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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독식 경쟁과 운의 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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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칠기삼(運七技三)과 불평등의 경제학 | 4. 승자독식 경쟁과 운의 비중

운의 역할을 강조하면 치열한 경쟁을 뚫고 크게 성공한 사람들은 섭섭해 할 수도 있다. <성공과 행운>이라는 책을 쓴 로버트 프랭크라는 경제학자는 스스로가 엄청난 행운아라고 생각한다.1) 기적과 같은 행운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난 것만 두 번이며, 그가 코넬대학의 경제학과 교수가 된 것도 너무나 우연한 행운의 결과였다고 한다. 그러니 그가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에서 운의 역할이 생각보다 크다는 주장을 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독자들의 반응은 매우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스스로의 재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고 믿는 사람들이 몹시 화를 냈다는 것이다.

각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자신의 재능과 노력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니다. 실제로 이들은 거의 예외 없이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 사람들이다. 이들의 성공에 운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강조하는 것은 성공의 가치와 자신들이 누리는 보상의 정당성을 폄훼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하지만 설사 성공한 사람들 모두가 대단한 재능과 각고의 노력을 바탕으로 성공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것이 곧 누구나 재능이 있고 노력을 기울이면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성공한 사람들 못지않은 재능과 실력을 갖추고 그들 못지않은 노력을 기울이고서도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재능과 실력, 그리고 노력은 성공의 필요조건이 될 수는 있어도 결코 충분조건은 아니다. 필요조건을 충분조건으로 전환시켜주는 추가요소가 바로 행운이다.

표준적인 경제이론에 의하면 경쟁에 참여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완전경쟁에 가까워져서 효율적인 자원배분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완전경쟁 하에서는 승자도 패자도 없고 누구나 자신의 능력과 노력에 비례해서 보상을 받게 된다. 하지만 모든 정보가 완전하게 공유된다는 전제를 포함해서 완전경쟁이 성립하기 위한 조건들이 현실에서 실제로 성립되기는 어렵다. 특히 막대한 자본과 특별한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산업들의 경우에는 경쟁에 참여하는 기업의 수가 제한되어 독과점시장이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럴 때 독과점 기업은 시장권력(market power)과 이에 기초한 초과이윤, 즉 능력과 노력에 비례하는 것 이상의 보상을 누리게 되는데, 이러한 문제는 표준적인 경제이론에서 많이 다루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경쟁참여자의 숫자가 많더라도 완전경쟁의 이상과는 매우 다른 경쟁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 현실의 시장경쟁에서는 승자와 패자가 뚜렷이 갈리고, 성패에 따라 보상의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경쟁구조를 흔히 보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완전경쟁과 대척점에 있는 것이 '승자독식' 경쟁이다. 올림픽 금메달을 향한 경쟁이 좋은 예다. 아무리 많은 선수들이 경쟁하더라도 금메달을 따는 선수는 단 한 명으로 정해져 있고, 승자와 패자에 대한 보상은 하늘과 땅의 차이가 난다. 현실 경제의 시장경쟁은 완전경쟁과 승자독식 경쟁의 중간 어디엔가 위치하며, 어느 쪽에 더 가까운지는 산업의 특성에 따라 다를 것이다. 승자독식 경쟁은 독과점으로 귀결된다.

프랭크는 승자독식 경쟁에서는 경쟁에 참여하는 사람이 많으면 운의 역할이 의외로 커진다는 것을 다음과 같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보여주었다.2) 10만 명이 경쟁하여 가장 우수한 성과를 거둔 한 명만이 최후의 승자가 되는 게임이 있다고 하자. 각 개인의 성과는 능력과 노력이 각각 49%, 그리고 운이 2%만큼 작용하여 결정된다고 가정한다. 각 개인의 능력과 노력, 운은 1부터 100 사이의 숫자 중에서 무작위로 추출하여 결정한다. 이 게임을 여러 번 반복했을 때 승자의 평균적인 운 점수는 90.23이었다. 각 개인의 성과에 미치는 운의 영향은 미미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경쟁할 때 능력과 노력의 점수가 최고점에 가깝게 높은 사람들만 해도 여럿이 있기 때문에 운이 매우 좋지 않고서는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없음을 보여준 것이다. 더구나 78.1%의 승자는 능력과 노력의 합계점수가 최고점이 아니었다. 운 점수가 매우 높았기 때문에 더 높은 능력과 노력 점수를 얻은 경쟁자들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이다.

프랭크의 시뮬레이션은 경쟁자의 수가 많을 때는 실력만으로 성공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실력은 전혀 없이 운만으로 성공하는 것도 어렵겠지만,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승자의 숫자가 제한된 상태에서 경쟁자의 수가 많아질수록 운의 역할이 더욱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문제는 근래에 시장경쟁의 구조가 갈수록 승자독식의 형태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프랭크는 시장경쟁의 양상이 갈수록 승자독식이 되어감에 따라 성공에서 운이 차지하는 비중도 늘어난다고 지적하고 있다.

경쟁구조의 승자독식화 경향에는 디지털 기술과 세계화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음악을 들으려면 콘서트에 직접 가야했고, 이는 곧 수많은 지역 음악시장에서 활동하는 음악인들이 시장을 나누어가졌음을 의미했다. 그런데 레코드가 나오면서 콘서트에 가지 않아도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자 실력이 뛰어난 음악인들의 연주가 전체 음악시장의 훨씬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고 지역 음악인들의 시장은 축소되었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녹음의 질이 고도로 높아지면서 이러한 경향은 훨씬 심화되었고, 갈수록 소수의 음악인들이 음악시장을 장악하는 승자독식 현상이 나타났다. 세계 최고 수준의 축구선수의 연봉이나 골프선수의 상금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것도 이들의 빼어난 솜씨를 전 세계의 팬들이 고화질 텔레비전을 통해 생생하게 즐기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시장제도와 정책이 승자독식을 억제하기는커녕 이를 조장해온 것도 사실이다.

시장경쟁이 갈수록 승자독식 양상을 띠면서 각 분야에서 최고수준에 이른 자들 가운데 운이 좋은 소수가 너무나 큰 보상을 독차지하게 된 것은 근래에 소득불평등이 심화된 주요한 원인 중의 하나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 과정에서 운의 역할은 점차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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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Robert H. Frank, Success and Luck: Good Fortune and the Myth of Meritocracy,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6.

2) i bid. Appendix 1.

[운칠기삼(運七技三)과 불평등의 경제학]

1. 어느 CEO의 야릇한 이혼소송과 '행운의 보수'

2. 운의 사회적 기능과 '카지노 자본주의'

3. 마태효과와 시장경제의 '운칠기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