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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 여사 '저희나라' 발언 논란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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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정숙 여사가 이번 트럼프 방한 때 멜라니아 여사에게 '저희나라'라는 말을 썼다고 말이 많은가 보다.

2.
내 기억에 저희나라라는 낱말 대신 우리나라라고 쓰자는 여론이 확산 된 것은 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즈음이다. 이런 주장을 처음 접한 것은 모 방송국의 아침 방송이었다. 아침방송은 지금이나 그 때나 아주 묘하게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전파시키는 측면이 있었다. "저희 대신 우리라고 당당히 씁시다" 따위의 프로파간다야말로 그런 아침프로그램에 잘 어울렸다.

3.
당시는 88 서울 올림픽과 80년대 경제 호황기를 맞아 전국민이 뭔지 모를 자긍심에 휩싸이던 때였다. 아시아의 네마리 용이라는 소리도 듣고, 미국 TV방송에선 진행자가 일장기를 하나씩 쓰러트린 뒤 그 자리에 태극기를 세워 놓는 식으로 한국의 대약진을 소개하던 때다.

그러니 오랜시간 강대국 사이에서 몸살을 앓던, 특히나 일본의 식민지배 기억에 한껏 쪼그라들었던 가슴이 슬슬 펴지던 무렵이다. 더이상 우리를 낮추지 말자, 우리도 당당히 어깨를 펴자, 이런 류의 말들이 많았다. 어쩌면 무의식 속에 남아 있는 중국과의 오랜 사대관계의 그림자를 떨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4.
이런 흐름이 코미디 처럼 반영된 게 외국인을 향한 질문이다. 나라가 점차 개방되면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밀려오자 그들에게 자꾸 묻는다. "우리나라 어떠세요?" "서울 어때요?"

질문의 깊은 바닥엔 '어때요, 우리 되게 잘 살죠? 우리 되게 발전했죠?'라는 인정욕구가 숨어 있었다. 잘 나가고는 싶은데 남들이 인정 해줘야 내가 잘나가는 게 맞으니까, 주눅 든 내면을 질문의 형태로 외부에 투사한 것이다.

이 유형의 정점을 장식한 발언 역시 아침 프로그램에서 처음 들었다. 방한 외국인에게 한 그 질문은 처음 듣던 그 때나 지금이나 생각만 해도 혐오스럽기 그지없다.

"거리를 다녀보니 한국 여성분들 어떠세요? 이쁘죠?"

5.
애잔했던 거다, 나라전체가. 이 흐름의 최신 버전이 "두유노우 갱냄?"이다. 스스로 세울 수 없는 가부장적 자존심의 소심한 인정투쟁, 남의 시선을 통해 자신을 긍정해야 하는 비루함, 나의 집단이 위대해야만 나도 값어치가 생기는 국뽕의 거울. 제발 우리가 잘나간다고 말해줘, 제발 우리 여자들이 이쁘다고 말해줘, 제발 강남이 멋지다고 말해줘. 제발, 제발.

이렇게 바닥을 치는 자존감으로 살면 누가 살짝만 내려다 봐도 참지를 못한다. 2017 남자 아이돌 외모순위 탑15에 드는 멤버들(1위가 인피니트 엘이랍디다.)한테 '못생겼다'고 하면 아마 그 친구들 '아하하 그렇죠. 정말 아이돌 분들 중에 잘생긴 분들이 너무 많아요.. 하하하' 하며 대인배처럼 웃겠지. 그 아이돌 집에도 거울 있을테니 자기도 진실을 아는데 200만 팬들 중에 이상한 소리 하는 사람 하나 있는거니까. 하지만 이 글을 읽는 우리더러 '님 못생겼음. ㅇㄱㄹㅇ' 하면 당장 페절이나 차단일 거다. 아니면 조리돌림이거나.

6.
마음이란 게 그렇다. 내가 못 생겼다고 생각하면 못생겼다는 말에 화가 난다. 내가 빌빌댄다고 느끼면 넌 꼬붕이나 하란 소리에 발끈한다. 그러니 그런 말 안 들으려면 머리카락 한올이라도 각을 재서 넘겨야 하고, 겁이 나도 겁 안난다고 큰소리 쳐야 한다. 돈이 없어도 돈 있다고 허세를 부려야 하고, 저라는 말 대신 나라는 낱말을 쓰고 싶다.

연하남이 연상녀가 마음에 들면 제일 처음에 뭘 하나 보라. 누나라는 말 대신 이름 부르는 걸로 맞먹는 것 부터 시도한다. 스스로 최약지점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새 낱말로 규정하는 거, 그게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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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우리말에서 상대를 존중하는 표현들은 자신을 낮추는 것이 많다. 그런데 우린 자신이 낮은 이가 아니더라도 상대를 높이기 위해 스스로 낮추는 걸 아무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다.

자신보다 못한 처지의 사람을 향해 '선생님' 이나 '제가' 등등의 표현을 하는 경우 많다. 그런 겸양을 나타낼 때 마다 아, 정말 자존심 상하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없다. 반대로 조직에서든 어디서든 안그래도 될 지위의 분이 자신에게 꼬박꼬박 '제가'라고 하면 그 사람이 얼마나 어른스럽고 담대해 보이는지, 경험 해 본 사람들 많을 줄로 안다.

8.
난 진정으로 우리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마음을 담아 '저희나라'라고 말하는 날이 왔으면 한다. 그건 30여년 전 어렸을 때 '우리가 뭐가 꿀릴 게 있다고!'라는 유행이 처음 돌기 시작할 때 부터 가진 희망이다.

자신을 낮추고도 떳떳해 지는 건 국방비에만 천조원 쓴다는 천조국이나 지구에 일대일로의 허리띠를 둘러 21세기에도 황제국 하고 싶어하는 나라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스스로 좋은 나라에 사는 어른스럽고 담대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면, 남에게 '저, 저희'라고 말하는 건 심장에 아무런 생채기도 내지 않는다.

'저희'라는 표현은 돈과 빽과 힘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니다. '우리 스스로 자격있다'고 생각 할 수 있는 담백한 자신감에서 비롯된다. 궁극적으론 말하는 이가 왜곡된 성정 없이 스스로 자신감이 있어야 가능하다.

9.
전후 세대 이후로도 꽤 시간이 흐른 뒤 나라가 살만 해진 때 태어난 나는 애초에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못하다는 인식이 없다. 때문에 저희가 무슨 문제냐 싶다.

김정숙 여사는 아마 습관대로 저희나라라고 했을 것이다. 그걸 지적하는 목소리들 속에서 말의 어깨라도 견주고 싶다는 강한 욕구를 본다. 수십년전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저 버팀목이 여간 애처로운 게 아니다.

아니 우리가 대체 뭐가 꿀릴 게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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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나라라는 말의 용법에 관하여.

1)
우리말에서 겸양의 표현은 크게 두가지다. 존댓말 어미를 붙이는 것과 자신을 낮춰 부르는 것. '저'란 '나'의 낮춤말이므로 개인간이면 모를까 국제관계에서 한 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아래일 수 없으니 써선 안된다고 주장 하는 이들이 있다.

이건 주장부터가 틀린 건데, 가령 '저의 집'이라고 하면 내가 생명도 없는 나의 집을 낮춘 게 아니다. 내가 사는 집이 아니라 제가 사는 집이라는 소리, 즉 듣는 이에게 나를 낮춘 것이지 나의 집을 낮춘 게 아니다. 나의 아버지를 저의 아버지라고 부르면 그게 나의 아버지를 낮춘 것인가. 그저 나를 낮춘 것이다. 마찬가지로 '저의 나라'라고 하면 상대방 앞에서 나를 낮춰 말한 것이지 나의 나라를 낮춘 게 아니다.

2)
자기 하나이면 모르되 우리를 저희로 낮추면 또다른 '우리들'이 함께 낮아진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이것도 앞뒤 따져보면 단순치 않다. 대충 생각하면 우리를 저희라고 부르는 건 집단 전체가 낮춰지는 게 맞다. 그런데 정말 그 용법만 있나. 정작 우린 일상에서 그외의 용법으로도 많이 쓴다.

우리 말에선 나를 지칭해서 말할 곳 대부분에 우리라는 낱말을 쓴다. 그럴 때 상대가 높임말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면 우리대신 저희라고 말하게 된다. 학생이 교수와 면담하면서 우리 가족이 사는 집을 뭐라고 부를까. 가족이 살면 우리집인데, 다들 저희집이라고 한다. 당연히 자기 부모님과 비슷한 연배의 교수 앞에서 자신의 부모를 깍아내릴 의도로 말하는 게 아니다.

유독 이럴 때만 저희는 집단 전체를 낮추는 게 아니라 말하고 있는 사람이 자신을 낮추도록 기능한다. 나의 가족 보단 저의 가족, 우리 가족 보단 저희가족이라고 한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회장에게 "회장님, 저희 아버지가 올해 칠순이십니다." 라고 할지 "회장님, 우리 아버지가 올해 칠순이십니다." 라고 할 지 결정해 보자.

옛 원류야 어찌 됐든, 이게 현실의 세계에서 우리가 입말로 쓰는 진짜 용법이다. 대체 어느 누가 언어의 장에서 구성원들이 묵시적으로 합의 해 쓰는 걸 그게 아니라며 돌려 놓을 자격이 있나. 국가기관에서 계도하고 아침 방송프로에서 떠들어서 바꾼다면 그건 옳은 행위인가.

사람들의 이러한 말 쓰임을 틀렸다고 하고 싶으면 당장 내일 부터 학교나 회사에서 윗사람에게 말끝은 존대말로 하면서 '우리'를 넣어 보자. 한달 뒤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국립국어원 직원들부터 해 봤으면 좋겠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