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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간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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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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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6월. 한 주간지에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개발한 T-50 고등훈련기의 미국 수출이 "비관적"이라는 기사를 게재한 바 있습니다. 미 국방부의 '바이 아메리카(buy america)' 정책에 따라 국산 T-50 선정이 불리할 수 있다는 요지였습니다. 보도 직후에 우병우 씨가 수석으로 있던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이 기사의 정보 출처로 예상되는 항공업계와 정부 관계자들을 민정수석실이 불러들여 "어떻게 이런 기사가 보도될 수 있냐"고 다그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별것 아닌 기사에 민정수석실까지 나서서 출처를 조사하는 이례적인 일이 벌어진 이유는 그 전 해인 2015년 12월에 박근혜 대통령이 사천 KAI 본사를 방문해서 T-50을 두고 "창조경제의 금빛 나래"라며 미국 수출형 고등훈련기(TX) 모델 공개 기념행사에 축사를 한 데서 비롯됩니다. 이 날 박근혜 대통령은 "T-50 미국 수출로 엄청난 경제파급효과가 기대된다"며 마치 우리 항공업계가 팔자 고칠 것 같이 잔뜩 기대감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이런 대통령의 축사 내용은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습니다. 우선 미국의 사업자인 록히드마틴과 KAI 간에는 T-X 공동 사업추진을 위한 계약서조차 체결된 일이 없고, 설령 미국에 수출되더라도 T-50완제품을 수출하는 것이 아니라 록히드가 만든 고등훈련기에 동체 일부만 납품하는 수준이라면 박근혜 대통령의 기대만큼 경제 파급효과가 큰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미 KAI는 에어버스 등 외국 항공사에 중요한 구성품을 납품하고 있었기 때문에 얼마나 규모가 될 지도 모르는 T-X 사업에 미리 샴페인을 터뜨릴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이날 공개 행사에는 록히드마틴의 회장조차 오지 않았고, 단지 아시아담당 부회장만 참석한 록히드마틴의 내부 행사였습니다. 국방부는 "외국 항공사 행사에 우리 대통령이 참석하는 것은 격이 맞지 않다"며 부정적 의견을 개진하였음에도 장관을 네 명이 대동하여 박 대통령이 나타난 것입니다. 대통령의 업적으로 과대 포장된 T-50 고등훈련기에 한 주간지가 고춧가루를 뿌리고 나오니 청와대가 발끈한 것입니다.

이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KAI의 각종 부실을 은폐할 뿐만 아니라, 세간의 KAI에 대한 부정적 여론까지 통제하는 행동대였습니다. 물론 그 명분은 존재하지도 않는 "T-50 해외수출"이라는 논리입니다. 돌이켜 보면 이번 주에 공개된 감사원의 수리온 헬기에 대한 감사보고서 역시 이미 2015년에 다 알고 있었던 내용을 나열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벌써 시간이 흘러 당시 감사원이 지적한 사항은 현재 상황과 맞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감사원은 이 감사를 진행할 당시에 방위사업청만 감사하고 육군과 KAI에 대해서는 감사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즉 엉터리에 겉핥기 감사 보고서입니다. 적어도 2016년 초에는 이런 감사 결과 보고서가 공개되어 지금쯤이면 조치가 다 끝났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마치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 것처럼 감사원이 보고서를 공개한 것은 그간의 직무유기를 은폐하려는 얄팍한 속셈에 다름 아닌 것입니다.

지난 정부 초기에 KAI에 대한 감사가 진행되면 바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이 나서서 감사원에 '감사 중지' 외압을 행사하였으며, 방산 비리 합수단 조차 감사원으로부터 수사 의뢰를 받고도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모두 청와대의 눈치를 본 것입니다. 차라리 진즉 감사를 정상적으로 진행하고 조치를 끝냈더라면 지금쯤 다 해결되었을 문제인데도 은폐하다가 문제를 키웠습니다. 모두 박 대통령 위신을 세우려고 청와대, 검찰, 감사원이 충성 경쟁을 하다가 벌어진 일입니다. 우리가 국방을 개혁한다고 할 때 바로 이런 걸 고쳐야 합니다. 권력의 체면 세우려고 방위사업을 정치화한 것입니다. 그 진실은 명명백백히 밝혀야 합니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