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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지도자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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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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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6자회담 무용론을 주장하며 "북한을 뺀 5자회담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북한과는 대화할 필요가 없으니 나머지 국가들끼리 단합하여 북한을 압박하고 제재하자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 발언이 박 대통령과 우리나라 보수 세력이 갇혀있는 일종의 강박관념을 반영한다고 봅니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고 나서 지난 8년 간 보수정부는 "6자회담 중에도 북한은 핵 개발을 계속했다"며 이상할 정도로 6자회담에 적대감을 보여 왔습니다. 애초 6자회담은 미국이 여러 나라가 한꺼번에 북한에 비핵화를 압박하자는 취지로 제안하여 중국이 2003년부터 주재한 동북아 다자안보의 틀이자 압박수단입니다. 2007년까지 6차례 회의가 열리는 동안 9·19 공동성명, 10·3 합의 등 북한 비핵화와 핵 시설 불능화를 위한 의미 있는 협상이 진행된 바 있습니다. 6자회담이 북한을 비핵화하지만 못했지만 이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북한의 핵 개발의 속도를 둔화하거나 동결하는 뚜렷한 성과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6자회담이 없었더라면 북한은 이미 핵 보유국이 된 지 오래일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적 진실일 터인데 이상하게도 우리 보수세력들은 마치 6자회담 때문에 북한 핵개발에 힘을 실어준 것처럼 말합니다. 어이가 없는 일입니다.

최근 외교부 북미국의 한 외교관은 필자를 만나 "6자회담을 통해 우리나라는 한반도에 대한 주변국의 인식을 비교하고 확인할 수 있었던 최초의 기회"였으며,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스스로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주도적 역할에 도전할 수 있었던 가장 획기적인 역사적 전기"라고 평가했습니다. 이는 외교부 내 중견 외교관들의 일반적 인식으로 동북아에서 다자간에 외교다운 외교가 처음으로 진행된 6자회담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 때가 바로 한국 외교의 중흥기지요. 6자회담의 내막을 상세하게 파헤친 후나바시 요이치의 <김정일, 최후의 도박>은 다자간 협력에 대한 국가의 꿈과 이상을 생생하게 묘사한 명저입니다. 저자인 후나바시 요이치가 2009년에 청와대에 가서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 6자회담을 평가절하 하는 국제정세에 대한 얕은 식견을 듣고 나오는 길에 "너무 역겨워서 토할 뻔 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이 나라 보수 세력은 동북아 평화와 번영을 위한 복합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6자회담이 무엇인지 알기나 하고 비난을 하는 것인지, 그 6자회담이 무력화되고 나서 북한 핵무장이 가속화되었음은 물론이고 동북아 정세 자체가 민족주의로 회귀하는 아주 나쁜 결과를 초래했음을 직시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이들은 6자회담이 자체만이 아니라 아예 외교의 무용론을 대놓고 말하는 것입니다. 무능한 외교력에다가 군사적 조치만 앞세우는 하등 국가, 아마추어 지도자의 민낯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런 황당 외교에 대해 주변국의 반응은 차갑습니다. 박 대통령 발언이 나오자 미 국무부 애덤스 대변인은 "우리는 신뢰할 수 있고 진정성 있는 한반도 비핵화 협상에 북한이 복귀하도록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면서 사실상 북한을 대화 상대로 인정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중국 외교부의 홍레이 대변인은 "현재 한반도의 형세에서 대화·담판은 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방안"이라며 "6자 회담을 빠르게 재개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여기서 의문이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이 다 같이 북한과 대화를 하겠다는 입장인데 왜 박근혜 대통령은 혼자만 이를 부정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당장 열리지도 않을 6자회담 무용론은 왜 생뚱맞게 들고 나와 주변국으로부터 빈축을 사느냐는 것입니다. 북한 핵에 대한 스트레스로 현실감각을 상실한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한때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미·중간 균형외교를 표방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말 치고는 정상이 아닙니다. 이러다가 어느 날 6자회담이 열리기라도 하면 한국만 혼자 반대하고 나올 것입니까? 5자회담이란 재판에서 피고가 없는 궐석 재판이나 마찬가지로 효과와 현실성이 의문시됩니다. 외교 카드로 6자회담은 여전히 유용한 것입니다. 그래야 국제정세가 또 변할 때 대처할 수 있는 수단 하나가 예비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광경을 후나바시 요이치가 본다면 "한국은 미쳤다"라고 할 것입니다. 지금 반쯤 그렇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토할 것 같습니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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