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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의 사회적 기능과 '카지노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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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칠기삼(運七技三)과 불평등의 경제학 | 2. 운의 사회적 기능과 '카지노 자본주의'

세상일에는 운도 작용하고 실력도 작용한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익히 알고 있다. 그리고 일의 성격에 따라 운과 실력이 미치는 영향의 비율이 달라진다는 것도 상식적으로 알고 있다. 예를 들어 로또 복권에 당첨되는 것은 순전히 운에 따른 것이고, 바둑 대국의 결과는 실력에 의해 거의 결정된다. 평범한 사람이 알파고에게 이기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 이세돌 9단마저도 알파고에게 실력이 모자랐다. 하지만 다섯 판 중 한 판은 이겼다. 스포츠의 경우 실력이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없지만, 흔히 "공은 둥글다"고 말하는 것처럼 막상 게임을 하면 객관적 전력과는 다른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실력 차이가 클수록 이변이 발생할 확률은 작지만, 대다수 게임에서 의외의 결과를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마이클 모부신(Michael Mauboussin)이라는 투자전략가는 투자나 스포츠 등에서 운과 실력의 상대적 영향에 관심을 두고 분석을 했다.1) 그는 특히 스포츠에서 종목별로 운과 실력의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 자세한 분석을 했는데, 농구의 경우 90% 가까이 실력에 의해 결정되며 아이스하키는 운이 50% 이상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축구와 야구는 실력이 70%, 운이 30% 정도 작용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대체로 수긍이 가는 분석인데, 놀라운 것은 주식투자의 경우다. 모부신에 따르면 투자에 성공하는 것은 운이 90% 정도 작용하고, 실력은 10% 정도밖에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카지노에서 돈을 버는 것은 거의 99%가 운에 의한 것이라고 하는데, 주식투자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일찍이 경제학의 대가이자 주식투자의 달인이었던 케인즈가 주식시장을 카지노에 비유하며 한 나라의 자본 형성이 투기적 주식시장에 의존하는 것을 '카지노 자본주의'라고 비판한 바 있는데, 그의 직관이 옳았음이 입증된 셈이다.2)

투기적 금융에 의존한 비합리적 자원배분을 비판한 케인즈와는 정반대의 관점에서 금융시장은 모든 관련 정보를 반영하여 가격을 정확하게 결정한다는 '효율시장가설(efficient market hypothesis)'을 따르더라도, 투자의 성패는 실력이 아니라 운이 결정한다. 이 가설에 따르면 내부자 정보에 입각해 불법적인 거래를 하지 않는 한 가격이 어디로 튈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기 때문에, 애초에 '실력이 좋은 투자자'란 존재하지도 않으며 존재할 수도 없다. 이 가설의 창시자인 시카고 대학의 유진 파마(Eugene Fama) 등의 연구에 의하면 투자의 고수라는 적극적 펀드 매니저들의 평균적인 성과는 시장상황을 수동적으로 반영하는 주가지수 펀드의 수익률을 넘지 못하며, 고율의 운용보수를 빼고 나면 적극적 펀드에 투자하는 것이 오히려 손해라고 한다. 물론 수익률이 높은 펀드와 낮은 펀드가 있지만, 이는 대부분 운에 따라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일 뿐이고 실제 실력으로 고수익을 실현한 경우는 약 2.5%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3) 게다가 한번 실적이 좋았던 펀드가 계속 좋은 실적을 내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평균회귀 경향을 보인다.4)

세상일이 운에 따라 결정되는 것은 얼핏 생각하기에 나쁜 것으로 인식할 수 있다. 능력과 노력에 관계없이 운에 따라 성패가 갈리면 뭔가 부당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나아가 운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면 능력을 계발하고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어진다. 순전히 운으로 성패를 결정하는 것은 노력과 성과 여부와 무관하게 똑같이 분배하는 사회주의 못지않게 부당하고 비효율적인 처사다. 능력주의(meritocracy)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이상이다. 공직의 배분과 경제적 보상의 분배가 능력과 노력에 따라, 기여와 공헌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정의롭고 효율적이라는 믿음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운이 지나치게 크게 작용하는 사회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운이 전혀 작용하지 않고 모든 것이 완벽하게 실력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꼭 좋은 것일까? 스포츠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우연적인 요소가 전혀 없어서 객관적인 전력에 의해 승패가 완전히 결정된다면, 관중들이 손에 땀을 쥐고 경기를 지켜보는 스릴과 재미는 사라질 것이다. 멋진 슈팅이 불운하게도 골대를 맞고 튀어나오고, 홈런성 타구가 바람의 영향으로 펜스 바로 앞에서 잡히기도 하는 것이 스포츠의 묘미다. 이변이 없는 월드컵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로또나 카지노는 중독이 되거나 과도하게 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 보면, 우연이 만들어내는 재미의 일종이다.

운의 긍정적 기능은 또 있다. 실력이 부족한 사람에게 위안과 희망을 준다는 것이다. 완벽한 능력주의 사회에서 능력이 부족한 사람의 처지는 끔찍한 것이다. "운이 나빴다"고 핑계를 댈 수도, 자위를 할 수도 없다. 자책감과 자괴감을 피할 길이 없다. 다음에는 혹시 잘 될까 하는 기대도 할 수 없다. 자기 분수를 알고 주어진 현실에 만족해야 한다는 말은 이런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잔인한 말이다. 이탈리아 출신으로 미국에 건너가 지금은 시카고 대학의 경제학 교수로 있는 루이지 징갈레스(Luigi Zingales)는 '인민을 위한 자본주의'라는 저서에서 미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의 느낌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5) "어떤 공포가 밀려왔다. (이탈리아의) 부패한 시스템 하에 살 때는 내가 무슨 일에 실패하면 설사 그것이 내 책임일지라도 언제나 시스템을 탓할 수 있었다. 이제는 핑계거리가 없으니, 모든 것이 내 책임이다."

이렇게 보면 우연과 운의 존재가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니다.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는 분명 존재이유가 있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것이 운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도 분명하다. 특히 시장경제에서 불평등이 정당화되는 것은 경제적 보상이 능력과 노력에 비례하여, 가치창출에 기여한 바에 비례하여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 것이다. 만약 시장에서의 성공과 실패가, 그로 인한 불평등이 순전히 운에 의해 결정된다면 이는 저급한 '카지노 자본주의'에 불과할 것이다. 이러한 경제에서는 열심히 노력할 까닭이 없어진다. 운과 실력의 적절한 조합이 필요한데, 그 황금비율은 얼마일까?


_________________________

1) Michael Mauboussin, The Success Equation: Untangling Skill and Luck in Business, Sports, and Investing.
2) John Maynard Keynes,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 월가를 비롯한 금융자본의 투기적 행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케인즈의 카지노 자본주의에 관한 경고에 더욱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게 되었다.
3) Eugene F. Fama and Kenneth R. French, "Luck Versus Skill In The Cross-Section Of Mutual Fund Returns," Journal of Finance, Vol. LXV, No. 5, October 2010.
4) Burton Malkiel, A Random Walk Down Wall Street: The Time-Tested Strategy For Successful Investing, W. W. Norton & Company, 1973.
5) Luigi Zingales, A Capitalism for the People: Recapturing the Lost Genius of American Prosperity, Basic Books, New York, 2012.


[운칠기삼(運七技三)과 불평등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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