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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읽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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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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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인기가 너무나 높아 나도 요즈음 하는 일을 잠시 옆에 미뤄 두고 이 책을 읽기로 결심했습니다.
이제 읽기 시작해 겨우 Introduction을 마친 단계지만, 여기에 재미있는 구절이 너무 많아 소개를 해드리겠습니다.

우선 나는 Piketty가 그 정도로 천재였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습니다.
경제학계에서 천재라면 Lawrence Summers나 Paul Krugman을 흔히 생각하는데
Piketty도 이들에 전혀 모자랄 것이 없는 천재라는 사실을 최근에 새로이 알게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미국이 아닌 곳에 그런 천재 경제학자가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놀랍구요.
(요즈음 경제학이 미국의 독점 체제하에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지요.)

이 책에는 그가 미국에 약간 살았던 경험이 있다는 얘기가 나오더군요.
22살 때 미국에 갔다가 25살 때 프랑스로 돌아오게 되었다구요.
그저 Boston 근방에서 가르친 적이 있다고만 얘기할 뿐 더 이상 구체적인 언급은 없습니다.

그가 잠깐 MIT 교수로 일했다는 걸 알고 있었던 터라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더니 Piketty가 말하고 있는 미국 생활의 경험이 바로 그것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Piketty는 22살에 프랑스에서 박사를 받고 미국으로 건너가 MIT 교수가 되었다가 25살 때 미국 생활 접고 프랑스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고국 프랑스로 돌아오기로 결심한 동기가 재미있습니다.
한마디로 미국 경제학에 대한 환멸 때문에 프랑스로 돌아오기로 결심했다는 겁니다.
(미국 경제학에 목 매달고 사는 우리나라 경제학자들에게 자존심 좀 가져 보라고 외치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현대 경제학에 대해 다음과 같이 통렬한 돌직구를 날리고 있습니다.

To put it bluntly, the discipline of economics has yet to get over its childish passion for purely theoretical and often highly ideological speculation, at the expense of historical research and collaboration with other social sciences. Economists are all too often preoccupied with petty mathematical problems of
interest only to themselves. This obsession with mathematics is an easy way of acquiring the appearance of scientificity without having to answer the far more complex qustions posed by the world we live in.

한마디로 말해 경제학자는 현실과 아무 상관이 없는 수학의 유희를 즐기고 있을 뿐이라는 비판인데, 정말이지 이 부분을 읽으면서 속이 다 시원해지데요.
경제학자들은 자기네들끼리만 흥미를 갖는 공리공론을 일삼는다는 비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말이지요.

Piketty는 한 가지 또 재미있는 발언을 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에 와서 경제학자로 활동하면서 (미국에 있을 때와 비교해) 하나의 큰 장점이 있다는 걸 발견했답니다.
프랑스에서는 경제학자들이 지식계층 혹은 정치적, 경제적 엘리트들에게서 별 존경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 바로 그 장점이라는 겁니다.

자기도 그 중 하나인데 경제학자들이 존경을 받지 못하는 게 장점이라고 말하니 참으로 이상한 발언이지요?
그 다음의 말을 들어 봐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프랑스의 경제학자들은 다른 학문을 하는 사람들을 무시할 수 없고, 또한 경제학이 더 큰 과학성을 갖는다는 궤변도 늘어놓을 수 없다는 겁니다.

Piketty는 이 말 뒤에 "they know almost nothing about anything"이란 말을 덧붙입니다.
여기서 they는 경제학자를 가리키는 말인데, 경제학자들이 실제 경제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는 통렬한 비판입니다.
그러면서 다른 학문을 무시하기 일쑤인 경제학자들을 마음껏 비웃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경제학에 대한 이와 같은 비판은 주로 미국 경제학자들에게 향한 것이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미국 경제학자들보다 더 욕 먹어 싼 사람들은 우리나라 경제학자들입니다.
Piketty가 비웃고 있는 경제학자의 약점이란 측면에서 우리나라 경제학자들이 한 술 더 뜨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경제학자들은 인접 학문을 하는 사람들에게 욕을 많이 얻어먹는 편입니다.
걸핏하면 그들을 무시하고 마치 경제학적 논리가 불변의 진리인 양 오만을 떨기 일쑤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위원회에 참석했을 때 경제학자들의 오만한 태도에 불쾌감을 느끼고 돌아와 불평하는 사회과학대학의 동료 교수들 많이 봤습니다.

정말이지 내가 보기에 우리 사회의 경제학자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겸손해져야 마땅합니다.
솔직히 말해 미국 경제학의 아류에 지나지 않으면서도 인접 학문에 대한 오만은 눈 뜨고 못 볼 지경인 때가 많으니까요.
그런데 내가 경제학자들에게 겸손해지라고 말하면 아마도 "네가 무슨 자격으로 그런 말을 하느냐."는 볼멘 소리가 돌아올 게 분명합니다.
그러나 Piketty 같은 천재가 그런 말을 하면 그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군요.

이 책을 읽으면서 또 하나 멋지다고 생각한 것은 그 동안 경제학이 소득과 부의 분배 문제에 대해 너무나 소홀한 대접을 해온 것은 비판한 부분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분배의 문제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생각해 볼 때 그와 같은 홀대를 정당화할 하등의 근거를 찾을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가 주장하는 것처럼 이제는 분배문제가 경제학의 중심 과제 중 하나가 되어야 마땅한 일입니다.

내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든 또 하나의 주장이 있습니다.
그것은 분배의 문제에는 정치적인 측면이 강하게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에 순전히 경제적인 메커니즘에 의해서만 이해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입니다.
이것은 내가 그 동안 분배문제에 대해 공부해 오면서 절실하게 느꼈던 점이기도 합니다.

다음과 같은 그의 말을 직접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The history of inequality is shaped by the way economc, social, amd political actors view what is just and what is not, as well as by the relative power of those actors and the collective choices that result.

이제 본문을 읽기 시작할 때지만, Introduction만 읽고도 나는 그의 팬이 되어 버린 기분입니다.
왜 보수적인 경제학자들이 그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지 훤히 알 만합니다.
나로서는 이런 천재 경제학자가 경제학자들의 위선을 마음껏 비웃어주는 것이 너무나 통쾌할 따름입니다.

* 이 글은 이준구 교수의 홈페이지에 실린 글입니다.

PRESENTED BY 덕혜옹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