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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가 이뤄내야 할 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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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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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을 밝힌 촛불이 열어준 새로운 정치공간을 가장 성공적으로 '찬탈한' 정치인은 안철수다. 2008년과 2016년의 촛불에서 모두 그랬다. 첫번째 촛불은 진보개혁 진영에 '반한나라(현재는 반한국당) 비민주'라는 정치구도를 조성했고, 안철수는 그런 구도의 총아로 등장해 단박에 대통령 후보로까지 부상했다. 그리고 두번째 촛불은 보수 진영에 '비새누리(비한국당) 반민주'라는 정치구도를 만들었고, 그런 정치구도 덕에 안철수는 다시 한번 정치적 도약의 기회를 얻었다.

그러므로 안철수는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이 두 가지 정치구도를 자신에게 주어진 '객관적 대의(大義)'로 삼을 수밖에 없다. 안철수에게 맡겨진 몫은 그로부터 어떤 정치적 결과를 이끌어내느냐 하는 것이다. 두 정치구도가 겹치는 비민주 비한국당의 지대를 크게 확장하고 정치 발전의 설득력있는 비전을 제시하는 지도력을 보였다면 집권 가능성도 크게 높아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저 "안철수라고 쓰고 '반문'이라고 읽는다" 정도에 머물러서는 당선이라는 문턱을 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집권에 미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대의를 일정 수준 성취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반문 정서라는 약한 지렛대에 기댈지언정 우리 사회 보수 유권자들을 자신의 지지층으로 끌어들이는 만큼 그들을 수구 또는 극우 정치인들의 주박(呪縛)으로부터 풀려나오게 할 수 있으며, 그럼으로써 우리 정치 지형을 중도와 상식으로 수렴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안철수의 대의가 지금 크게 흔들리고 있다. 보수 유권자들이 안철수를 떠나 홍준표를 지지하며 수구의 품으로 상당 정도 귀환하는 경향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런 보수 유권자의 퇴행적 복귀가 우리 정치에 드리우는 그늘은 매우 짙고 서늘한 것이다.

정치인은 유권자들의 매우 다양한 욕망, 선호, 가치를 통분하고 그것에 구체적 형상을 부여한다. 유권자들의 성향 가운데 어떤 것을 선별하고 조합하고 실현할지는 정치인의 몫인 셈이다. 그러므로 어떤 정치인들이 선택지로 있고, 그중에 누가 더 많은 지지를 얻는가에 따라 유권자의 욕망, 선호, 가치 가운데 어떤 것이 사회적 효력을 획득할지가 결정된다. 그리고 그렇게 실현된 성향은 바로 그렇게 실현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다시금 유권자의 정체성을 바꾸고 조정해 나간다.

그런 점에 비춰볼 때, 홍준표는 최악의 대선후보다. 심상정 후보가 지적했듯이, 그는 대선후보가 될 만한 도덕성을 갖추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가 내세운 언필칭 '가치'와 공약들은 북한, 민주노총, 여성,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적개심으로 똘똘 뭉쳐 있다. 민주화 이후 이른바 '보수' 대통령 후보 가운데서도 이토록 파시스트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고 하는 이는 없었다. 그는 자신의 저열함으로 보수 유권자들의 내면에 있는 가장 저열한 욕망과 가치와 선호를 불러내 정치적으로 형상화하고 세력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홍준표 후보의 지지율 상승은 촛불이 마련한 중요한 기회, 즉 수구/극우에 의한 보수 유권자의 납치 상태를 끝낼 기회가 무산될 수 있음을 뜻한다. 이런 납치 상태는 수십년간 사회 발전의 중대한 장애요인이었을 뿐 아니라, 새로 들어설 정부의 행로에도 커다란 걸림돌이 될 위험요인이다. 그러므로 심상정 후보가 유승민 후보에게 했던 말은 유승민뿐 아니라 안철수에게도 유효하다. 그에게는 보수 유권자의 수구/극우로부터의 구출이라는 대의가 남아 있다. 그러니 굳세어라, 안철수!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