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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질없는 대선후보 TV토론에서의 지니계수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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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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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대선후보의 TV토론에서 홍준표 후보가 문재인 후보에게 소득분배가 가장 악화되었던 때가 어느 대통령 시절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물론 그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이라는 자기 나름대로의 답을 미리 찾아 놓고 그 질문을 던진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문 후보는 구체적인 통계자료를 앞에 놓고 있지 못했을 테고, 따라서 그 질문은 갑론을박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 후 언론에 보도된 지니계수 통계를 보면 홍준표 후보의 주장이 분명히 맞지도 분명히 틀리지도 않은 것으로 드러납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분배의 상태를 나타내는 지니계수(Gini coefficient)가 계속 악화추세를 보인 것은 맞습니다.
그러다가 MB정부 출범 초에 지니계수의 수치가 최고치를 찍었습니다.
이 점에서 본다면 분배상태가 최악으로 치달은 건 MB정부 때였다는 게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지니계수의 값을 갖고 벌이는 이 논쟁은 본질적으로 부질없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홍준표 후보는 지니계수를 들먹이면서 자신의 박식함을 과시하려 했을지 모르지만, 전문가인 내 눈에는 소득분배 문제의 본질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고 있더군요.
단기적으로 지니계수가 그 정도로 작은 폭의 변화를 보이는 걸 갖고 분배상태에 대해 확정적 평가를 내리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미국의 분배상태가 오늘날처럼 악화된 수준으로 치달은 것은 오랜 기간 동안 계속되어 온 공화당 정권의 작품입니다.
내가 쓴 논문에서 밝혔듯 레이건과 부시 행정부의 신자유주의정책은 드러내 놓고 친부자, 친기업적 성향을 가졌고, 이런 정책기조가 거의 20년 동안 지속된 결과 오늘날의 불평등한 사회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정책 한두 개가 분배상태에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왔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지니계수의 단기 변동은 분배와 직접적 관련이 있는 정책뿐 아니라 다른 많은 요인에 영향을 받습니다.
예를 들어 당시의 경기상황도 지니계수의 단기 변동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불과 몇 년 동안의 단기 변동을 갖고 분배정책의 성격을 논하는 것은 적절치 못한 일입니다.

예를 들어 사상 최대폭의 감세정책을 밀어붙이고, 노조를 탄압하고, 사회보장지출을 삭감하고, 최저임금을 단 한 푼도 올리지 않은 레이건 행정부의 후반부에는 지니계수가 떨어지는 의외의 결과가 나타납니다.
이런 정책들이 모두 고소득층에게 유리하고 중, 저소득층에게는 상대적으로 불리했던 것이 분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니계수는 1986년과 1988년 두 차례에 걸쳐 하락했던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친부자 정책기조에 이렇다할 변화가 없었는데도 지니계수가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또 하나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은 어떤 정책의 효과가 바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일정한 시차를 두고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정책시차(policy lag)이라고 부르는데, 그 길이는 차이가 있을지언정 거의 모든 정책과 관련해 정책시차가 존재합니다.
다시 말해 어떤 정책이 실시된 후 몇 달이나 몇 년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그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이 정책시차 때문에 MB정부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지니계수의 하락추세는 MB정부의 작품이 아니고 노무현 정부의 작품일 수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확실한 결론을 얻기 위해서는 매우 엄밀한 분석이 필요할 것이고, 아무리 엄밀한 분석을 해도 영영 정확한 답을 얻을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지니계수의 단기 변동을 갖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고 MB정부의 부자감세가 분배상태에 미친 영향은 홍준표 후보가 인용한 지니계수에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 지니계수는 소위 시장소득(market income)이라고 부르는 것의 서베이 결과인데, 세금이나 정부지출의 분배적 효과는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은 수치입니다.
그저 당신의 연간 소득은 얼마인가라는 식으로 물은 것에 대한 답을 모아놓은 것이기 때문에 각 계층별로 세금 부담이 얼마이고 정부지출의 혜택이 얼마인지는 논외가 되는 것입니다.

사실 어떤 정부의 분배정책을 의미 있게 논의하려면 분배상태에 직접적 영향을 주는 조세나 지출정책의 분배적 효과를 따져 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단순한 가계소득의 서베이 결과에 기초한 지니계수가 아닌, 조세와 정부지출을 포함한 가계소득에 기초한 지니계수를 구해야 합니다.
그날의 토론에서 바로 그런 지니계수의 변화가 논의의 대상이 되었을 리 없으며, 언론들의 팩트체크에서도 그런 지니계수가 인용된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허공에다 주먹을 날리는 식으로 토론이 이루어진 셈입니다.

분배의 상황은 단지 지니계수의 변화뿐 아니라 여러 가지 상황을 총체적으로 고려해 평가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요즈음 한창 유행되는 '금수저-흙수저'라는 말이 대변하는 사회적 이동성(social mobility)의 변화도 분배상태에 대한 평가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예컨대 지니계수에는 별 변화가 없는데 사회적 이동성이 현저하게 떨어졌다면 사람들은 분배상태가 상당히 악화되었다고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 이동성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를 위시한 많은 사람들이 이명박-박근혜 정부하에서 분배상태가 상당히 악화되었다고 느끼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사회가 부자와 가난한 사람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에 대한 주관적 느낌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습니다.
예를 들어 노무현 정부 때는 입치레에 불과했더라도 부자들에게 '세금폭탄'을 떨어뜨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지 않았습니까?
그와 같은 으름장이 역효과를 일으켜 지지율의 폭락을 가져오긴 했지만, 서민들은 부자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물린다는 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을 겁니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서면서는 분위기가 싹 바뀌지 않았습니까?
이명박 정부의 감세정책이 그 대표적 사례이며, 부동산 투기로 벌어들인 불로소득에 관대해지기 시작한 것도 또 다른 예가 될 수 있습니다.
사회복지의 확대가 논의될 때마다 정부의 핵심 지지층은 언제나 나라살림 거덜난다는 반대의견을 내세웠구요.
서민들 눈에 정부가 우리를 위해 해주는 일은 아무것도 없구나라고 비쳤던 것이 무리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경제학자로서 내가 판단하기에 역대 정부의 분배정책에 큰 차이는 없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나라에서 보수를 자처하는 사람도 미국의 신자유주의자처럼 배포가 크지는 못합니다.
이번 트럼프의 셀프감세에서 잘 보았듯 미국의 신자유주의자들은 거리낌 없이 부자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채택합니다.
MB정부도 소득세율과 법인세율을 고작 2, 3%포인트 정도 인하하는 데 그쳤을 뿐 미국처럼 절반 이하의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것은 꿈조차 꾸지 못했습니다.

분배정책이 정부 사이에 차이가 있었다면 분위기의 차이 혹은 느낌의 차이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광의의 경제정책 그 자체도 보수적인 정부와 진보적인 정부가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솔직히 말해 나는 이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시라도 우리 사회에 트럼프 같은 돌출행동을 하는 보수주의자가 정권을 잡았으면 큰일이 날 뻔했습니다.

현대의 경제에는 그대로 놓아두면 분배상태가 점차 불평등해지게 만드는 몇 가지 힘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손을 놓고 방관할 것이 아니라, 그 힘에 맞서 싸우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비록 그 노력이 실질적 성과를 거두지 못할지 몰라도, 서민들은 정부가 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에서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내가 보기에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그런 노력에 소홀했다는 데 있습니다.
정부가 점차 어려워지는 서민들의 고충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메시지만이라도 진지하게 보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대공황의 심연에서 루즈벨트(F. Roosevelt) 대통령의 라디오 담화는 미국 국민에게 큰 힘을 불어넣어 줬습니다.
그것이 바로 정치입니다.

우리의 불행은 정치에 서툰 두 명의 대통령을 연속적으로 만났다는 데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 그 두 명이 아닌 다른 대통령을 뽑았다고 해도 우리 사회의 분배상태가 지금보다 훨씬 더 나아졌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분배상태의 현저한 개선은 그렇게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과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서민들이 훨씬 더 행복하게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다른 대통령을 뽑을 수는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새로 뽑는 대통령은 제발 이 두 불행한 대통령을 반면교사로 삼아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 이 글은 필자의 홈페이지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