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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 있는 퇴진만이 답이다, 그것도 아주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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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APOLOGY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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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에서 보셨겠지만 26일 서울대학교 교수들도 "박근혜 퇴진"이라는 깃발을 들고 광화문 광장을 행진했습니다.
진눈깨비가 오는 궂은 날이었지만, 나도 그곳에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그 행진에 함께 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곳에 모인 사람들 마음 속이 분노로 가득 차 있었을 텐데, 집회의 분위기는 마치 축제와도 같았다는 사실입니다.
곧 우리가 쟁취하게 될 '민주주의의 부활'을 미리 축하하는 축제인 것 같았습니다.

그 순간 그 위의 산에서 우리의 성난 함성을 듣고 있을 청와대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아마도 무슨 꼼수로 이 위기를 모면할까 잔머리를 굴리고 있었겠지요.
지금까지 박 대통령의 두 번에 걸친 대국민 사과에서 명백히 드러났듯 그 사람들은 국민에게 진심으로 무릎 꿇어 용서를 빌 생각을 전혀 갖고 있지 않을 테니까요.

지난번 여론조사에서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4%,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의 지지율이 12%로 드러났습니다.
지금과 같은 어정쩡한 자세로 시간만 보내다가는 이 4%의 지지율조차 유지하기 어려울지 모릅니다.
지지율이 0%대로 떨어져 기네스북에 당당히 세계기록으로 등재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지도 모르지요.

가장 많은 의석을 가진 집권여당이 의석수가 절반에도 못 미치는 야당보다도 뒤떨어진 3위의 지지율을 얻었다는 것 역시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국민의 눈에 이런 상황에서도 친박이니 비박이니 패싸움을 일삼는 그들이 얼마나 한심하게 보였을까요?
유신독재와 5공에 그 뿌리를 둔 새누리당은 이제 자진 해체해 역사의 뒤안길로 들어서는 것밖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돌이켜 보면 집권세력 붕괴의 조짐은 지난 4월의 총선에서 이미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의 상황은 야권이 적전분열을 일으켜 새누리당에 압승을 헌납할 가능성이 커 보였습니다.
그러나 국민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고 절묘하게 표를 던져 두 야당이 새누리당보다 더 많은 의석을 차지하게 만들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국민은 안중에 없고 자기들끼리 패싸움을 일삼는 새누리당이 한심하게 보였기 때문이었던 게 분명합니다.
소위 콘크리트 지지층을 논외로 한다면, 객관적 입장에 있는 국민은 그 한심한 무리들을 징벌해 줘야 한다고 결심했던 것입니다.

친박이니 비박이니 나누어져 싸우다가, 심지어 진박이니 뭐니 하는 말까지 나온 상황 아니었습니까?
그 저열한 패싸움이 조폭의 영역싸움과 뭐가 다를 바 있습니까?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는 것으로 모자라 동인이 다시 남인과 북인으로 나뉘고, 급기야는 북인이 다시 대북과 소북으로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나뉜 조선시대의 당파싸움을 연상시키는 이전투구였습니다.

그 이전투구에서 왜 '박근혜'라는 이름 석 자가 태풍의 눈 역할을 했을까요?
바로 우리 정치의 후진성과 그것을 이용해 자신의 정치적 가치를 극대화하려는 못나빠진 새누리당 정치인들의 비열한 전략에서 그 핵심적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 정치는 아직도 독재시대에 대한 향수와 지역주의가 정치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후진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른 부문은 눈부시게 발전했는데 오직 정치만은 유신독재 시절의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박 대통령은 바로 이 후진적 정치문화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입니다.

민주화와 더불어 오래 전에 정치무대에서 사라졌어야 할 그가 아직도 무대의 중심에 서 있다는 것이 우리 정치의 비극입니다.
사실 낡고 저급한 정치문화의 상징인 박근혜씨가 대통령으로 뽑혔다는 사실 그 자체가 엄청나게 시대착오적인 일이었습니다.
유신독재체제의 몰락과 함께 청산되었어야 할 잔재가 버젓이 새 시대의 리더로 등장했다는 게 도대체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이 후진적 정치문화에서 박근혜라는 이름만 걸면 표가 쏟아져 들어오니 정치가 제대로 이루어질 리 없습니다.
정정당당한 정견의 대결이 아니라 누가 우리 편이고 누가 다른 편인지가 더 중요해지는 비열한 경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구도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얼마나 박 대통령과 친한지로 승부를 걸려는 졸렬한 생각이 바로 친박-비박 패싸움의 근원이었습니다.
정치인으로서 한 개인과 친하다는 게 도대체 무슨 장점이 되겠습니까?
국민의 눈에 박 대통령의 치마폭 아래서 표를 구걸하는 새누리당 정치인이 얼마나 구차하게 보였을까요?

지난 번 총선은 주권을 가진 국민이 내린 엄중한 심판이었습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그 메시지를 전혀 이해 못하고 다시 패싸움에 몰두하기 시작했습니다.
스스로의 무덤을 판 셈이지요.

박 대통령과 그를 둘러싼 비선실세들 역시 그 엄중한 심판의 의미를 전혀 깨닫지 못한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최순실이라는 한 사인(私人)과 주위의 패거리들이 국정을 농단하는 위험스런 상황을 하루라도 빨리 청산하지 않으면 곧 국민의 추상 같은 심판을 받을 것임을 뒤늦게나마 깨달았어야 마땅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권력에 도취한 그들에게는 그런 각성의 기회가 눈에 띌 리 없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의문이 모두 풀렸습니다.
그 동안 이 정권이 왜 그렇게 국민의 소리에 귀닫고 모든 걸 자기 마음대로 독단해 왔는지 이제는 훤히 알겠습니다.
시스템이 무너지고 소위 비선실세들이 국정을 농단해 왔으니 국민의 소리를 귀담아 들을 필요가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 않은 사인들이 국민을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지 않습니까?
대통령이란 사람이 그런 사인들의 발호를 통제하기는커녕 오히려 휘둘리고 있었다니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힐 지경입니다.

자신을 대통령으로 뽑아준 국민의 소리에는 철저히 귀를 막고 최순실에게만 귀를 열었다는 게 도대체 말이 되는 일입니까?
어느새 나라 모양이 이렇게 엉망으로 망가졌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려고 우리가 그를 대통령으로 뽑아줬답니까?
그를 대통령으로 뽑은 자괴심 때문에 얼굴을 못 들 지경입니다.

꺼지지 않는 촛불이 그 좋은 증거지만 이제 이 정권은 국민의 신임을 몽땅 까먹었습니다.
4%와 12%의 지지율이 말해주듯 집권세력은 국민의 완전한 불신임을 받은 상황입니다.
그들은 "샤이 박근혜" 같은 기적을 꿈꿀지 모르지만, 어처구니없이 허황된 꿈일 뿐입니다.
'박사모'를 규합해 반격을 가할 생각인지는 몰라도, 그건 스스로의 무덤을 파는 치졸한 전략입니다.

박근혜 정권은 '발을 저는 오리'(lame duck)가 아니라, '두 발을 모두 잃고(footless) 두 날개를 모두 잃은(wingless)' 오리의 신세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국정의 끈을 완전히 놓쳐 버린 박근혜 정권은 이제 그 존재의미를 완전히 상실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 이 정권에 남은 유일한 숙제는 국민에 엎드려 사죄하고 질서 있게 정권을 이양하는 일밖에 없습니다.
빈사상태의 식물정권이 되어 동력을 완전히 상실한 이 정권하에서 국정은 올스톱 상태에 빠졌습니다.
이 상황에서 어떤 관료가 의욕을 발휘해 국정이 잘 돌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까?

자진 사퇴든 탄핵이든 지금은 일초 일각이 급한 상황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경제가 어려운 판에 국정의 표류를 더 이상 방치할 여유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눈치를 보며 시간 끌기 게임을 벌이는 무책임한 작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아직도 국민에게 미안한 마음을 손톱만큼 갖지 않고 있다는 좋은 증거지요.

헌정질서의 붕괴로 인해 지금 '한국호'는 한 치 앞도 예상하기 힘든 난국에 빠져 있습니다.
이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선장이란 사람은 배 살릴 생각은 하지 않고 선장실에 처박혀 제 살길 찾기에만 급급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간다면 한국호가 세월호의 재판이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겠습니까?

만약 박 대통령과 집권세력에 한 톨의 애국심이라도 남아 있다면 질서 있는 정권이양을 한시라도 서둘러야 합니다.
자신이 하루라도 더 버틸수록 나라와 국민에 더 큰 해가 돌아온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난 대선에서 그에게 표를 던진 절반의 국민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지킬 생각이 있다면 일각을 지체하지 않고 깨끗이 퇴진하되 그것이 미칠 파장을 최소화할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요행을 바라고 시간만 끌다가는 나라는 물론 대통령과 집권세력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됩니다.
그나마 상처를 이 정도에서 머물게 만들려면 빨리 서둘러야 합니다.
자칫하면 대통령과 집권세력은 역사의 대역죄인이 되어 영원히 그 오명을 씻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박 대통령과 그 주위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보면 결국 시기를 놓치고 큰 불행을 초래하게 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이게 됩니다.
결국 촛불이 횃불이 되고 국민의 분노가 청와대를 집어삼킬 때까지 버텨보겠다는 심산인가요?
나는 제발 그런 불행한 사태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어떻게 쟁취한 민주주의인데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져 버리면 어떡합니까?

* 이 글은 필자의 홈페이지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