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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병제(募兵制)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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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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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신문 보니 최근 빈발하고 있는 병영에서의 가혹행위와 이로 인한 사고를 막기 위한 방안으로 모병제를 제시한 글이 나와 있더군요.
안경환 명예교수께서 바로 그 글을 쓰셨는데, 내가 평소부터 존경하던 분이라 반론을 제기하기가 좀 뭐하지만 그래도 입을 닫고만 있을 수는 없어 나도 한 마디 해보려고 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 역시 모병제에 대해 어느 정도 호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시장 메커니즘을 중시하는 경제학자로서는 당연한 태도일지 모르지요.
그런데 "정의란 무엇인가?"를 쓴 샌델(M. Sandel) 교수의 "What Money Can't Buy"라는 책을 읽고 생각을 바꿨습니다.

이 책은 모든 것에 가격을 붙여 거래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인가에 대해 본질적인 의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경제학에는 "파레토원칙"(Pareto principle)이라는 유명한 법칙이 있습니다.
어떤 물건은 그것을 가장 높은 가치로 평가하는 사람에게 돌아가야 효율적이라는 원칙입니다.

예를 들어 생수 한 병에 대해 A라는 사람은 500원의 가치로 평가하고 있는 한편, B라는 사람은 300원의 가치로 평가한다고 가정해 보기로 하지요.
어떤 이유에서 그 생수가 300원을 낸 B에게로 팔렸다고 해봅시다.
이때 A가 B에게 400원을 줄 테니 그 생수를 자기에게 팔라고 제의했고, B가 이 제의에 응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교환을 통해 A와 B 모두가 이득을 본 셈이 됩니다.
생수를 300원에 평가하는 B는 400원에 되팔았으니 100원의 이득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생수에 대해 500원까지 낼 용의가 있는 A는 그걸 400원에 얻었으니 역시 100원의 이득을 얻은 것입니다.

이처럼 어떤 교환을 통해 아무에게도 손해가 발생하지 않고 최소한 한 사람 이상이 이득을 얻으면 이때 파레토개선(Pareto improvement)이 일어났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애당초 B에게 300원을 받고 생수를 판 것은 비효율적인 일이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 상태에서 또 한 번의 교환을 통해 파레토개선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은 원래의 상태가 비효율적이었음을 뜻하니까요.

따라서 이 예에서 파레토최적(Pareto optimal)의 배분은 500원을 받고 A에게 그 생수를 파는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는 어떤 방법을 쓰든 더 이상의 개선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시장경제에서 가격을 통해 상품을 교환하는 것은 이처럼 파레토최적의 결과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효율적이 되는 것입니다.

모병제도 병역의무를 시장메커니즘에 의해 해결하자는 아이디어에 기초해 있습니다.
말하자면 병역의무를 이행하지 않아도 좋은 권리를 사고 팖으로써 효율적인 결과를 만들어내자는 아이디어니까요.

예를 들어 가난한 집안의 자제인 C는 한 달에 200만원의 보수를 준다면 군에 입대할 용의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유한 집안의 자제인 D는 한 달에 1,000만원을 준다 해도 입대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 대신 세금을 더 내는 조건으로 병역의무를 면제해 준다면 기꺼이 이 제의에 응할 용의를 갖고 있습니다.

모병제가 실시되면 군은 당연히 C와 같은 사람으로만 채워지게 됩니다.
C와 D 사이에 협상이 이루어져 일정한 대가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D는 병역의무를 합법적으로 면제 받은 상황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병역면제와 관련된 권리가 둘 사이에서 거래된 것인데, 흥미로운 것은 이와 같은 거래가 파레토개선을 가져왔다는 사실입니다.
군대를 가지 않게 된 D에게 이득이 생기는 것은 물론, 군대를 가게 된 C에게도 이득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지금처럼 전쟁이 없어 군에서 하는 일이 육체적으로 조금 더 고된 직장 일이나 다름 없다면 그 구도에 별 문제가 없을지 모릅니다.
매일 구보하고 총 쏘는 연습하면서 한 달에 200만원의 월급을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다면 C에게 별 문제가 없는 일일 테니까요.

그러나 언제나 평화가 계속될 수는 없고 언젠가는 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실제로 군은 그런 비상시를 대비하기 위해 필요한 조직 아닙니까?
모병제하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거기서 죽은 사람은 모두 가난한 사람들의 자제일 텐데, 여러분은 이런 결과가 일어나도 무방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샌델은 그 책에서 1860년의 미국 남북전쟁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남북전쟁을 통해 수많은 전사자들이 발생했지만, 그 중에 빽 있고 돈 있는 가정의 자제는 거의 없었다는 겁니다.

남군의 경우에는 소유하고 있는 흑인 노예의 숫자에 따라 그 집안에 배정되는 병역면제 쿼터가 결정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노예 30명당 한 명의 가족이 병역면제를 받는다는 식으로요.
노예제를 반대하는 북군의 경우에는 그런 쿼터제가 없었지만, 징집영장이 나왔을 때 돈을 주고 다른 사람을 대신 군에 입대시킬 수 있었답니다.

그러니까 전쟁에 간 젊은이들은 모두 빽 없고 돈 없는 가정의 자제들일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샌델은 오늘날의 모병제가 남북전쟁 때의 징집방식과 본질적으로 전혀 다를 바 없다고 지적합니다.
그리고선 그런데도 당신은 모병제를 지지할 거냐고 질문을 제기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몰라도, 나는 이런 구도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병제에 반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샌델이 제기하고 있는 이 문제는 철학에서 '분배에서의 정의'(distributive justice)라고 불리는 영역에 속하는 문제입니다.
이득과 비용을 사회 구성원 사이에서 어떤 방식으로 분배하는 것이 정의로우냐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지요.

외적의 침입에 대해 나라를 지키려면 누군가는 군 복무의 의무를 져야 합니다.
지금 같은 징병제는 건강한 남자라면 모두가 병역의무를 지는 것이 공평하다는 인식에 기초한 제도입니다.
반면에 모병제는 일정한 대가를 받고 기꺼이 군복무를 하겠다는 사람에게만 그 의무를 분배하는 제도입니다.

나는 그것이 국방의무라는 부담을 정의롭게 분배하는 방식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방의 의무는 모든 건강한 남자(혹은 여자까지도 포함시킬 수 있을런지 모르지요)가 공평하게 나눠서 지는 것이 정의롭다는 데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거래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효율성의 관점에서 보면 모병제가 더 나을지 모르지만, 병역의무의 분배라는 중요한 문제를 그런 피상적인 효율성의 관점에서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같은 나라가 모병제를 실시한다면 어떻게 될지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계속 평화가 유지된다는 비현실적인 가정하에서만 모병제가 그럴듯하게 들릴 뿐, 이스라엘처럼 매일매일이 전쟁 상황인 경우에는 징병제밖에 답이 없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내가 늘 개탄하는 바지만, 우리 사회에는 효율성만을 중시하는 잘못된 경제학의 악영향이 구석구석에 팽배해 있습니다.
이것이 단지 사상의 결함으로만 그치면 별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정책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큰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살 만한 가치가 있는 바람직한 사회를 만들려면 이 효율성의 마법에서 벗어나야만 합니다.

* 이 글은 필자의 홈페이지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