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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시험 준비로 인한 경제적 손실 한 해 17조원'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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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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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이 꿈인 나라' 경제손실 한해 17조

이것은 한 민간 경제연구소의 분석 결과를 인용해 기사화한 어떤 일간지의 기사 제목입니다.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소위 '공시족'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이렇게 어마어마한 크기라는 말입니다.
단군 이래 최대의 낭비라고 할 수 있는 4대강사업 예산에 필적하는 경제적 손실이 해마다 발생한다는 뜻이지요.
컵밥으로 끼니를 때우며 밤을 지새우고 있는 젊은이들이 이 말을 듣고 얼마나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을 할까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인해 그렇게 어마어마한 경제적 비용이 발생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상식에 어긋난다고 봅니다.
도대체 경제적 비용의 산출 근거가 무엇이기에 그런 어마어마한 수치가 계산되어 나올 수 있답니까?
내가 늘 강조하는 바지만, 아무리 엄격하게 보이는 경제적 분석이라도 상식과 어긋나면 무언가 잘못된 데가 있는 법입니다.

그 연구에서 채택한 경제적 비용 산출의 근거를 보니 왜 그런 잘못된 분석결과가 나왔는지 금방 알겠더군요.
우선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의 숫자를 25만 7천명으로 잡고, 그들이 취업해 경제활동을 했으면 벌었을 소득을 15조 4,441억원으로 계산했더군요.
그들이 계산한 경제적 손실 중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이 항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경제적 비용의 계산은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기로 결정한다면 바로 일자리가 주어진다는 가정하에서만 설득력을 갖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듯, 지금 청년실업이 매우 심각한 상태인데 이들이 일자리를 얻으려 한다고 해서 바로 일자리가 생긴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그나마 이들이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있기에 청년실업의 문제가 조금이나마 덜 심각하게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경제학원론을 배운 사람은 잘 잘겠지만, 실업자라는 것은 일자리를 찾으려 하는데도 일자리를 갖지 못한 사람들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일자리를 찾을 생각이 없는 사람은 원천적으로 실업통계에서 제외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취업을 하기로 결정하고 일자리를 찾기 시작하는 순간 (청년)실업률은 엄청나게 치솟을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우리 사회에 일자리가 남아돈다면 그와 같은 접근방식이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젊은이가 취업을 하기로 결심하는 순간 국민소득이 그만큼 커질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나 현실은 이런 상황과 거리가 멀어도 한참이나 멀지 않습니까?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도 주지 않고 그들이 일을 하지 않아 경제적 비용이 발생한다고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연구는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이 정상적으로 소비지출을 했더라면 6조 3,249억원을 지출했을 텐데, 시험 준비를 위해 최소한의 지출만을 해서 4조 6,260억원을 지출했다고 지적합니다.
그리고는 그 차액인 1조 6,989억원을 경제적 비용에 추가해 17조 1,430억원이라는 경제적 비용의 수치를 산출해냈습니다.
소비가 그만큼 커질 수 있었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말인데, 솔직히 말해 경제학자인 나도 왜 그것을 경제적 비용으로 카운트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 경제가 소비위축으로 인해 경기침체를 겪고 있으니 소비지출이 늘어나는 걸 긍정적으로 볼 여지는 있습니다.
그러나 소비지출이 가상적 상황보다 더 적은 것을 가리켜 경제적 비용이라고 부르는 것은 납득할 수 없습니다.
경제적 비용이라는 것은 이보다 훨씬 더 엄격한 잣대로 측정되어야 마땅한 일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그 연구는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이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초래한다는 부정적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와 반대로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명백한 경제학적 근거가 있다고 봅니다.

여러분들 인적투자(human investment)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우리가 보통 자본이라고 하면 공장이나 기계설비 같은 물적자본(physical capital)을 연상라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인간에 체화된 자본도 물적자본 못지않게 중요한 경제적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것을 인적자본(human capital)이라고 부르는데, 인적자본을 더 늘리기 위한 행위가 바로 인적투자입니다.

인적투자의 주요한 수단은 교육과 현장실습입니다.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지금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고 인적투자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제적 비용이 발생한다는 평가는 설득력이 없습니다.
인적투자를 위해 개인적 비용을 지불하고 있을 뿐 이를 사회적 비용이라고 볼 하등의 이유도 없으니까요.

MB정권 시절 G20회의를 유치하고선 경제유발효과가 40조원에 이르니 뭐니 허풍을 떨어 만인의 비웃음을 산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들 서울에서 G20회의가 열린 후 여러분을 삶에 눈곱만큼의 변화라도 있었다고 생각하십니까?
40조원은커녕 40억원의 효과도 없었다는 게 내 솔직한 느낌입니다.
정직하지 못한 정권은 늘 그런 허황된 통계수치로 혹세무민을 하려 들기 마련입니다.

그런 경제유발효과나 이번의 경제적 비용 같은 것을 엄밀하게 계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정확한 수치를 계산할 엄밀한 근거도 없이 적당히 주먹구구식으로 계산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런데도 연구소나 경제학자들은 무책임하게 그런 믿을 수 없는 수치들을 양산해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런 수치들이 적당히 얘깃거리 정도로 사용된다면 그저 웃어넘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책담당자들이 이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정책 수립의 근거로 삼는다면 그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예컨대 지금 얘기하고 있는 분석 결과를 보고 정부가 공무원시험 준비하는 사람을 줄이기 위해 어떤 규제를 실시한다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이 되겠습니까?


* 이 글은 필자의 홈페이지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