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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실력이 되는 사회와 정실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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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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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칠기삼(運七技三)과 불평등의 경제학 | 10. 돈이 실력이 되는 사회와 정실자본주의

"돈도 실력이야. 니네 부모를 원망해." 대한민국을 뒤흔든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등장하는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이화여대에 합격 후 특혜 의혹이 제기되던 때 SNS에 이런 글을 게시했다고 한다. 정유라보다 승마 실력이 우월했으나 국가대표가 되지 못한 선수들, 이화여대에 합격하지 못한 학생들이 이 주장을 접하고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아니, 험난한 입시경쟁에 시달리는 이 땅의 모든 학생들이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운이 좋아 성공해놓고 "운도 실력"이라고 떠벌리는 사람들을 보면 억지 주장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다지 미운 마음이 들지는 않는다. 스스로가 운의 도움을 받았다고 인정하는 어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력이 부족한데도 돈을 써서 성공해놓고 "돈도 실력"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보면 어떨까? 돈의 힘을 빌렸다고 인정했으니 봐줘야 할까? 우연한 운은 세상살이에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이지만 실력으로 경쟁하는 게임에서 돈을 써서 이긴다는 것은 곧 있어서는 안 될 부정행위를 저질렀음을 의미한다. 아마도 돈이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형성된 극단적인 우월감과 함께 친구들과의 수평적 관계를 별로 경험하지 못한데 따른 사회성의 결여 탓에 정유라는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말을 공개적으로 한 모양이다.

자신보다 실력이 부족한 사람들도 과거에 합격하는데 자신은 번번이 불합격하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옥황상제에게 찾아가 불평한 선비의 마음은 어땠을까? "세상사에는 3할의 이치도 행해지는 법이니 운수만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로 선비를 꾸짖고 돌려보낸 옥황상제는 과연 지혜로운 판단을 한 것인가? 이 사회는 시험에 의해 관료를 선발하니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능력주의 사회다. 선비의 불운은 순수한 우연일 수도 있다. 출제가 하필이면 공부가 부족했던 분야에 집중되었다든지, 갑자기 복통이 와서 시험을 제대로 치를 수 없었다든지 하는 경우들이다. 하지만 이런 순수 우연만으로 과거시험의 성패가 7할이나 좌우될까? 선비는 분명 뭔가 불공정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해서 옥황상제에게 항의했을 것이다. 집안이 연줄이 좋고 돈이 많고 권력과 가까워서 불공정한 방법으로 합격한 것까지 세상살이에 불가피하게 존재하는 운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곤란하다. 이건 운이 아니라 부정행위일 따름이다.

사실 관문이 좁은 입시나 취직에서 정유라의 경우와 유사한 부정행위가 적지 않게 일어나고 있는 모양이다. 국회의원 나경원의 딸이나 삼성그룹 이재용의 아들 경우에도 부정입학 문제가 제기되었고, 군이나 의무경찰에서의 보직 배정이나 소위 좋은 직장에 취직할 때 집안 배경의 덕을 보는 현대판 음서제의 문제는 광범위하게 제기된 바 있다. 이미 부와 권력을 차지한 기득권자들이 부정한 방법까지 동원하여 실력에 의해 배분되는 사회적 보상까지 누리려는 사회를 겪으면서 젊은이들은 '헬조선'이라고 좌절하고 국민대다수는 노력을 통한 계층상승의 희망을 포기하고 있다.

더 넓은 시각에서 보면 한국경제 자체가 송두리째 문제다. 불공정 경쟁이 만연해 있어 실력과 노력이 아닌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경쟁에서 승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성차별, 비정규직 차별 등 다양한 형태의 차별과 부당한 하도급 계약, 골목상권 침탈, 약탈적 대출 등 다양한 형태의 약탈이 바로 기득권자들에 의한 불공정 경쟁이다. 이러한 행위들은 그 자체로 불의일 뿐만 아니라 사회통합을 파괴하고 소득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기득권자들에 의한 불공정 경쟁 중에서도 가장 노골적이고 위험한 것은 권력을 이용한 이권추구행위다. 공동체의 공공선을 추구하고 갈등을 조정하기 위해 존재하는 정치권력을 사적인 치부행위에 사용하는 것은 공정경쟁을 원칙으로 하는 시장경제 질서를 파괴하고 민주주의를 유린하는 행위다. 이런 일이 빈발하는 사회를 서구에서는 정실자본주의(crony capitalism)라고 부르고, 우리는 정경유착이라고 부른다. 이런 현상이 심화되면 자원배분이 크게 왜곡되고 결국은 심각한 경제위기가 닥쳐온다. 1997년의 아시아금융위기 당시 해외언론들이 정실자본주의를 근본원인으로 지적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외환위기 이후 집권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일련의 개혁정책을 추진하였으나, 김대중 정부 후반기부터 재벌친화적 정책이 부활하고 노무현 정부가 삼성그룹과 유착하는 등 개혁정책의 한계가 뚜렷했다. 이후에 이명박 정부는 아예 노골적으로 친재벌 정책을 추진하면서 소위 '사자방 비리' 등 권력을 이용한 치부행위를 조장함으로써 정경유착을 화려하게 부활시켰다. 그리고 지금 초유의 국가위기를 초래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정경유착의 끝판왕을 보여주고 있다. 나라와 결혼한 몸이고 자식도 없으니 깨끗하리라고 기대했던 대통령 박근혜는 알고 보니 나라를 송두리째 최순실 일당에게 헌납하여 이들의 기업 갈취와 세금도둑질을 적극 지원하였고, 재벌들은 이들에게 협력하는 대가로 각종 초법적인 특혜를 누렸다.1) 정실자본주의에서는 권력이 돈이 되기도 하지만, 돈이 권력이 되어 다시 더 큰 돈으로 둔갑을 한다.

정유라가 돈도 실력이라고 주장한 그 돈, 즉 최순실의 돈은 과연 어디서 왔을까? 신흥종교·이단 전문가인 탁명환 씨에 의하면 최순실의 아버지 "최태민은 '구국'에는 구호뿐이지 사실은 축재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는 사무실에 앉아서 재벌급 기업인들에게 전화 다이얼을 돌리는 것이 일과였다. 항상 검은 안경을 끼고서 오만하게 앉아 재벌들에게 전화질을 하면서 꼭 근혜양을 팔았다."2) 박근혜가 가진 권력을 이용하여 재벌들을 갈취하는 것은 최순실 집안의 대를 이은 가업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재벌들은 이들에게 기꺼이 갈취를 당하면서 국가권력으로부터 그보다 훨씬 큰 대가를 챙겨왔다. 박근혜 정부에서 한국의 정실자본주의는 1970년대의 저급하고 노골적인 모습으로 다시 만개하였다. 권력이 돈이 되고 돈이 실력이 되는 사회, 정실자본주의는 경제위기를 부르고 나라를 망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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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종일, "'박순실 게이트'와 87년 체제, 그래서 시민주권 혁명", 유종일의 경제 새판짜기 칼럼, 경향신문 2016. 11. 4.
2) "최태민 "큰 영애께서..." 전화 돌려 재벌 돈 뜯는 게 일", 중앙일보 2016. 11. 5,
http://news.joins.com/article/20821334


[운칠기삼(運七技三)과 불평등의 경제학]

1. 어느 CEO의 야릇한 이혼소송과 '행운의 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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