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허핑턴포스트 블로거의 분석과 의견이 담긴 생생한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준구 Headshot

불행한 학생은 불행한 사회를 만들 뿐이다

게시됨: 업데이트됨:
CLASSROOM EMPTY
KohnoLynn via Getty Images
인쇄

OECD가 국제학업성취도 평가작업의 일환으로 15세 학생들의 삶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한국은 10점 만점에 6.36을 기록해 OECD 회원국 중 꼴찌에서 둘째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이는 OECD 회원국의 평균점수 7.31을 크게 밑도는 수치로서 터키만이 우리나라보다 더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고 하는군요.
얼마 전 연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가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주관적 행복지수가 OECD 22개국 중 꼴찌로 나타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왜 이렇게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요?
용돈이 부족해 군것질조차 제대로 하지 못해 불행하다고 느낄까요?
아니면 우리나라 청소년들만 유독 친구가 없어 고독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런 걸까요?
혹은 주변에 즐길거리가 하나도 없어 삶이 삭막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런 걸까요?

이들 중 우리 청소년이 느끼는 불행감을 본질적으로 설명해 주는 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교육의 현실을 보지 않는 한 그 불행의 뿌리를 결코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 청소년으로 하여금 인간다운 생활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졸렬한 교육이 불행의 본질적 원인입니다.

우리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어린 아이를 영어학원으로 내모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제 겨우 구구단을 뗀 초등학생에게 방정식을 가르치는 황당무계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학원에서 저 학원으로 옮겨가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갖가지 선행학습에 시달리면서 살아가야 하는 어린 학생들이 행복하다고 느낀다면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돈 없는 가정에서 태어나 학원이나 선행학습은 꿈도 꿀 수 없는 어린 학생이 행복한 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에 훨씬 앞서서 달려가는 것처럼 보이는 돈 많은 가정의 자제를 보면서 박탈감을 느끼기 때문에 결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나만 뒤처지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패배감은 그들을 한층 더 불행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우리의 교육은 모든 어린 학생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 교육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를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는 사람은 의외로 적습니다.
소위 사회지도층이란 사람 중에서도 우리 교육이 갖고 있는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예를 들어 이번 대선에 출마하고 있는 후보자들의 교육 관련 공약을 보면 그들 역시 문제의 핵심을 잘 모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대부분의 후보들이 경제 발전을 위한 창의적 인재 양성에 교육개혁의 주안점을 두고 있습니다.
창의적 인재의 양성이 중요한 과제일 수는 있지만, 그것이 문제의 핵심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 교육이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교육의 목표를 잘못 설정한 데 있습니다.
어린 세대를 교육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그들로 하여금 인간으로서의 충실한 삶을 누릴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해 주는 데 있지 않습니까?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행복한 삶을 꾸려갈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도 중요한 일일 테구요.

이와 동시에 우리가 함께 모여 사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인 자질을 가르쳐 주는 것도 교육의 중요한 목표입니다.
교육을 통해 더 좋은 사회를 만드는 것도 중요한 일인데, 남을 배려하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자세가 몸에 밴 사람이 많을수록 더 좋은 사회가 될 수 있으니까요.

이 두 가지 교육의 기본 목표에 비해 경제에 도움이 되는 창의적 인재를 키운다는 것은 부차적 목표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관점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교육과 학생을 목적 그 자체가 아니라 수단으로 본다는 데 있습니다.
경제에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의 관점에서 교육과 학생을 평가한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본말의 전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거의 모든 병폐의 근원이 그와 같은 천박한 배금주의에 있습니다.

나는 우리 교육을 개혁하는 첫걸음은 어린 학생들의 얼굴에 다시 웃음을 찾아주는 데서부터 떼어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앞으로의 삶에서의 행복은 고사하고 당장 지금의 삶이 불행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교육이 무엇에 쓸모가 있겠습니까?
어린 학생들은 비명을 지르고 있는데 본 척도 하지 않고 4차산업혁명 따위나 부르짖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입니까?

그런데 우리 교육이 갖는 문제점은 이것 말고도 또 있습니다.
최근 우리 사회의 교육이 신분 상승의 사다리 역할을 하기는커녕 신분 고착의 족쇄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나 이 문제도 어린 학생들의 얼굴에 웃음을 되찾아 주는 문제를 우선 해결한 다음 해결을 시도해야 합니다.

불행한 청소년이 성장해 불행한 성인이 되고, 그런 사람들로 가득찬 사회는 불행한 사회일 수밖에 없습니다.
불행한 사회를 만드는 교육은 그것이 얼마나 고상하고 고매하다 할지라도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의 교육은 고상함과 거리가 멀면서도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최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청소년들로부터 불필요한 공부의 부담을 덜어내 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컴퓨터가 미분방정식도 풀어주는 세상인데 어린 학생들이 인수분해 공식 외우는 데 시간을 낭비하게 만들 필요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 시간에 소설 읽고 공 차게 만드는 게 훨씬 더 낫지 않습니까?
어린 학생들이 이 학원 저 학원을 전전하면서 배운 것들 중 우리 삶에 정말로 중요한 지식은 거의 없다는 것이 내 굳은 믿음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내가 부차적 목표에 지나지 않는다고 규정한 창의적 인재의 양성이란 측면에서 볼 때도 공부의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사실입니다.
입시 위주의 반복적 학습은 지적 호기심을 말살해 버리는 악영향을 끼칩니다.
수학 공식 하나 더 외운다고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운다고 더욱 창조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 아닙니까?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창의성은 게으르게 놓아둔 두뇌에서 더욱 활발하게 작동하는 법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교육의 개혁을 원한다면 기본으로 돌아가 교육의 본질적 의미부터 다시 성찰해야 합니다.
그런 성찰 없이 교육과 학생을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천박한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우리 교육의 병폐는 영원히 치유될 수 없습니다.
교육과 학생을 목적 그 자체로 보는 자세로부터 교육개혁의 정답이 도출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창의적인 인재가 많이 배출된다 하더라도 어린 학생들이 자신의 삶을 불행하다고 느낀다면 우리 교육은 실패의 구덩이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창의적 인재 양성이 지상과제인 양 부르짖고 다니는 대선주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입니다.

* 이 글은 필자의 홈페이지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