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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또는 두 개의 죽음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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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부 기록사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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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새벽 구치소로 들어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보면서, 사람은 두 번 죽는다는 정신분석학의 명제가 떠올랐다. 그 명제에 의하면, 사람은 한 번은 생명체로서 죽고, 또 한 번은 상징적으로 죽는다. 여기서 상징적 죽음은 한 사람의 죽음이 사회적 상징체계 안의 적합한 자리에 안착하는 것을 뜻한다. 마땅하고 올바른 장례와 충분한 애도 그리고 타당한 의미부여 속에서 인간은 상징적 죽음에 이르는 것이다. 이런 상징적 죽음이 이루어질 때, 산 자들은 죽은 자 너머의 새로운 삶을 홀가분하게 이어갈 수 있다.

통상 사람은 육신의 존재로서 먼저 죽고 뒤이어 상징적 죽음에 이른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은 육신보다 먼저 상징적으로 죽은 존재가 되었다. 구치소로 가는 차 속에 언뜻 비친 그는 올림머리가 풀린 상태였는데, 그렇게 그의 사회적 실존을 동여매던 상징적 매듭도 풀린 것이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상징적 매듭이 풀린 뒤의 삶, 단순한 생명체로서의 삶뿐일 것이다. 그는 명예 회복과 복권을 위한 모든 노력을 다하겠지만, 그것은 그가 자신이 이미 상징적으로 죽었음을 모르고 있음을 말해줄 뿐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겪고 있는 이런 운명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상징적 운명과도 깊은 관련을 갖는다. 모두 알다시피 박정희 전 대통령은 생명체로서는 1979년에 죽었다. 하지만 죽음의 형식, 그러니까 측근이었던 중앙정보부장이 술자리에서 쏜 총에 죽었다는 점이 어떤 상징적 부적합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상징적으로는 제대로 죽지 않았던 셈이고, 그 때문에 우리 사회 성원들 가운데 상당수가 아주 오래 그에게 '사로잡힌' 상태에 있었다. 그리고 그가 이렇게 두 개의 죽음 사이에 유폐된 망령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그의 유산은 더 나쁘게 이어졌다.

'군사적 양자(養子)' 둘이 그보다 더 많은 피를 뿌리고 대통령이 되었으며, '경제적 양자'인 이명박 전 대통령은 그보다 더 많은 시멘트를 국토에 들이부었다. 마침내 대통령이 된 그의 친딸 또한 박정희식 체제 운영의 비밀을 다시 한번 폭로했거니와, 그것은 공사 분리 이전 상태의 심성, 심리적 친소관계를 권력 배분의 원리로 삼는 극단적인 자의적 지배, 그리고 국민의 절반 이상을 블랙리스트 대상으로 삼기를 마다 않는 적대의 정치였다.

그렇다면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마땅하고 올바른 상징적 죽음의 형식은 무엇이었을까? 두 번의 쿠데타를 저지르고 숱한 사람을 고문하고 살해하며 권력을 유지했던 자에게 적합한 상징적 죽음은 독재자에게 저항하는 민중의 봉기에 의해 권좌에서 쫓겨나는 일이어야 마땅하다. 그러므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겪은 탄핵과 구속은 어떤 의미에서 아버지가 받아 마땅했던 상징적 죽음을 완수하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1979년에 이루어졌어야 마땅한 일이 2017년에 이루어졌다는 것은 뼈아픈 일이다. 하지만 그 긴 시간이 아무런 성취 없이 지나간 것은 아니었다. 광주민주화운동과 6월항쟁을 통해 우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상속자들을 법적으로 응징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해 가을부터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여 오롯이 의지의 표명만으로 의회를 움직이고 법적 과정을 작동시켜 아무런 피흘림 없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마땅하고 올바른 상징적 죽음을 선고했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도 상징적 죽음을 부여한 것이다. 이제야말로 우리 사회는 박정희 너머의 세계를 향해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