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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탕쿠르와 이재용, 그리고 세습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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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tyimage/이매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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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칠기삼(運七技三)과 불평등의 경제학 | 9. 베탕쿠르와 이재용, 그리고 세습자본주의

빌 게이츠는 부모에게 우수한 유전자와 좋은 가정환경을 물려받아 뛰어난 실력을 갖추었고, 사업수완을 발휘하고 기회를 포착하여 미국의 최고 부호가 되었다. 반면 로레알의 상속녀 베탕쿠르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특별한 실력을 갖추지도 않았지만 단지 부모에게서 엄청난 재산을 상속받은 덕분에 프랑스의 최고 부호 지위를 누렸다.

태생에 따라 승률이 다른 복권을 받는 태생의 운을 흔히 '부의 대물림'이라고 한다. 게이츠나 베탕쿠르 모두 부모 잘 만난 혜택을 단단히 누렸다. 그러나 게이츠의 경우 부의 대물림은 실력을 통해 이루어졌고, 베탕쿠르의 경우에는 재산상속을 통해 이루어졌다. 실력을 통한 대물림은 부모에게서 자질과 여건, 그리고 기회를 부여받아 사회가 가치 있게 여기고 보상하는 실력을 갖춤으로써 혜택을 누리는 것이고, 상속을 통한 대물림은 부모로부터 신분이나 재산, 그리고 관계망 등을 전해 받아 혜택을 누리는 것이다. 우리는 전자보다 후자가 더 불공평하다고 느낀다. 아무리 태생의 운이 좋아도 실력은 일정부분 자신이 노력한 결과이고 불리한 여건에 처한 사람도 노력을 통해 실력을 갖출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데 반해, 상속에 의해 누리는 특혜는 본인의 노력과 전혀 관계가 없는 순수한 특권이기 때문이다.

부의 대물림 현상이 심화되면 운명론이 팽배하고 상속의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자포자기의 분위기가 형성된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수저계급론'은 태어날 때부터 집안 환경에 따라 운명이 거의 정해진다는 인식을 보여준다. 성공하려면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야 하며,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은 아무리 '노~오~력'해도 성공은 언감생심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는 불공평할 뿐만 아니라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이다.

보다 공평하고 효율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태생에 따른 승률의 차이를 줄이는 방향으로 사회제도를 개선하는 것은 역사발전의 중요한 축이었다. 법 앞의 평등과 기회의 평등을 이상으로 하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이렇게 태어났다. 그리고 이러한 원칙만으로는 부의 대물림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국가가 기본적인 교육과 의료를 책임지고 고율의 상속세를 부과하는 등 실질적인 기회의 평등을 제고하기 위한 다양한 수단을 강구하게 되었다.

그런데 최근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점차 부와 소득이 최상위 계층에 집중되고, 이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증대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는 이러한 경향이 지속되면 조만간 '세습자본주의(patrimonial capitalism)'가 도래할 것이라고 경고한다.1) 세습자본주의란 상속부자들이 자수성가한 사람들보다 월등하게 많은 소득과 특권을 향유하는 사회를 말한다. 본인의 노력과 무관하게 부모 잘 만난 운에 의해 지배적 지위를 향유하게 된다는 점에서 신분제 사회가 부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피케티는 고율의 소득세와 강력한 자본과세를 통해 세습자본주의의 도래를 막아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국민 대다수가 가난했던 우리나라도 반세기를 넘는 경제성장의 결과 엄청난 자본이 축적되어 부의 대물림이 심화되는 단계에 이르렀다. 다른 한편 고도성장기가 종언을 고하고 저성장 단계로 이행함으로써 성장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기회가 급격히 줄어들었고, 이로 인해 빈곤의 대물림이 심화되고 있다. 게다가 각종 정책과 제도가 갈수록 불공평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치닫고 있어 부와 빈곤의 대물림을 부채질하고 있다. 그 결과 국민의 80% 이상이 계층상승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되었다.2)

실력을 통한 부의 대물림은 이를 부추기는 교육제도 때문에 더욱 심화되고 있다. 과거에는 교육이 계층상승의 사다리 역할을 했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계층 간 불평등을 재생산하고 고착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사교육에 의존하는 입시경쟁과 서열화된 대학체제, OECD 최고 수준의 사립학교 비율과 대학등록금 등으로 인하여 명문대학 입시에 가정형편이 갈수록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다. 특히, 특목고나 자사고 등 고교 다양화 정책은 실력을 통한 부의 대물림을 심화하는 데 매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대학입학 후에도 등록금과 생활비 부담 때문에 가정형편이 어려운 경우 '알바'에 내몰려 학업에 소홀하게 되기도 하고, 학자금 대출이 후에 큰 멍에가 되기도 함으로써 빈곤의 대물림을 조장한다.

상속을 통한 부의 대물림도 갈수록 비중이 커지고 노골화되고 있다. 상속증여세가 느슨하고, 자본과 자본이득에 대한 과세가 전반적으로 미약하다.3) 조세제도에 부의 대물림을 약화시키는 기능이 취약하다는 것이다. 반면 유구한 세월 지속되어온 부동산 경기 부양 정책 탓에 소득 대비 부동산 가격이 매우 높아서 집을 소유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에, 건물주와 임대인 사이에 실질적인 가처분 소득의 격차가 크게 벌어진다. 게다가 임대수입에 대한 과세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오죽하면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한국사회는 이미 세습자본주의에 가까이 와있다.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가 경제전문지 포브스의 억만장자 명단을 토대로 분석한 결과, 2014년 기준으로 한국인 억만장자 중 상속부자의 비율은 74.1%로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이 비율이 중국과 일본에서는 각각 2%와 18.5%에 불과했으며, 미국은 28.9%, 유럽은 35.8%였다.4) 한국에 자수성가한 부자가 별로 없고 상속부자 비율이 높은 까닭은 재벌이 지배하는 경제구조다. 재벌의 그늘 아래서 창업 성공 신화는 나오기 어려운 반면, 재벌가는 다양한 편법을 동원하여 부의 상속을 실현한다. 게다가 경영능력과는 무관하게 경영권 세습까지 해낸다. 한국을 대표하는 삼성그룹의 경우만 하더라도 과거 e-삼성의 실패와 최근 갤럭시노트7 단종 사태로 경영 능력이 의심받고 있으며 편법·탈법 상속 등 각종 물의를 일으킨 이재용 씨가 그룹 경영권을 장악했으며, 일전에는 보란 듯이 삼성전자의 등기이사로서 경영 전면에 나섰다. 이재용 씨는 한국적 세습자본주의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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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종일 외, <피케티, 어떻게 읽을 것인가?>, 한울, 2015.
2) 현대경제연구원, '우리나라 사회신뢰도와 공정성에 대한 인식', 2016.
3) 통상 대다수 상속인은 각종 공제로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고 겨우 2%정도만 상속세를 납부한다. 가업상속공제는 무려 500억 원까지 가능하며, 재벌의 편법상속은 너그러운 세법마저도 무력화한다.
4) 다른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한 국제자산정보회사 '웰스-X'와 듀크대 연구진의 분석에서도 우리나라의 자수성가형 부호 비율은 33.3%로 세계 평균 63.8%의 절반에 불과했으며, 조사대상 53개국 중 47위에 그쳤다.


[운칠기삼(運七技三)과 불평등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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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운의 사회적 기능과 '카지노 자본주의'

3. 마태효과와 시장경제의 '운칠기삼'

4. 승자독식 경쟁과 운의 비중

5. 특별한 기회라는 행운

6.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가는 행운

7. 타고난 재능과 성격이라는 행운

8. 능력주의의 함정과 운칠기삼의 윤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