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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최고경영진의 고액연봉은 정당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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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utterstock / Peshko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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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최고경영자 과정의 졸업식에서 한 졸업생이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그 과정을 수강하는 과정에서 제일 인상 깊은 강의가 무엇이었느냐에 대해 한 말입니다.

한 은행의 고위직 임원으로 있는 그는 자신이 하는 일에 비해 너무 많은 보수를 받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 때문에 괴로워한 적이 많았답니다.
그런데 그 과정의 한 강의에서 그런 걱정을 한방에 날려버릴 후련한 말을 들었고 그래서 자신은 그 강의를 최고의 명강으로 꼽는다고 말하더군요.

그 강사가 하는 말이 임원의 높은 보수는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 앞으로 자신도 열심히 일하면 그런 보수를 받을 수 있구나라는 희망을 심어주는 의미를 갖기 때문에 결코 부당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답니다.
그 말이 자신에게 얼마나 큰힘이 되었는지 모른다는 그 과정 수강생의 말이었습니다.

얼마 전 경제학과 동창회에서 내 친구들이 임원들의 고액 연봉을 두고 논쟁을 벌이더군요.
그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아닌지 말이지요.
대체로 바람직하다는 주장이 이기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사실 서울상대 경제학과 정도 나왔으면 그런 고액 연봉 받았을 가능성이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바람직하다는 논리가 우세를 보였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난 기본적으로 로펌의 변호사나 강남의 성형외과 의사들보다는 기업의 임원이 더 높은 보수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과연 최근에 드러난 것같은 엄청난 보수에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인지는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경제학에서는 각자가 생산과정에 기여한 바에 따라 보수를 받게 된다고 가르칩니다.
그것이 바로 한계생산성에 입각한 소득분배이론인데, 지금 우리가 배우고 있는 신고전파 소득분배이론의 핵심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생산직의 경우에는 생산과정에서 기여한 바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지만 임원의 경우에는 무척 어려울 게 분명합니다.
임원이 정말로 생산직 근로자의 100배나 되는 한계생산성을 갖는다는 걸 자신있게 입증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미국사회에서 부의 집중이 문제 되고 있는데, 최고소득계층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것이 기업의 최고경영진과 월가(Wall Street) 사람들이라는 건 잘 알고 계시겠지요?
기업 임원들의 높은 연봉은 최근 미국 기업문화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입니다.

Galbraith가 말했듯, 1960년대를 전후해서는 미국 기업의 임원들이 고액 연봉을 자제하는 풍토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었지만 그것은 공정한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 있었다는 거죠.
70년대, 80년대 오면서 그런 풍토에 변화가 오고 임원들이 스스로의 연봉을 경쟁적으로 올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주주자본주의의 확산도 큰 몫을 했습니다.
주주자본주의의 이념에 따르면 주가극대화가 경영자의 유일한 목표이며, 주가를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는지의 여부가 그의 성과를 측정하는 유일한 잣대가 됩니다.

어떤 CEO가 주가 끌어올리기에 성공해 주식 가치가 10억 달러 더 커졌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자신이 경영을 잘해 주주들에게 10억 달러의 이득을 가져다 준 셈인데, 내가 그 중 5% 정도를 가져가도 되지 않겠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때 그가 가져갈 보수는 5천만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수치가 되구요.
미국 최고경영진이 받는 보수가 최근 기하학적 속도로 급상승한 데는 이런 배경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식 가치가 올라간 데는 CEO의 탁월한 리더십이 중요한 역할을 했을지 몰라도 그 기업의 모든 사람이 함께 열심히 일해 그 성과를 일구어낸 것이 아닙니까?
그 성과를 어떻게 최고경영진만의 공으로 돌릴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난 미국 기업의 최고경영진이 받는 엄청난 보수는 정당화될 수 없다고 봅니다.

미국에 비하면 EU나 일본 기업의 최고경영진이 받는 보수는 그리 엄청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미국 기업만을 벤치마킹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일전에 스위스에서 최고경영진의 보수를 평균급여의 12배 이내로 제한하자는 안이 나와 주민투표에서 진 적이 있습니다.
남의 나라 일이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그 안이 이기기를 바랐습니다.
전 세계 기업 보수구조에 일대 혁신을 가져올 계기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최근 공개된 우리 기업 최고경영진의 보수에서 전혀 납득할 수 없는 사실이 한 가지 있습니다.
어떻게 SK의 최회장은 거의 모든 기간을 감옥에 있었으면서도 300억원 이상의 보수를 챙겼느냐는 의문입니다.
만약 배당금이라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어마어마한 금액은 경영자로서의 노력에 대한 대가를 뜻하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재벌 그룹의 오너들은 불과 2, 3%밖에 안 되는 지분으로 거대 그룹을 지배하는 특권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것만 해도 엄청난 특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게다가 경영에 참여한다는 명목으로 거액의 보수까지 받습니다.
이것이 과연 정의로운 일이라고 보십니까?
난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다는 의미에서 최고경영진의 보수가 높은 게 바람직하다는 논리는 수긍하기 어렵습니다.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의 90% 이상이 그런 자리는 꿈도 꾸지 못하는 상태에서 은퇴를 하게 될 테니까요.

기업이 이윤을 많이 남기면 그 기업에서 일한 모두에게 고루 그것을 나눠줘야 합니다.
이와 동시에 하청기업 쥐어짜지 말고 공생을 모색해야 합니다.
최고경영진 몇 명에게 주는 높은 보수가 기업 전체의 이윤 규모에 비해 아주 작은 것일지 몰라도 아래에서 땀 흘리고 일하는 사람에게 좌절감을 안겨줄 수 있습니다.
1원1표의 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자본주의라 해서 힘을 가진 사람이 모든 걸 자기 유리한 방식으로 처리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사회질서가 아닙니다.

*이 글은 필자의 홈페이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