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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 대한 두 개의 저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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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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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여론조사 결과나 촛불집회 참석자와의 규모 차이가 보여주듯이, 탄기국이나 박사모는 대다수의 의견과 괴리된 한 줌도 안 되는 집단이다. 그런데도 "광장이 두 동강 났다"는 기사 제목을 마침내 얻어냈으니, 친박집회가 목표한 바를 일부는 성취한 듯하다. 하긴 세 조각이 아니긴 하다만, 둘 가운데 한 조각이 형편없이 작으니 "두 동강 났다"는 표현은 친박집회에 현혹됐거나 그리 해석하고 싶은 일부 언론사의 '소망'이 담긴 것일 뿐이다.

그런데도 광장을 일부 점유한 친박집회에는 두려움을 유발하는 무엇인가가 있다. 그것은 일차적으론 집회 참석자들의 거리낌없고 공격적인 말 때문이다. 아마도 그들이 언어의 빈터에 자신의 말을 던지는 용기를 내야 했다면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의 거리낌없음은 대한민국 역사를 통해서 축적된 말에 자신의 말을 쉽게 얹어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대한민국 정부 수립, 뒤이은 전쟁, 그리고 쿠데타는 누군가를 살육하고, 간첩으로 몰고, 감옥에 처넣는 적대의 정치에 입각한 것이었다. 그런 역사가, 이편에 서 있다면 온갖 불의와 불법과 부패를 저질러도 이편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인정되고, 이편에 서 있기만 하면 저편을 마음대로 유린해도 좋다는 믿음을 형성해온 것이다. 이편에 있기만 하면 당연히 면책특권이 발부된다는 믿음이 특검과 헌재를 겁박하는 말을 할 용기의 원천인 셈이다. 요컨대 이들의 목소리는 대한민국에 대한 저작권, 다시 말해 이 나라는 '우리'가 만들었고, 그 '우리'가 누구인가는 항상 '우리'가 정의한다는 주장에 터잡은 것이다.

촛불시민들은 친박집회 참여자들의 저작권 주장이 시효 만료된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들을 1987년 민주화 이행과 더불어 수립된 현행 헌법의 저작권자로 여기는 촛불시민들은 대한민국이 민주적 법치국가이며, 그래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고, 헌법과 법률 앞에 대통령이나 재벌총수를 포함해 모두가 평등하다고 믿는다. 그들은 정치적 이념 대립을 근대적 이데올로기에 따른 정상적 정치 분화로 이해하고, 그렇기 때문에 국가권력은 무장투쟁이나 쿠데타가 아니라 공정한 선거경쟁에 의해서 결정돼야 한다고 믿는다. 요컨대 다양한 사회적 균열과 갈등이 헌정적 절차를 통해 조정가능하다는 믿음은 이편과 저편을 나누는 적대의 정치가 아니라 '우리'를 헌법 공동체로 생각하는 우정의 정치에 근거한다.

하지만 적대의 정치와 국가보안법 같은 '이면 헌법'에 매달리는 이들이 주장하는 저작권 시효는 아직 만료되지 않았다. 여전히 이편과 저편을 나누는 적대의 정치가 신빙성을 갖게 만드는 현실적 상황이 지금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남씨가 백주 대낮에 살해되고, 한-미 합동군사훈련과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이어지고, 롯데가 골프장 부지를 국방부에 넘겨주자 중국 관광객의 발길이 끊어져서 명동과 제주도의 상인들은 망연자실이다. 그런 중에 미군의 사드 장비가 전격적으로 국내에 반입되는 것이다.

한편 탄핵을 둘러싸고, 다른 한편 탄핵에 맞물려 진행되고 있는 이런 상황은 대한민국에 대한 두 개의 저작권 간의 분쟁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헌법은 이면 헌법을 대치한 것이 아니라 그 위에 덧씌워진 것이고, 우리는 여전히 분단 체제와 87년 체제가 겹쳐 있는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견지에서 지금 촛불시민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87년 민주화 이행의 성과를 한 걸음 더 밀고 나아가 분단 체제를 내파해 가는 작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