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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견 입양" 공약해놓고, 9마리 유기견 만든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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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진돗개 '새롬이'와 '희망이'가 낳은 새끼 5마리를 돌보는 박근혜 전 대통령. 새끼들의 '대국민 이름 공모'를 하는 등 청와대는 두 개를 홍보에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2011년 대선,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민주당 문재인 후보 측에 '한겨레' 토요판 생명면이 동물정책에 대해 질의한 적이 있었다.

문재인 후보 쪽은 이미 유기고양이 '찡찡이'를 입양해 풍산개 '마루'와 함께 집에서 키우고 있었다. 문 후보의 측근은 부인 김정숙씨가 사진을 보내준다며, 고양이와 즐겁게 노는 사진을 몇 차례 기자에게 포워딩해 준 기억이 있다. 반면, 박근혜 후보 캠프 쪽의 태도는 좀 관료적인 느낌이 났다. 그러나 앞서 생명체학대방지연합 등 시민단체의 정책 질의서에 "유기동물을 직접 청와대에 입양하겠다"고 밝혔기에 많은 기대를 했다. 이 공약은 한 나라의 '퍼스트독'이 유기견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나름 의미심장하고 세계적으로도 앞선 정책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덥지 않아서 다시 확인했다. 박근혜 캠프 관계자는 "새누리당 전문위원이 기초자료를 작성해 올린 것을 후보실에서 최종 검토해 확정한 것이다. 박 후보의 공식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관련기사: 봉숙아 또는 찡찡아, 니들이 말 좀 잘해줘~)

그러나 이듬해 2월, 청와대로 들어가는 '대통령 박근혜'의 품안에 있던 건 '유기견'이 아니었다. 서울 삼성동 사저를 떠나는 날 주민들이 '선물한' 진돗개 두 마리를 박근혜는 덜컥 받아들었고, 대통령 첫 날부터 '청와대 유기견 입양' 공약은 휴지조각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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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는 동물친화적인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두 후보가 '한겨레'에 보낸 사진.

2014년 말 이와 관련해 후속 취재를 다시 진행했다. 며칠간 답변이 미뤄질 정도로, 취재는 쉽지 않았다. 당시 제1부속실은 정호성이 담당했고, 제2부속실은 안봉근이 담당했다. 결국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으로부터 밤 늦게 전화가 왔다. "조심스러워서 아무도 대답을 안 하려고 해요. 그래서 내가 이렇게 대답합니다"라고 하면서 두 마리가 자주 싸운다는 등 두 '퍼스트독'의 근황을 소개했다.

"대통령께선 아직 유기견 입양할 계획이 없으시냐"고 민 대변인에게 물었다. 당혹스러워하며 그가 답했다. "대통령에게 물어봐야 알 수 있는 건데, 이것 때문에 물어볼 수도 없고..." (관련기사: '청와대 실세가 유기견이면 좋을 텐데')

대통령 심기를 거스를 만한 질문은 시도도 못하는 분위기 아닌가 했다. 지난해 말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밝혀지면서, 이제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2013년에는 '청와대 실세는 진돗개'라는 우스개소리도 있었다. "청와대에서 참모의 힘은 대통령과 얼마나 자주 대면하느냐로 측정"되는데, "퍼스트독이 자주 본 사람, 이들이 꼬리를 흔드는 사람이 곧 '실세'"라는 이야기였다. 대통령은 관저에 머무르면서 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면하지 않았다. 진돗개는 어쩌면 깊은 진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진돗개 두 마리의 이름은 '새롬이'와 '희망이'로 지어졌다. 최근 특검 조사 결과에 따르면, 그나마 이 두 이름도 최순실의 그림자가 아른거린다. 퍼스트독 이름 후보가 '진돗개.hwp' 파일에 담겨 최순실에게 전해졌고, 최종적으로 새롬이와 희망이로 정해진 사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전해진 것이다. (동아일보 1월5일 '진돗개 작명-벽지 선정도 관여...또 드러나 청 안방권력 최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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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견 입양 공약을 무시한 청와대는 하지만 페이스북에 박근혜 대통령이 개와 함께 노는 사진을 올리는 등 홍보에 적극 이용했다.새롬이와 희망이가 2015년 8월 새끼 5마리를 낳자, 청와대는 새끼들의 이름을 '대국민 공모'했다. 나는 '강아지들 이름 짓기 전에 대통령이 하셔야 할 것'이라는 기사를 통해, 유기견 입양 공약의 이행을 재차 촉구했지만, 역시 청와대로부터 답은 없었다. 첫 번째 낳은 새끼 5마리는 일반인에게 분양됐고, 지난 1월 새롬이와 희망이는 새끼 7마리를 또 출산하기에 이른다.

11일 저녁, 서울 삼성동 사저로 돌아가는 박근혜의 모습에서 새롬이, 희망이와 7마리 새끼들은 보이지 않았다. 동물보호단체 '케어'는 이날 "한 국가의 원수였던 분께서 직접 입양하고 번식하였던 진돗개 9마리를 책임지지 않고 포기하는 것은 사실 유기나 다름없다. 삼성동 사저의 크기는 대지면적 484㎡, 건물면적 317.35㎡라고 한다. 이곳에서 진돗개 몇 마리조차 기를 수 없다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유기견 입양하겠다던 대통령이 유기견 9마리를 만들고 있다. 그것이 탄핵당한 대한민국 대통령의 모습이었다. 케어는 새롬이와 희망이 등 9마리를 입양하겠다고 밝혔다. 누가 대통령감인지 아닌지 보려면, 약자와 동물을 대하는 태도를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