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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는 행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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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LL GATES
Tiksa Negeri /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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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칠기삼(運七技三)과 불평등의 경제학 | 6.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가는 행운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이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작 뉴턴의 말로 알려져 있는 유명한 문장이다. 그러나 과학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의 연구에 의하면 이 문장은 뉴턴이 창작해낸 것이 아니고, 당시에 널리 알려져 있던 것을 인용한 것이라고 한다.1) 사실 너무나 흔한 경구였기에 뉴턴은 출처를 인용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대부분 이 문장을 뉴턴의 경구로 알고 있는 것은 뉴턴이라는 위대한 인물의 아우라 때문이다. 내가 혼자 다 한 게 아니라며 '겸손'을 드러내는 이 문장이 뉴턴의 아우라 덕분에 후대에 그의 말로 알려지게 된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머튼은 이와 관련하여 "어떤 개인에게 전적으로 공을 돌린다는 발상 자체가 근본적으로 오류"라고 지적하며, "모든 창조자는 시공간에서 타인에게 둘러싸여 있고 죽은 자와 산 자를 불문하고 수많은 타인에게 개념, 맥락, 도구, 방법론, 데이터, 법칙, 원칙, 모형을 물려받는다"고 강조한다.

한 과학자의 발견과 창조적 이론이 결코 그 한 사람만의 공일 수 없으며, 역사적으로 축적된 지식과 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해준 사회, 그리고 지식을 공유하면서 서로의 연구를 자극하는 동료 과학자들에게 많은 신세를 진 것이라는 인식은 경제적 가치의 창출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과학적 성공뿐만 아니라 경제적 성공의 스토리도 거인의 어깨 위에서 씌어진다. 당대 최고의 주식투자자인 워렌 버핏은 "지금 누군가가 나무그늘에서 쉬고 있는 것은 오래 전에 다른 누군가가 나무를 심어놓았기 때문"이라는 말로 유사한 생각을 표현했다. 오늘날 인류가 쌓아올린 거대한 부의 원천은 인류역사를 통해 누적된 지식과 기술의 진보다.

성공의 원인을 추적한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가 "숨겨진 이점과 기막힌 기회"를 강조했다는 것을 지난주에 소개했지만, 그가 성공의 요인으로 또 하나 강조한 것은 "문화적 유산과 역사적 공동체의 혜택"이다.2) 실제로 이 책의 제1부 제목은 "기회"고 제2부 제목은 "유산"이다. 글래드웰은 우리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에 문화적 유산이 얼마나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하면서, 과거에 대한항공이 빈번한 사고에 시달린 중요한 원인이 권위에 복종하는 우리나라 문화였음을 보여주기도 하고, 아시아 학생들이 미국 학생들보다 셈법을 훨씬 빨리 배우는 까닭을 십진법과 일치하는 숫자 표기 방식에서 찾기도 한다. 예를 들어, 12가 한글에서는 '십, 이'이지만, 영어에서는 'ten, two'가 아니라 twelve여서 혼란스럽다.

필자는 과거에 강연을 할 때 한 개인의 경제적 성공이 그가 속한 사회의 혜택으로 얻어진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빌 게이츠의 부친이 한 말을 여러 번 인용한 적이 있다. "내 아들 빌이 머리가 뛰어나고 열심히 노력했으며 사업수완도 뛰어난데다 운까지 좋아서 큰 돈을 벌었다. 그러나 만약 빌이 미국이 아닌 소말리아나 아프가니스탄에 태어났다면 제아무리 뛰어난 실력과 사업수완이 있더라도, 제아무리 운이 좋더라도, 과연 세계 최고의 부호가 될 수 있었을까? 그러기는커녕 미국에서 흔히 보는 백만장자가 되는 것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빌이 번 돈의 대부분은 미국사회가 그에게 제공한 여건과 기회의 덕분이고, 따라서 그가 전 재산의 95%를 사회에 환원하기로 결정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말은 지극히 타당하면서도 중요한 논리를 담고 있는데, 문제는 빌 게이츠의 아버지가 실제로 이런 말을 했다는 기록을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이제 필자는 그를 인용하는 대신 그는 그렇게 말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버지의 말은 출처를 찾지 못했지만 아들 빌 게이츠가 잡지 롤링스톤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 것은 찾았다.3) "저는 굉장히 운이 좋았어요. 그러니 이 세상의 불공평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저의 의무입니다."

흔히 시장경제가 발달하기 위해서는 사적재산권의 보호가 중요하다고 한다.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 철학에서는 자발적인 증여나 거래에 의해서 획득한 재산은 정당한 것이고, 이렇게 정당하게 획득한 사유재산에 대해서는 절대적인 권리가 소유자에게 부여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입장에 서면 세금은 개인이 정당하게 획득한 재산을 국가가 부당하게 강탈하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생명과 재산권 보호를 위한 국가안보와 법질서 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국가기능만을 수행하는 최소국가(minimalist state)를 옹호한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절대적인 사적재산권은 효율적이지도 않고 정당하지도 않음을 알 수 있다. 사회간접자본이나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는 자본의 생산성을 증가시킴으로써 결국 사적재산의 가치를 높여준다. 교육에 대한 투자도 교육받은 인력을 활용하여 돈을 더 잘 벌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에서 유사한 효과를 지닌다. 넓게 보면 건강이나 복지를 위한 지출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사적재산권의 일정한 제약이 시장경제의 작동을 위해 오히려 더 효율적이다. 또한 개인이 소유한 재산이라고 하더라도 그 가치의 상당 부분은 사회의 덕분이며, 개인에게 귀속되어 마땅한 부분이 어느 만큼인지 정확하게 평가할 방법도 없다. 재산의 가치가 사회와 독립적으로 성립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예를 들어, 집 가까이에 지하철역이 생기거나 이웃들이 집을 잘 가꾸기만 해도 그 집의 가치는 올라간다. 반대로 사드와 같은 혐오시설이 근처에 들어서면 집의 가치는 떨어진다.

사적재산권이 경제적 유인을 제공하는 기본적인 토대라는 것은 역사적으로 거듭 확인된 사실이다. 그러나 개인이 개별적으로 시장에서 획득한 부라고 할지라도 그 부의 많은 부분은 자신의 노력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사회에 축적된 자본과 기술, 타인의 협력 등에 기인한 사회의 선물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사적재산권은 결코 절대적일 수 없다. 대한민국 헌법은 이 점에서 상당히 전향적이다. 헌법 제23조는 재산권을 보장하되 법률에 의해 그 한계를 정할 수 있다고 천명하고, 나아가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이야말로 경제민주화의 근본적인 토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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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Robert K. Merton, On the Shoulders of Giants, New York: Press, 1965.
2) 말콤 글래드웰, 『아웃라이어』 (성공의 기회를 발견한 사람들), 노정태 옮김, 김영사, 2009.
3) Jeff Goodell, "Bill Gates: The Rolling Stone Interview," Rolling Stone, March 27,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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