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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지진 그리고 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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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 KOREA
Getty Images/iStock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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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5차 핵실험에 이어 경주 인근에서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하고 이번주 월요일엔 서울에서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큰 '여진'을 겪자 몇 년 전 일이 갑자기 생각났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있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에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점심식사 시간에 한 저명한 일본 사회과학자 옆에 앉게 되었다.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만 초면에는 하지 말아야 했을 '무례한' 이야기를 하고 말았다. 기억나는 대로 적자면 이런 내용이다.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사건으로 지구상에서 핵에 두 번 피폭된 유일한 민족이 되었다. 이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참혹한 원폭 피해를 겪은 당신들에게 일본 열도에 늘어선 원전이란 무엇인가? 혹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겪은 끔찍한 경험 때문에 그것을 다룰 수 있기를 원했던 것은 아닌가? 마치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이 반복 강박에 빠지는 것처럼 당신들은 공포의 원천인 핵에 접근해 가려고 했던 것은 아닌가? 서툰 영어로 했던 말이라 그가 내 진의를 정확히 알아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내 말을 들은 그는 침통한 표정으로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군요, 하고 말했다.

불현듯 그 일이 생각나자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게 하는 부끄러움의 감정도 함께 밀려왔다. 그에게 내가 했던 말은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 안쓰러운 이웃을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차는 태도가 스민 것이었다. 지금 한반도 상황을 비추어보면, 그런 내 태도는 제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남의 눈의 티끌을 들추는 한심한 것이었다. 그리고 마치 그 일본 학자가 북핵과 원전 인근의 대규모 지진이 발생한 상황을 두고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느낌이 들었다.

핵폭탄과 원전의 파괴적 위험에 당신네 한반도 사람들도 아주 가까이 갔군요. 하지만 사정은 일본인들보다 훨씬 더 고약할 것 같습니다. 북한의 핵이 정확히 한·미·일 가운데 어디를 겨누는지 짚어 말하긴 어렵다 해도, 아무튼 같은 민족 또한 타격 목표에 포함하고 있는 핵은 타국과의 전쟁에서 겪은 핵과도 다른 트라우마일 것입니다. 원전도 그렇습니다. 원전 밀집도와 주변 지역의 주민 수에서 세계 1위인 한국의 위험도는 일본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합니다. 게다가 후쿠시마 원전은 규모 9.0의 지진에 무너졌지만, 한국은 그보다 훨씬 낮은 규모의 지진에도 괴멸적인 피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물론 당신들은 아직 피폭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행운'이 우리 일본보다 유일하게 나은 점인 듯합니다. 부디 그 행운이 남겨둔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빕니다.

한반도 주민이 핵폭탄과 원전을 모두 끌어안고 위험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분단 상황이 두 가지를 분리시켜 생각하게끔 하기 때문이다. 확실히 분단으로 인해 남북은 서로 다른 경로를 밟아왔다. 북한은 빨치산 국가에서 출발하여 사회주의권의 붕괴 이후로는 유례없이 폐쇄적인 농성체제가 되었는데 핵은 그런 행로의 끝에 있다. 이에 비해 남한은 세계체제의 분업 구조에 깊이 참여해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이룩했다. 하지만 활성단층대의 존재를 안 이후에도 추가 원전 건설을 추구해온 것이 보여주듯이, 남한이 이룩한 성과는 엄청난 무모함, 무책임, 그리고 근시안과 결합된 것이었다. 그 결과 남북한은 모두 불안에 깊이 침윤된 체제에 봉착했다. 차이가 있다면 그 불안을 처리하는 방식에 있을 뿐이다. 한쪽이 핵 같은 어떤 강력한 것에 기대어 격앙된 목소리로 불안 따윈 없다고 허장성세를 늘어놓는다면, 다른 한쪽은 불운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믿으며 현실을 지속적으로 부인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