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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박근혜에 대한 모든 환상이 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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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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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는 정치의 본질을 자신의 작업과 관련지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내 작업은 심리분석(psychoanalysis)인 반면, 그들(정치인들)의 작업은 심리종합(psychosynthesis)이다." 정치적 심리종합 가운데 가장 전형적인 것은 지도자에 대한 환상이다. 정치 지도자라 불리는 사람들의 '실체'란 전언(傳言)과 이미지를 원재료로 조합된 환상들이며, '위대한' 정치 지도자란 다양한 환상을 더 많이 응집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박근혜 대통령은 '위대하다' 할 만큼 여러 겹의 환상을 끌어모으고 있는 것 같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딸이며, 그렇기 때문에 양친에게 투사된 환상 모두를 상속받고 있으며, 그것도 아주 그럴듯한 형태로 조합하고 있었다. 경제성장과 독재로 요약되는 아버지의 양가성이 어머니가 풍겨온 자애로운 이미지 속에 중화되어 포악한 독재 없는 경제성장의 가능성이라는 환상으로 주조되었다. 그는 양친을 모두 비극적으로 잃기도 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측은해하고, 경제성장 덕에 잘살게 된 것을 생각하면 무언가 갚아주어야 할 사람으로 여겼다.

그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 동생들이 있지만 사이가 좋지 않으니 가족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셈이었다. 스스로도 "내게 자식이 있기를 하냐"며 "국가와 결혼했다"고 하기도 했다. 대통령 친인척 비리에 신물이 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유난한 가족주의적 정서에서 아무도 자유롭지 못한 나라에서 이런 말은 그럴듯한 환상을 부추겼다. 가족도 없는 사람의 공심(公心)을 의심하는 것은 지나친 것으로 느껴졌으며, 그렇게 가정된 공심은 사심으로 충만한 듯한 이명박 대통령에게 지친 이들에게는 더없이 빛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환상은 무너졌다. 경제성장은 없었다. '국민행복'은 더더욱 없고, 그 대신 '헬조선'이란 말이 회자됐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가차 없이 찍어냈다. 거기서 사람들은 독재 없는 성장이 아니라 성장 없는 독재를 보게 되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뒤, 팽목항을 두번째 방문한 자리에서 대통령은 유가족들에게 "가족을 잃은 사람의 슬픔을 겪어봐 잘 알고 있다. 여러분이 어떠실지 생각하면 가슴이 메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의 행동은 말과 달랐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이 많은 사람이다. 그런 그를 대중은 안쓰러워했고, 대통령이 되면 그 한을 풀어 정을 주리라 믿었다. 하지만 세월호 유가족에게 보인 모습은 자기 한에 갇혀 공감 능력을 잃어버린 사람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환상이 깨졌다. 돈 따위엔 관심 없는 줄 알았던 대통령이 재벌들의 돈을 모금했다. 가족이 없는 줄 알았던 그에게 가족이나 다름없는, 아니 가족보다 더한 이들이 있었다. 그렇지 않고야 그토록 많은 국가기관과 그 많은 재벌 그리고 '명문' 이화여대까지 나서서 대통령의 친딸이라 해도 믿기지 않는 권세를 최순실씨의 딸에게 안겨주었겠는가. 뭐라 해도 공심만은 가졌으리라 믿었던 박근혜 대통령도 공심이 없었던 셈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공심과 사심의 구별 이전, 자신의 모든 사심이 곧 공심이라고 믿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모든 환상이 깨진 자리에서 우리는 이 한 많고 복수심 많은 대통령을 망연히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국군의 날 기념사로 미루어 짐작건대 대통령은 "우주가 나서서" 남북관계의 어떤 중대 사태가 산산조각 난 환상의 자리를 메워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 같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