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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술핵 배치를 외치는 자유한국당의 자가당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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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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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미국이 한국에 핵포탄, 단거리 핵미사일과 같은 전술핵을 운용한 적이 있습니다. 1980년대 후반기에 들어서자 국회에서 미국 핵무기 문제가 정치 쟁점화되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그 당시 합참의장이던 최세창, 정호근, 오자복 등의 국회에서의 답변은 녹음기 틀어놓은 것처럼 항상 똑같았습니다. "미국 핵이 있어도 있다고 말할 수 없고, 없어도 없다고 말할 수 없으며, 있는지 없는지는 나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시인도 부인도 안 한다(NCND : Neither Confirm Nor Deny)"는 정책입니다. 실전에 배치된 핵은 영화 해리포터에서 그 이름조차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되는 볼드모트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핵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해야 그 정치적 효과가 더 커집니다. 이걸 '핵 그림자 효과'라고 하는 핵무기의 패러독스입니다. 말하지 않아야 더 효과가 큰 핵무기의 문법이자 소통법입니다. 주적이 사라진 유럽이라면 몰라도 지정학적 민감성이 매우 큰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이 대놓고 전술핵을 배치하는 법은 없습니다. 동맹국인 한국의 안보가 걱정되어서 핵심 원칙을 포기하면서까지 선뜻 전술핵을 배치할 리는 더더욱 없습니다. 핵 국가인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당장 일본과 대만도 요동칠 것입니다. 비확산 원칙을 핵심 국가전략으로 하는 미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시나리오입니다.

그렇다면 미국의 전술핵이 한반도에 배치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한국 내에서 전술핵 배치 문제를 정치적 쟁점으로 최대한 키우는 것입니다. 단지 논쟁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주변 정세가 영향을 받습니다. 더군다나 여차하면 한국이 핵무장을 할 수 있다는 메시지까지 곁들인다면 그 효과는 더욱 증폭됩니다. 천만인 서명운동에 돌입한 자유한국당이 바로 이 짓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에 정치적 부담을 자꾸 늘려서 결국 전술핵 배치가 불가능한 시나리오로 지금 가고 있는 것입니다. 1980년대에 일본 자민당의 오자와 간사장이 극우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을 외쳤습니다. 눈부시게 성장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여차하면 미국의 동아시아전략으로부터 일탈할 독자노선의 가능성마저 보이자 1990년대 초에 미국은 일본의 도전을 응징했습니다. 세계 최대의 플루토늄보유국인 일본을 미국은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프라자 합의로 일본의 경쟁력과 활력을 무너뜨려버린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잃어버린 20년'의 실체입니다. 그 다음에 일본이 다시 기지개를 켜기까지는 미국의 힘이 현저히 약화된 2010년대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소위 '무장평화론'을 외치는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대표는 그렇지 않아도 지정학적 어려움에 처한 우리나라가 여차하면 핵으로 충돌할 수 있는 '공포의 균형'으로 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돈키호테식 전략이 국내 여론에서 먹혀든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만, 그 실상은 우리가 지난 반세기 동안 누려온 평화와 성장의 뿌리를 뒤흔드는 극단전략입니다. 사실 '공포의 균형'이라는 말 자체도 허상입니다. 우리나라에 배치된 핵무기를 북한이 두려워해서 전략을 바꿀 수 있어야 공포의 균형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전술핵을 배치한다고 북한이 이를 인정할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흔히 말하는 억지력이란 '상대방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특별한 힘'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억지력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억지력을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억지주장을 하는 극단론자로 취급받을 것입니다. 우리가 자기만족적인 몇몇 용어의 허상에 빠져서 핵을 선택할 때 한국은 북한과 같은 길로 가게 됩니다. 이런 문제를 가지고 천만인 서명을 한다? 홍준표 대표는 미국에게도 위험인물입니다. 정치적으로 결정적 타격을 입을 것입니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