. 즉 복지지출 요구를 줄여 증세를 하지 않아도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꾸려나갈 수 있음을 보이기 위한 목적에서 국민의 눈이 잘 미치지 않는 영역에서 일부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쳐내는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보인다는 말입니다. 물론 현행 사회복지 프로그램 중에서 문제가 있는 부분은 당연히 정리 대상이 되어야 마땅한 일입니다. 그러나 단지 증세 없이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이 이행된 것처럼 보이려는 목적에서 그런 작업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국민의 눈을 속이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가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확대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으며 이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더 많은 세금을 거두어야 한다면 주저할 것 없이 과감하게 이를 실행에 옮겨야 합니다. '증세는 악덕'이라는 신자유주의적 신념은 아무런 합리적 근거도 없는 도그마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눈을 떠야 합니다. 지금 상황에서 국민의 조세부담이 한계에 도달해 있다는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할 수 없는 한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증세에 반대할 하등의 이유도 없습니다. 한사코 증세는 안 된다고 고개를 내젓는 박근혜 정부를 보면서 답답하기 짝이 없는 옹고집이라고 느끼는 사람이 비단 저 하나뿐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MB정부의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감세조치를 무효화하고 원래의 위치로 돌아가는 것만으로도 사회복지 프로그램 확대에 필요한 재원의 상당 부분을 충당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피부로 느끼고 계시듯, 그 감세정책은 부자들에게 뜻밖의 이익만 가져다주었을 뿐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아무런 효과도 내지 못했습니다. 감세정책으로 인한 실제의 세수 결손에 관해서는 추정하는 기관마다 서로 다른 수치를 내놓고 있지만, 연간 몇 조원 대를 훌쩍 뛰어넘는 상당한 금액이라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 정도의 조세수입만 추가적으로 확보된다 해도 사회복지 프로그램 운영의 숨통이 크게 뚫릴 것이라고 봅니다.

보수진영은 법인세율을 3% 포인트 올려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면 큰일이라도 날 듯 떠들지만 사실 그것이 이렇다 할 문제를 일으킬 소지는 없습니다.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더 낮은 법인세율이 부과되는 지역으로 빠져나갈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예전의 법인세율 수준에서 빠져나가지 않던 기업이 원래의 상태로 돌아갔다고 새삼 해외이전을 고려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법인세율이 올라가면 투자가 줄어들 것이라는 주장도 하는데, 과연 어떤 이론적 근거에서 그런 주장을 하는지 심히 의심스럽습니다. 제가 전공하는 재정학에서 법인세율 인상이 곧바로 투자 감소로 이어진다는 신빙성 있는 주장을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소득세의 경우에는 단지 원래의 위치로 돌아가는 데 그치지 않고 최고소득세율의 상향조정을 통해 한층 더 적극적으로 세수확충을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는 1억 5천만원을 넘는 소득에 대해 38%의 최고소득세율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이는 소득이 2억원인 기업의 임원과 500억원인 재벌총수가 똑같은 최고(한계)소득세율의 적용을 받고 있음을 뜻합니다. 여러분은 이것이 능력원칙에 따른 합리적인 조세부담의 분배라고 생각하십니까? 최소한 저는 그렇지 않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10억원을 넘는 소득이나 100억원을 넘는 소득에 대해서는 현행보다 훨씬 더 높은 한계세율을 적용해야 마땅한 일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최고소득세율이 계속 하향조정 되어 온 것은 사실이나, 이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추세 역시 한때 전 세계를 휩쓸었던 신자유주의의 바람에 크게 영향을 받은 것이라 볼 수 있는데, 과연 그와 같은 하향조정이 경제에 어떤 긍정적 효과를 가져왔는지는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전혀 없습니다. 신자유주의자들은 너무 높은 세율이 근로의욕의 감퇴를 가져온다는 근거에서 감세를 부르짖었지만, 미국의 경우 1980년 70%였던 최고소득세율이 두 번의 조세개혁을 통해 28% 수준까지 낮춰졌지만 이로 인해 고소득층이 더 많이 일하게 되었다는 증거는 전혀 찾을 수 없습니다. 제가 쓴 논문에서 밝혔듯, 감세정책의 결과 노동 공급에 현저한 증가가 일어나지 않았고, 단지 감세정책의 혜택이 미치지 못하는 중,저소득계층에서 약간의 증가가 일어났을 뿐입니다.5)

지금은 40% 내외의 최고소득세율이 일종의 유행이 되었으나 신자유주의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기 전만 하더라도 각국의 최고소득세율은 매우 높은 수준에 있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스캔디나비아 제국은 물론 미국만 해도 1964년까지 91%라는 아주 높은 최고소득세율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비해 최고소득세율이 대폭 낮아진 지금의 소득세제도가 당연히 더 바람직한 것이라고 주장할 근거가 별로 없습니다. 최고소득세율이 90%대의 수준으로 돌아가는 것까지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하더라도, 65%나 70% 정도까지는 올리는 것은 충분히 가능할 뿐 아니라 바람직하기까지 하다는 말이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소득분배이론의 대가 앳킨슨(A. Atkinson) 교수는 현재 45%인 영국의 최고소득세율을 65%로 상향조정할 것을 제의하고 있습니다.6) 또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스티글리츠(J. Stiglitz) 교수도 최상위계층의 담세율이 50% 수준을 넘어야 마땅하고, 70% 수준에 이를 정도로까지 높이는 것도 충분히 고려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습니다.7) 이들 이 외에도 많은 연구 결과들이 소득세율의 상향조정을 통한 누진성의 강화가 바람직하다는 사실을 이론적으로 입증해 주고 있습니다.8) 마치 유행처럼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간 낮은 수준의 최고소득세율이 과연 경제에 어떤 긍정적 효과를 가져왔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도 그와 같은 의문을 본격적으로 제기하고 세수확충을 위한 수순을 밟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MB정부의 감세정책 중 두고두고 아쉽게 생각되는 부분은 종합부동산세를 무력화해 버린 일입니다. 2007년 2조 4,142억원에 이르렀던 종합부동산세 수입이 MB정부의 조처로 인해 반토막이 나버려 2013년에는 1조 2,243억원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참여정부의 원래 구상에 따르면 종합부동산세 수입은 2조원보다도 더 높은 수준으로 증가하게 되었는데, 아주 좋은 세수확충의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 버린 셈입니다. 요즈음 경제학계에서는 부동산 과세가 효율성의 상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는다는 점에서 새로이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종합부동산세는 최상위소득계층에 속하는 단 2%만이 부과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취약한 우리 조세제도의 누진성을 강화해 주는 긍정적 효과까지 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종합부동산세제가 갖는 그와 같은 장점을 제대로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보수적 정치인과 보수언론에서 줄기차게 떠들어온 것처럼 많은 문제점을 갖는 세금이라는 인식만이 사람들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처럼 왜곡된 여론을 등에 업고 MB정부는 아무런 반발도 받지 않고 종합부동산세를 무력화 해버리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조처인지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어야 마땅한 일이었는데, MB정부가 일사천리로 무력화의 수순을 밟도록 방치해둔 점이 두고두고 아쉬움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 주위를 돌아보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사회복지 혜택의 사각지대에서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마저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그 동안 좌우를 살피지도 않고 성장만을 유일한 목표로 삼고 달려온 우리 사회지만 이제는 삶의 질을 높이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찾아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와 비슷한 수준에 있는 다른 나라들의 예와 비교해 본다 해도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대폭 확대는 불가피한 일이라는 결론에 이릅니다. 그렇다면 적극적인 세수확충을 통해 충분한 재원을 마련한 다음 신중하게 선택된 우선순위에 따라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확장이라는 수준을 밟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증세를 하지 않고서도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확장시킬 수 있다는 잘못된 신념을 미련 없이 던져 버리는 일입니다.

최근 우리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가 모두 저성장기조라는 종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사회복지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와 같은 저성장기조는 또 하나의 심각한 도전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성장률을 높이는 것이 급선무라는 주장이 더욱 큰 설득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저성장기조하에서는 조세 수입의 증가속도도 늦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회복지 프로그램 확장에 쓸 재원조달에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 뻔합니다. 심지어 사회 일각에서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축소가 필요하다는 주장까지 나올 수 있습니다. 평소 복지관련 지출이 불요불급한 성격의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와 같은 주장에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모습을 보일 것입니다.

비록 보수정당이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확장을 공약으로 들고 나오는 단계까지 이르렀기는 했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복지제도의 당위성에 대한 인식이 그다지 높은 편은 아닙니다. 시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정치인들이 언제 태도를 바꿔 성장을 촉진하는 정책에 최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는 주장을 들고 나올지 모릅니다. 그리고 저성장기조가 오래 계속될수록 그런 태도 변화가 발생할 가능성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성장기조로 인해 이제 간신히 본격적인 성장궤도에 들어선 우리의 복지제도가 총체적인 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는 불안한 예감을 떨쳐내기 힘든 것입니다.

이런 위기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서는 국민을 설득해 사회복지를 위한 지출이 결코 낭비가 아니라는 점을 납득시켜야 합니다. 저성장기조에서 빠져 나오려면 장기적 관점에서 성장동력을 배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입니다. 단기적 시각의 경기부양책은 성장률을 잠시 올려놓는 성과를 낼지 몰라도 저성장기조로부터의 탈출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확장은 저소득층 사람들에게 좋은 건강과 충분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이들이 더 높은 생산성을 발휘할 수 있게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이 점에서 본다면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확장은 장기적 성장동력의 배양이란 측면에서 분명한 긍정적 효과를 갖습니다.

사회복지학자들 그리고 저 같은 경제학자들이 공통적으로 떠맡아야 할 임무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와 같은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진정한 의미를 온 국민에게 전파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온 국민이 복지제도의 당위성을 흔쾌히 인정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축소를 부르짖는 반동적 분위기의 등장을 막을 수 있습니다. 저성장기조로 인해 복지제도에 가해지는 위협이 커질수록 이와 같은 임무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복지사회의 도래를 고대하고 있으며, 이 점에서 사회복지학자들에게 특히 큰 기대를 걸고 있음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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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Richard Wilkinson and Kate Pickett, The Spirit Level, York: Bloomsbury, 2009.

2) Jonathan Ostry, Andrew Berg, and Charalambos Tsangarides, "Redistribution, Inequality, and Growth," IMF Staff Discussion Note, February 2014.

3) "립튼 IMF 수석부총재 - 한국, 소득 불평등 심화... 재분배정책 펼쳐야," 한국일보, 2015년 2월 4일자

4) OECD,Stat, http://stats.oecd.org/

5) 이준구, "미국의 감세정책 실험: 과연 경제 살리기에 성공했는가?" 『경제논집』 51(2012)

6) Anthony Atkinson, Inequality: What Can Be Done?, Cambridge, Mass.: Harvard University Press, 2015.

7) Joseph Stiglitz, The Price of Inequality, New York: Norton, 2012, p.442. 그러나 스티글리츠 교수가 최고소득계층의 담세율을 그 수준으로 높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 것이 평균세율을 뜻하는 것인지 한계세율을 뜻하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표현 그 자체는 평균세율을 뜻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한계세율을 뜻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8) 예를 들어 Peter Diamond and Emmanuel Saez, "The Case for a Progressive Taxation: From Basic Research to Policy Recommendations," Journal of Economic Perspectives 25(2011)을 보라.

* 이 글은 2015 사회정책연합 공동학술대회 기조연설을 수정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