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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크슛 한번 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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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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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2일 오후 3시경부터 행진에 참여했고, 종로의 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문화행사를 향해 걸어갔다. 대형 스크린이 잘 보이는 쪽으로 가는 길은 엄청나게 혼잡했다. 동아일보사 사옥 근처를 지날 때는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였고, 걸어갔다기보다는 인파에 실려서 둥둥 떠갔던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밀집된 공간에서 서로 떠밀리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에 짜증이 전혀 없었다. 짜증 대신, 같은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있음을 서로의 시선 속에서 확인받고 있는 느낌이 차올라 있었고, 그런 공감에 힘입어 사람들은 밀집공간으로 인한 모든 불편을 서로에 대한 작은 배려들로 풀어내고 있었다. 언젠가 헌법이 개정된다면, 그 전문에는 3·1 운동, 4·19 혁명에 이어 5·18 민주화운동과 6월항쟁도 포함될 것이다. 그때 어쩌면 11월12일을 기점으로 하는 민중의 주권적 행위도 그 대열에 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혹자는 민중의 열망이 제도화되지 못하고 실망으로 귀결된 과정을 되짚어보며 광장의 민주주의가 가진 한계를 말한다. 저명한 정치학자가 도식화한 "열망/실망의 사이클"을 인용하고, '수동혁명' 같은 개념을 빌려 대중의 열망을 무산시키려던 보수·수구 세력의 방어조처들을 중심으로 현대사 전반을 조명하기도 한다. 물론 광장의 민주주의가 가진 역능을 과장해서는 안 되며, 보수·수구 세력의 방어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경솔한 일이다. 실제로 대통령의 헌정 문란 사건에 즈음하여 어디까지 그 과오를 묻고 징치할 수 있을지는 확실치 않다. 대통령의 권력을 어디까지 그리고 언제 확고히 박탈할 수 있을지, 그런 대통령과 함께 국정과 헌정을 문란케 한 청와대 고위 관료와 장차관들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나 분명한 정치적 사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을지, 더 나아가 새누리당과 검찰과 재벌과 언론 부역자들까지 그 책임을 어느 정도 묻고 또 징벌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확실한 문제이다.

그렇다고 해도 사태가 보여주는 바는 대중이 제도 외부에서 행사하는 압력의 크기만큼만 제도 내부의 세력들이 앞으로 떠밀려간다는 것이다. 실제로 11월12일 민중총궐기대회가 가져온 정치적 성과는 뚜렷하다. 여당 내부로부터 탄핵 주장이 등장했고, 검찰은 대통령에 대한 대면조사 방침을 분명히 했고, 정의당의 주장이었던 '질서있는 퇴진'을 보수언론마저 주장하고 나섰다. 물론 이들이 압력에 떠밀리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비박이 탄핵을 주장하는 것은 이 기회에 당내 권력을 재편하기 위해서이며, <조선일보>가 헌법 71조에 입각한 '대통령 권한대행'론을 들고나온 이유도 민심의 반영보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권토중래만은 막아야 한다는 나름의 절박감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해도 모두의 상식선을 이동시켜서 어디까지 주장할 수 있을지 정해주는 것은 거리에 선 대중의 함성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실망의 가능성을 예상함으로써 실망에 정서적으로 대비하려 하거나, 보수세력의 방어 또는 반격 능력을 걱정하며 소심해지기보다는, 우리의 열망에 충실해질 때이고, 필요하다면 다시 거리로 나가려는 자세를 가질 때이다. 지난 토요일 저녁 우리 모두 가수 이승환과 함께 노래 불렀듯이. "꿈을 꾸었던 것일까/ 주위엔 아무도 없는데/ 내 발 옆엔 주홍색 공 하나 덜렁//덩크슛 한번 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 하늘을 날듯이/ 주문을 외워보자/ 하야하라 박근혜, 하야하라 박근혜// 한번 더 될 때까지, 오 예/ 하야하라 박근혜, 하야하라 박근혜."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