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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인 나도 처음 들어보는 희한한 '구축효과'의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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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ckFinland via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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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르치는 경제학원론의 수준이 너무 낮다고 말하는 학생들이 가끔 있습니다.
사실 나는 경제학원론뿐 아니라 현역 시절 가르치던 미시경제학이나 재정학 모두 쉽게 가르치는 편입니다.
학부 과목은 기본개념 위주로 가르쳐야 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일부러 쉽게 가르치는 쪽을 선택한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해 내 강의의 수준이 너무 낮다고 불평하는 학생들이 실제로 내가 강조하는 기본개념을 얼마나 잘 이해하면서 그런 말을 하는지는 잘 모릅니다.
기본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은데, 얼마나 자신이 있기에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내 강의만 완벽하게 소화해도 훌륭한 경제학 이해의 수준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 내 지론입니다.

경제학의 기본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다음 글을 읽어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이 글은 C일보의 7월 26일자 사설에서 일부를 옮긴 것인데, 미안하지만 아주 기초적인 개념상의 오류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경제학원론 시험에서 '구축효과'(crowding-out effect)에 대해 물을 때가 많은데, 이런 식으로 답변하면 오답으로 처리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부는 소득 주도 성장을 위해 들어온 세금보다 더 많이 지출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씀씀이의 효율성에서 정부는 민간을 이길 수 없다. 한정된 재원을 정부가 더 많이 가져다 쓰는 것은 국가 경제의 비효율성을 증폭시킬 뿐이다. 이 '구축효과'(crowding-out effect)는 경제학에서 검증이 끝난 이론이다. 같은 돈도 정부가 세금으로 걷어 쓰는 것보다 기업이 투자나 연구 개발 등에 활용하는 것이 훨씬 성장에 도움이 된다.

이 글을 보면 구축효과라는 것이 "한정된 재원을 정부가 더 많이 가져다 쓰는 것이 국가 경제의 비효율성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가리키는 개념인 것처럼 서술되어 있습니다.
경제학자인 나도 처음 들어보는 희한한 구축효과의 정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어느 경제학원론 교과서를 봐도 구축효과를 그렇게 설명하고 있는 책은 하나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경제학 배우실 때도 그렇게 배운 적이 전혀 없을 게 분명하구요.

정확히 말해 구축효과는 국채발행을 통해 정부지출을 늘리면 민간부분의 투자가 감소하는 결과가 빚어지는 것을 뜻하는 용어입니다.
채권시장에서 정부가 발행한 채권이 더 많이 팔림에 따라 민간 기업이 투자자금 마련을 위해 발행한 채권이 덜 팔리는 결과가 빚어지기 때문에 그런 효과가 나온다고 설명하지요.
혹은 정부지출의 증가가 이자율의 상승을 가져오고 그 결과 기업의 투자가 줄어든다고 설명할 수도 있구요.

결국 (국채발행으로 충당된) 정부지출이 민간 기업의 투자를 구축해 버리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뜻에서 '구축'(crowding-out)라는 이름이 붙은 겁니다.
민간부문의 투자가 줄어드는 것을 바람직하지 않게 볼 수 있는 여지는 다분히 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민간부문의 투자 감소가 경제 전반의 효율성에 나쁜 영향을 줄 소지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구축효과라는 게 씀씀이의 효율성 측면에서 정부가 민간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 틀린 말입니다.
그리고 모든 형태의 정부지출의 증가가 국가 경제의 비효율성을 더 크게 만들지도 않습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정부지출의 증가가 국가 경제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이 글에서 또 하나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대목은 "이 구축효과는 경제학에서 검증이 끝난 이론이다."라고 단언하는 부분입니다.
경제학에서 검증이 끝났다는 건 그런 효과가 나오는 것이 자명한 사실로 밝혀져 모든 경제학자들이 동의한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경제학자인 나도 구축효과라는 것이 경제학계에서 그렇게 널리 인정을 받고 있는지는 미처 몰랐네요.

여러분이 잘 아시듯 맨 처음 구축효과라는 개념을 들고 나와 케인즈경제학자를 공격한 것은 시카고학파 경제학자들이었습니다.
케인즈경제학자들은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적자재정도 서슴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 시카고학파 경제학자들은 그렇게 정부지출을 늘려봐야 민간부문의 투자가 줄어들어 상쇄해 버리기 때문에 총수요가 늘어나지 않고 따라서 경제도 활성화되지 않는다고 반박한 것입니다.

그 후 구축효과를 둘러싼 두 학파 사이의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케인즈경제학자도 국채발행을 통한 정부지출 증가가 어느 정도의 구축효과를 발생시킨다는 점을 부정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민간부문 투자의 감소가 정부지출 증가의 효과를 완전히 상쇄해 버릴 정도로 구축효과가 강하게 발생하는 것은 아니라고 반박했습니다.

이에 더해 케인즈경제학자는 경제가 극심한 불황에 처해 있을 때는 정부지출의 증가가 민간부문의 투자를 이끌어내는 정반대의 crowding-in효과를 낼 수도 있음을 지적헸습니다.
정부지출 증가가 경제를 어느 정도 활성화시켜 주면 투자를 꺼리던 기업들이 용기를 내서 투자를 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어찌 되었든 이 글을 쓴 사람이 주장하듯 경제학계에서 구축효과에 대한 검증이 모두 끝난 것은 결코 아닙니다.
더군다나 그것이 시카고학파의 완승을 의미하는 말이라면 더욱 더 어불성설입니다.
심지어 골수 시카고학파 경제학자도 양심상 그런 말은 도저히 입밖에 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두 학파 사이의 치열한 논쟁에서 핵심적인 쟁점은 국채발행을 통한 정부지출 증가가 총수요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사실입니다.
정부지출 증가가 국가 경제의 효율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두고 두 학파가 논쟁을 벌였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이 글을 쓴 사람은 구축효과를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해 새 정부의 지출확대 정책을 비판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새 정부의 지출확대 정책을 다른 관점에서는 얼마든지 비판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말해 나도 좀 더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이 있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이 글처럼 잘못된 경제적 개념에 기초해 공격하는 것은 아무런 설득력이 없습니다.

혹시 어느 누군가가 이런 글을 통해 경제학을 배우고 있다면 무척 위험스런 일이기까지 합니다.
무엇보다 우선 구축효과를 엉뚱하게 이해하도록 이끌고 있을 뿐 아니라, 구축효과가 현재 경제학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에 대해서도 잘못된 정보를 전달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주장이 아무리 화려한 수사로 장식되었다 해도 기본적인 개념에 오류가 있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 이 글은 필자의 홈페이지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