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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국가의 품격을 떨어뜨린 장본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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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헌재에 출석해 신문을 받을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대통령 대리인단의 한 변호사가 그렇게 되면 국가의 품격이 떨어지지 않겠느냐는 말을 했습니다.
마치 헌재가 국가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행위를 한 것인 양 그런 어처구니없는 발언을 한 것이지요.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또 한 번 '적반하장'(賊反荷杖)이란 말을 머릿속에 떠올렸습니다.
요즈음 대통령과 그를 비호하는 사람들을 보면 늘상 생각나는 것이 바로 이 말입니다.

나도 최근 들어 우리나라의 품격이 급격하게 추락했다는 데는 전혀 이의가 없습니다.
그러나 국격의 추락을 가져온 근본적 원인은 전혀 다른 데 있습니다.
갖가지 불법행위를 자행한 대통령이 국격의 추락을 가져온 근본적 원인이라는 데 한 점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외부의 시선에서 보면 민주국가의 대통령이 어찌 그런 일들을 감히 할 수 있겠느냐 생각할 것이고 그것이 바로 국격 추락의 근본 원인인 것이지요.

나라를 엉망으로 만든 사람을 대변하는 사람들이라면 나라를 망친 데 대한 공동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봅니다.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이 난국을 수습해 나라가 다시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오게 만드는 데 조금의 힘이라도 보태야 마땅한 일입니다.
그들에게 최소한으로 요구되는 덕목은 대통령 대변의 임무를 수행하되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예의와 품격은 지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헌재 변론에 임하는 그들의 태도에서는 그런 예의와 품격은 손톱만큼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고의적 지연전술을 남발하는 것은 오히려 애교로 봐줄 수 있을지 모릅니다.
미안한 말이지만 그런 술책으로 밥벌이를 하는 변호사가 적지 않은 게 사실 아닙니까?

그러나 아무런 근거도 없이 헌재와 재판관을 모욕하는 막말을 내뱉는 그들을 보면 변호사는커녕 지식인으로서의 기본적 자질까지 의심을 하게 됩니다.
더군다나 "내란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라는 섬뜩한 말까지 서슴지 않는 걸 보면서 저 사람들 가슴 속에 애국심이라는 게 단 한 톨이라도 있나 의심하게 됩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내란 운운하는 말은 절대로 삼가야 하는 것 아닙니까?
헌재의 결정이 어느 쪽으로 나든 엄청난 후폭풍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내란 운운하며 불안감을 부추기는 건 그야말로 망국적인 행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 헌재는 우리나라의 헌법과 법률을 수호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습니다.
자기네들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이런 헌재를 흔들어대는 것은 어떤 이유로든 용납될 수 없는 졸렬한 행동입니다.
법리에 기초한 변론을 해야 할 사람들이 지지세력 규합을 염두에 둔 감성팔이에 몰두하고 있는 것은 볼썽사납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한 가지 아이로니컬한 점은 대통령과 그를 비호하는 세력이 '법과 질서'를 즐겨 외쳤던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유신시대의 말도 안 되는 악법에 대해서도 그것이 실정법인 이상 지켜야 한다고 억지를 쓰던 사람들입니다.
단지 유신체제를 비판하는 것만으로도 범죄자가 되는 끔찍한 시대에 그들은 태연하게 법과 질서를 외쳤습니다.

그러던 그들이 자기네들에게 불리하니까 헌재라는 국가기관을 모욕하는 언행을 서슴지 않는 추태를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로 가소로운 일 아닙니까?
자기네들이 아무리 궁지에 몰려 있다 하더라도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은 가려서 해야 마땅한 일일 텐데요.

나는 지금 헌재의 결정이 내려진 이후의 후폭풍이 너무나 두렵습니다.
어느 쪽으로 결정이 나든 우리 사회는 한 동안 엄청난 후폭풍에 시달릴 게 분명합니다.
이렇게 극도로 민감한 상황에서 내란 운운하는 선동적 언사를 서슴지 않는 것은 불에다 휘발유를 들여 붓는 것처럼 위험하기 짝이 없는 행동입니다.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최소한의 애국심이라도 있다면 그런 위험한 행동을 감히 할 수 없을 거라고 믿습니다.

* 이 글은 필자의 홈페이지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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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박 대통령 탄핵심판 14차 변론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 측 법률대리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